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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늦기 전에 Mar 17. 2022

아들러 심리학-모든 행위에는 '목적'이 있다.

결정론보다 목적론에 더 끌리는 이유

  사람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아침에 눈을 뜨고 감을 때까지 다양한 행동을 한다. 하지만 같은 행동을 보더라도 사람마다 다양한 관점으로 해석한다.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그 행위의 '원인'에 주목한다. 특정 행위를 과거의 어떤 경험이나 사건에 의해 결정된 결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에 반해 개인심리학의 창시자 알프레드 아들러는 그 '목적'에 주목한다. 어떤 행위를 하는 데는 특정한 '목적'이 있고, 그 목적에 맞는 수단으로써 자신의 경험에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린 시절 부모에게 학대를 당한 경험이 있는 한 사내가 걸핏하면 주변 사람들에게 화를 내는 신경질 적인 성격을 보유하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만약 그를 결정론적 관점에서 본다면 "그는 유년기에 사랑받지 못한 경험이 현재의 지배 욕구로 표출된 것으로써, 신경질적인 성격을 만들었다."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목적론적 관점에서 보면 "그가 신경질을 내는 이유는 주위 사람들을 쉽게 굴복시키기 위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으로,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유년시절의 경험에 의미를 부여했다"가 되는 것이다. 


  한 마디로 결정론에서 과거의 경험은 바꿀 수 없는 절대 불변 사실이지만, 목적론에서는 얼마든지 재해석할 수 있는 주관적인 시각일 뿐인 것이다. 



  과거에 나는 결정론을 진리라고 믿었다. 세상 모든 것에는 인과관계가 있고, 내가 가진 트라우마 역시 과거의 불우한 환경이 만든 상처라고 생각했다. 내가 처한 환경이, 내가 가진 상처가 내 잘못이 아니라고 위로받기를 원했다. 


  그렇게 생각하면 핑계를 대기에는 너무 좋았다. 내가 담배를 피우는 이유는 과거 담배에 쉽게 노출될 수밖에 없었던 집안 환경 때문이었고, 내가 무언가에 쉽게 도전하지 못하는 소극적인 성격을 가진 이유는 가난하고 불우했던 유년시절에 만들어진 수많은 트라우마 때문이었다.


  하지만 '위로' 그뿐이었다. 과거의 나의 경험이 지금의 나를 결정짓는다면 내 인생은 더 이상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아들러 심리학을 만난 후로는 내 인생만큼은 내가 선택하기로 했다. 과거의 어떤 경험을 했든 그 경험이 어떤 영향을 가져왔든 간에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고 내 입맛에 맞게 이용하기로 했다.


  더 이상 담배를 피울 수밖에 없었던 과거의 환경을 탓하지 않았고, 결국 담배를 끊어냈다. 더 이상 도전에 소극적인 성격을 핑계 삼지 않기 위해 이것저것 도전했고 나름대로 성과도 내었다. 


  물론 아직도 무언가 도전할 때는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이겨낼 용기, 다른 사람들에게 무시받을지도 모른다는 미움받을 용기, 쓰러져도 이겨낼 수 있다는 다시 일어서는 용기 등 세상은 수많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그만큼 선택이나 도전은 언제나 두렵고, 불안하다. 하지만 이번 생은 망했다며 과거를 탓하고 주어진대로, 되는대로 살기에는 인생은 너무 길다. 다시 한 번 용기를 내어본다. 



내가 나를 위해 내 인생을 살지 않으면, 대체 누가 나를 위해 살아준단 말인가?
<미움받을 용기> p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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