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살에 직장생활을 시작하며 느낀 세상
직장 생활하느라 참 빡빡하시죠?
열심히는 하고 있는데 성과는 안 나고, 속도 모르고 닦달하는 직장 상사를 보고 있노라면 천불이 날 거예요.
더군다나 고객을 직접 만나야 한다면 얼마나 변덕이 심하고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해대는지 죽을 지경일 거예요. 부하직원이라도 있으면 참 편할 것 같았는데, 막상 생각대로 잘 따라주지 않는 부하직원들 눈치까지 보느라 일이 더 늘어난 것 같아요. 이게 내 일이 맞을까 고민도 참 많이 들 것 같습니다. 이러나저러나 직장생활 참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최근 또 슬픈 소식을 들었습니다. 민원에 시달리던 공무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합니다. 너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사실 이번 사건 말고도 직장 내 괴롭힘, 진상 고객 때문에 스스로 나쁜 선택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세상이 된 것 같아요. 어떤 자리든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정말 많은 노력을 했을 텐데, 어찌 그리 힘든 선택을 했는지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습니다.
저는 혹시나 누군가 직장에서 그런 힘든 상황에 놓여있다면, 딱 한 마디 위로만 전할 수 있다면, 이 말 한마디 전하고 싶습니다.
지금 당신의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괴로운 일, 힘든 일 모두 "찻잔 속 태풍"이다라고요.
감히 제가 이렇게 말씀드리는 이유는 제가 그 '찻잔' 속에만 살던 사람이거든요. 저도 참 몰입을 많이 하는 사람입니다. 어딘가에 소속되면 그 소속된 세상이 제 인생에 전부가 되었고, 그곳에서의 성공은 곧 제 성공이고, 그곳에서의 좌절이 곧 제 좌절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직장생활에 누구보다 진심이었고 열심히 했습니다. 직장에서 인정받을 때 큰 행복을 느꼈고, 직장에서 질타를 받을 때면 큰 좌절을 느꼈습니다.
특히 저는 첫 직장에서 심한 좌절을 맛보았습니다. 기계 설계라는 업무를 하는 직장에 들어갔는데 현장에 일손이 모자라다는 이유로 설치현장에 파견 근무를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때 처음 만난 제 사수였던 형의 표정은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정말 쓰레기를 보듯 절 쳐다봤어요. 그러고는 온갖 짜증을 내며 윗사람에게 "일할 사람을 보내랬더니 왜 이런 애새끼를 보냈냐" 며 제가 듣고 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갔습니다. 자존감은 땅에 떨어졌고, 세상 억울했지만 어디 하소연할 때도 없었습니다.
그 뒤부터 무시무시한 갈굼이 시작되었습니다. 힘을 제대로 못쓴다고 욕먹고, 시끄러운 현장에서 말을 잘 못 알아듣는다고 성질을 냈습니다. 심지어 '이런 식으로 해가 지고 너 따위가 무슨 기계설계를 하냐'며 무시를 당해야 했습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그즈음이었습니다. 언제까지 파견근무가 이어질지 몰랐고, 세상이 끝난 것만 같았습니다. 매일 같이 눈물을 뚝뚝 흘리며 일했습니다. 매일 아침 눈뜨기가 싫었고, 다음 날 걱정에 밤잠을 설쳤습니다. 그래도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니까 그렇게 욕하던 형도 제 진심을 알아주었습니다. 그리고 저도 그 형이 왜 그렇게 화냈는지, 저에게 화난 것이 아니라 회사시스템에 대한 화를 낼 곳이 없어서 본의 아니게 제게 풀어버린 것을 알았습니다. 그 형도 고작 이십 대 후반이었으니까요. 나중에 그 형은 멀리 제 아버지 장례식에 와줄 만큼 고마운 인연이 되었습니다. 이것 말고도 첫 직장에서 정말 많은 일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자존감은 떨어졌고, 심한 좌절감을 느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참 신기했습니다. 직장에서 그렇게 절 괴롭히던 많은 일들이
직장 밖에서 보니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습니다.
지금 당장 일정을 맞추는게 그렇게 힘이 들었었는데, 한 걸음 떨어져서 보니 그 일정 조금 늦는다고 세상 끝나는 것이 아니었고, 매일 같이 잔소리를 하던 미치광이 같던 직장상사는 회사에서 인정받아 처자식 먹여 살리기 위해 아등바등 사는 외로운 사람이었습니다. 돈에 미친 것 같던 사장은 어쨌든 회사를 운영하고 직원들 월급 챙겨주려 노력하는 멋진 사업가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이리저리 변덕을 부리던 고객도 사실 누군가 위에서 닦달을 해서 그런 것이지 심성이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처럼 세상에 전부였던 직장 속에서 벗어나니 과거의 일들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들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찻잔 속 태풍이었던 것이었습니다. 지금에야 이렇게 이야기하지만 저도 찻잔 속에 있을 때는 몰랐습니다. 온 세상에 시련이 가득 차 보였습니다. 더 이상 탈출구는 없고, 불행한 날들이 계속될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니 너무 힘들고 괴로울 때는 저 멀리 밖에서 당신을 바라보면 어떨까요?
지금 쫓기는 일정 하루이틀 늦는다고 세상이 무너질까요?
지금 직장상사가 진짜 나쁜 면만 가지고 있을까요?
지금 날 괴롭히는 고객이 평생 그럴 수 있을까요?
그리고 정 힘들면, 너무너무 힘들면 지금 이 회사를 나간다고 세상이 끝나는 걸까요?
아마 아닐 겁니다.
당신은 찻잔 속에서 언제든지 나올 수 있습니다. 어떻게든 먹고 살아집니다. 그 사실 하나만 꼭 기억해 주세요. 지금 몰아치는 태풍도 곧 지나갈 것이고, 너무 힘들면 찻잔 밖으로 나오면 되고 그 바깥세상은 너무도 고요할 것입니다.
결코 찻잔 속태풍에 휩쓸려서 쓰러지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