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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늦기 전에 Feb 09. 2022

나는 죽어서 납골당에 갇히고 싶지 않다

어린 시절에는 그렇게 가고 싶었던 곳이었는데

  어린 시절, 명절만 되면 친구들이 부러웠다. 어떤 친구는 명절을 맞이해 친척집 여러 곳을 다녀왔다며 받은 용돈을 자랑했고, 또 다른 친구는 벌초가 너무 힘들다고 불평했다. 몇몇은 돌아가신 할아버지나 할머니를 뵈러 납골당에 다녀왔다고 했다.


  그런 친구들이 부러웠다. 내 아버지는 진작에 친척들과 연을 끊었다. 이유는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덕분에 명절은 집에서 보내는 날이었다. 남들 다가는 귀성길을 비롯해 성묘, 납골당도 가보고 싶었지만, 찾아갈 만한 곳이 없었다. 평생 내 인생과는 상관없는 곳들이라고만 생각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말 그대로 패닉 상태였다.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던 일이 일어났고, 어떠한 준비도 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래서인지 그때의 기억은 동영상이 아닌 한 장 한 장의 사진처럼 단편적으로 남아있다. 아마 사촌누나들이 옆에서 도와주지 않았다면 장례도 제대로 치르지 못했을 것이다. 


  혼란스러웠다.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그저 장례식장의 메뉴얼에 따라 움직일 뿐이었다. 그중 매장이냐, 화장이냐는 선택 역시 생각해본 적 없는 문제였다. 화장을 선택했지만 그 이유는 매장할 땅도, 경제적 여유도 없어서였지 화장을 원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나마 요즘은 대부분 다 화장을 한다는 말에 안심했다.


  친척들은 화장 이후 아버지의 유골을 산에 뿌려주자고 했다. 아버지는 배를 탔던 사람이고, 생전에 골방에서 답답하게 살았으니 유골만이라도 자유롭게 해 주자는 것이었다. 좋고 나쁨을 판단할 정신이 없었고, 알겠다고 대답했다. 


  화장을 마친 아버지의 유골함을 받아 든 순간, 느껴지는 온기에 다시금 정신을 놓아버렸다. 그리고 우리는 집 근처의 나지막한 산으로 향했고, 그곳에 아버지의 유골을 뿌렸다. 지금도 그 산이 어디였는지는 알지 못한다. 그 선택은 이후 10년 동안 내 마음을 괴롭혔다.


  아버지의 사망 이후, 명절마다 우울증에 시달려야 했다. 고인이 된 아버지를 찾아갈 곳이 없다는 사실이 뼈저리게 아팠고, 괴로웠다. 아버지를 기릴 수만 있다면 어디든 찾아가고 싶은데 그럴 공간이 없었다. 아버지와 살던 집은 이미 이사를 나왔고, 함께한 사진도 한 장 없었다.


  그리고 결심했다. 치매에 걸려 하루하루 죽음에 가까워지던 할머니의 유해만큼은 납골당에 모시기로. 주변에서 뭐라고 하든 꼭 그러기로 다짐했다. 그래서 할머니가 떠오를 때마다 찾아갈 생각이었다. 그렇게 10년이 지난 어느 날, 할머니도 임종을 맞이했다. 다짐했던 대로 할머니는 부산의 한 추모공원에 모셔졌다. 


  한 달쯤 지났을까. 할머니를 모신 추모공원에 갔다. 그런데 기분이 이상했다. 추모공원은 내가 생각하던 공간이 아니었다. 다닥다닥 붙은 사물함 같은 공간에 고인을 알려주는 건 작은 명패와 사진이 고작이었다. 할머니를 떠올리기에 공간은 협소했고, 눈물을 흘리기에는 너무 삭막했다. 오히려 추모공원에 가면 고인에 대한 가치가 신발장만한 작은 공간밖에 안 되는 것인지 회의가 몰려왔다.


  그제야 고인을 기리기 위해서는 커다란 묘나 납골당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 필요한 건 특별한 장소가 아니라 무엇이 되었든 고인과 쌓은 추억이었다. 아버지를 찾아갈 곳이 없어 괴로웠던 이유도 함께한 추억이 없기 때문이지 유골함이 없다는 이유 때문은 아니었다. 물리적인 공간을 찾는 것은 그저 변명에 불과했다.


  지금은 할머니의 유골이 모셔져 있는 추모공원에 잘 가지 않는다. 할머니가 생각날 때면 그저 영정사진과 휴대전화에 저장된 할머니와 함께 찍은 사진을 꺼내어보며 할머니를 떠올린다. 그렇게 한바탕 반성과 그리움의 눈물을 쏟고 나면 할머니가 얼마나 감사한 존재였는지를 다시금 깨닫는다.


  30대 나이에 결정하기에 조금 이른 결정일 수 있지만, 부디 내 마지막 종착지는 납골당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자연에 흩날려도 좋고, 땅에 묻혀 거름이 되어도 좋다. 혹 현실적인 이유로 납골당에 안치하게 되더라도 한 줌의 유골 따위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좋은 유골함도 필요 없고, 멋진 명패도 필요 없다. 다만 한 가지 바라는 건 그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마음속에, 그 기억 속에 행복한 모습으로 남아 있기를 희망한다. 


추억이란 인간의 진정한 재산이다. 기억 속에서 인간은 가장 부유하면서도 가장 빈곤하다.
-알렉산더 스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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