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 정하기
2020년 3월
중국과 한국을 거쳐 스멀스멀 아래로 내려오는 검은 그림자를
애써 뒤로한 채 발리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일주일간의 휴식을 마치고 돌아오니, 호주의 슈퍼마켓엔 휴지가 동나 있었다. (응?)
그 이후로 잡혀 있던 또 하나의 여행은 취소되었고,
예기치 못한 여행 (그리고 학교.. 그리고 일....) 휴지기에 들어섰다.
공교롭게도 마지막 여행으로부터 2년 후인 2022년 3월,
학기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
온 가족이 코로나에 걸렸다.
한 번은 걸릴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지금이 그때일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 못한 채
혼돈의 시간을 보낸 우리는
... 항체를 얻었다.
항체를 얻자 떠나고 싶어졌다.
아이들과 조심한다고 지난 2년간 예약과 취소를 반복하며
꾹꾹 눌러 두기만 한 여러 번의 여행과 캠핑과 나들이들이,
이제는 때가 되었다며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느낌이었다.
한 번 피어오른 마음은 쉽게 진정되지 않아,
충분히 충동적이면서도 계획적으로 여행을 꿈꾸기 시작했다.
계획하기에 앞서 지금까지 아이들과의 여행을 세어보니
첫째와는 여섯 번, 둘째와는 네 번의 여행을 했다.
하지만 여섯 살과 네 살인 그들과의 여행은 처음이니, 이전 경험엔 기대지 않기로 했다.
어디로 떠나지?
가장 설레는 이 순간을 오래 만끽하고 싶었지만,
우리에게 시간은 많지 않았다.
항체가 사라지기 전, 두 달 안에 떠나야만 했다.
+
5월은 여행하기 참 좋은 달이다.
봄날의 북반구는 따뜻하고 가을날의 남반구는 시원하다.
하지만 이상 기온으로 육 개월째 비만 내리고 있는 시드니를 떠나 따뜻한 곳으로 가고 싶었다.
기왕이면 해가 쨍하게 비춰 꿉꿉함이라고는 먼지 한 톨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곳으로.
게다가 더 이상의 휴양은 지겨웠다.
아이들이 어려 휴양지만 고집하던 이전과는 다르게
클 만큼 컸고, 쉴 만큼 쉬었다고 생각했다.
따뜻하고, 휴양지가 아닌 곳
어른 아이 모두가 즐거울 수 있는 요소가 있는 곳
직항, 혹은 최대 한 번의 경유로 갈 수 있는 곳
이 주라는 시간이 지루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곳
이런 여러 조건들을 내세웠지만,
사실은 엄마의 로망을 실현하고 싶었던 곳.
그렇게 2022년 5월
우리 넷은
프랑스 파리로 떠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