나오카 2nd - Minolta_uniomat.009
그날 나는 단지 지나가듯, 진열장을 스쳤다.
손끝에 닿은 건 미놀타 유니오맷.
처음엔 그냥 오래된 기계일 뿐이라 생각했다.
무게는 묵직했고, 외형은 반듯했으며,
노출계는 당연히 죽어 있을 거라 단정 지은 채
내 컬렉션의 ‘소품용’에 분류된 녀석이었다.
그러다 문득,
렌즈를 닦다 말고
상단의 노출계 바늘이 움직였다.
그 순간부터였다.
내 안에 무언가가 ‘이야기’를 만들기 시작한 건.
1960년대 초창기 미놀타 RF,
완전 수동식, 배터리 없이 작동하는 프리즘 노출계.
전면의 셀레늄 프리즘 센서가 빛을 감지하고
카메라 상단의 바늘은 수십 년이 지나도록 반응을 기억했다.
‘써니 16법칙’을 몰라도 괜찮을 만큼,
기계는 스스로 빛을 읽고 있었다.
45mm f2.8 로커 렌즈.
해상력 경쟁에서는 뒤처질지 몰라도
그 대신, 형태보다 감정이 남는 장면을 남긴다.
조리개를 조여도 배경은 분명해지지 않았고,
오히려 안갯속에서 촬영한 듯한 포트레이트가 찍혔다.
흑백필름을 넣고, 조용히 한 컷씩 눌러가며
나는 점점 이 카메라의 리듬에 맞춰졌다.
사실 나는 50mm f2.8 캐논 L39 렌즈(라이카마운트)로 찍은
한 장의 사진을 유난히 좋아한다.
아주 고운 모래를 뿌린 듯한 결,
안갯속에 잠긴 인물,
선명하지 않아서 오히려 더 몰입되는 장면.
그 사진을 처음 봤을 때처럼,
유니오맷으로 찍은 결과물들도
형태보다 느낌이 먼저 전해졌다.
이건 단순한 묘사력의 문제가 아니었다.
빛의 질감, 유리의 결, 렌즈의 나이,
그리고 셔터를 누르는 손끝의 망설임.
그 모든 것이 모여 만들어낸 한 장의 결과.
요즘의 렌즈는 더 선명하고, 더 빠르며, 더 완벽하다.
하지만 어쩐지,
그 완벽함은 때로는 ‘무성함’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라이카조차도 이제는
과거의 할레이션을 복원하려 애쓴다.
빛이 번지고, 갈라지고, 흔들리는 그 특유의 매력을
다시 재현하려는 걸 보면
‘선명함’만이 미덕이 아니라는 걸
우리는 모두 알고 있는 것이다.
유니오맷은 셀레늄 노출계가 살아 있어 좋았지만
만약 죽어 있었어도 상관은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기계는 노출계 없이도 영원히 쓸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필름이라는 매체는 유한하지만
기계식 카메라는 그 유한함을 반복 가능성으로 치환한다.
수동 조작, 감각적 노출, 손맛,
그 모든 것이 디지털이 흉내 낼 수 없는 반복의 감정을 만든다.
유니오맷은 조용한 카메라다.
그 묵직한 셔터음 하나로
빛의 방향을 바꾸진 않지만,
그걸 바라보는 나의 시선은 분명히 달라진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내가 이 카메라를 좋아하는 이유는
형태가 아니라,
기억의 안갯속에서 나만의 초점을 찾아가는 과정 그 자체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