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자라 단편소설>
어젯밤 우리 집 마당에 운석이 떨어졌다.
처음에는 벼락인 줄 알았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굵은 허리통을 자랑하던 단풍나무 한 그루가 넘어갔다. 집 안에 있던 나와 엄마는 지진이 난 줄 알고 다급히 식탁 밑으로 기어들어갔다. 단말마 같은 굉음 이후에 아무런 진동이 느껴지지 않자, 엄마와 나는 식탁 아래서 눈빛을 교환하고 조심히 기어 나왔다.
마당에 어마어마한 김을 내뿜는 구덩이 하나가 만들어졌다. 한가운데에서는 주먹만 한 돌덩이가 열기를 내뿜고 있었다. 엄마는 쿠키 구울 때 쓰는 주방 장갑을 끼고 조심히 운석에 접근했다가, 강한 열기에 손사래를 치고 구덩이에서 빠져나왔다. 내일 아침이 되면 식지 않을까, 합의를 보고 구덩이에서 시선을 돌렸다. 나는 별똥별의 효능이 채 가시기 전에 부자가 되게 해달라고, 애완동물을 갖게 해달라고, 그리고 엄마에게 남자친구가 생기게 해달라고 빌었다.
다음 날 새벽, 얼굴이 길쭉하고 입술이 두꺼운 남자가 다짜고짜 카메라를 들고 찾아와 우리 집 초인종을 눌렀다. 새벽 5시인가 6시인가 그랬을 거다. 엄마는 아빠의 옛날 도박 친구가 찾아온 것이라고 식겁하며 응답을 거부했다. 남자는 재차 초인종을 누르고 본인을 13만 유튜버라고 소개했다. 어젯밤 우리 집에 벌어진 사건에 대해 묻고는, 혹시 우리 집 마당을 잠시 살펴봐도 되냐고 물었다. 그제야 우리에게 벌어진 '사건'이 실감이 났다. 이 남자의 방문은 그저 시작에 불과했다.
엄마는 누가 초인종을 누르거나 '추락 사건'에 대해 묻거든, 모르쇠로 일관하라고 나에게 일렀다. 모르쇠가 뭐냐고 묻자 "모르는 척하라고!" 하고 흥분을 표했다. 우리는 우선 남자를 '모르쇠'하며 돌려보냈다. 엄마는 두꺼운 오븐용 장갑을 끼고 화단용 장화를 신었다. 그리고 10년은 사용하지 않았을 물뿌리개를 들고 와 마당에 난 구덩이에 물을 뿌렸다. 칙-칙- 하는 소리가 들리긴 했지만 돌이 어느 정도 식은 모양이었다. 엄마는 한 쪽 옆구리에 물뿌리개를 끼고 한 손으로 운석을 치켜 올렸다. 강아지 머리통만 한 운석을 쥔 엄마의 모습은 자유의 여신상 같았다.
엄마의 신신당부에도 불구하고, 추락 사건은 전혀 비밀에 부칠 수 없었다.
오전 8시가 넘자 우리 집 초인종은 불티나게 팔렸다. 각종 지역 신문사, 유튜버, 방송 기자들까지, 초인종 소리의 첫 음만 들어도 몸서리가 쳐질 지경이었다. 일찍이 잠에서 깬 엄마는 심란한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컴퓨터 본체를 연신 탕탕 내리치며 씨름을 하고 있었다. 엄마는 마우스로 한참을 이리저리 방황하다가 브라우저 창을 발견했다. 그리고 독수리 타법으로 "운석이 떨어졌을 때"라고 검색했다. 가장 첫 글은 한 블로거가 작성한 글이었다. 운석을 발견했다면 운석신고센터에 신고하세요. 그녀는 한참 동안 클릭과 스크롤 끝에 국가연구기관에서 확인이 되면 운석을 매입해갈 수도 있다는 내용을 확인했다. 매입 금액은 g 당... 와. 소리 없는 환호성을 질렀다.
한편 잠에서 깬 나는 오븐용 팬 위에 올려진 운석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가만히' 들여다본 이유는 단지 엄마가 한 '우주에서 온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손으로 만지지 마!'라고 으름장을 놨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내 눈앞에 놓인 것은 마당 흙에 뒤덮인 검은색 돌덩이. 하늘에서 떨어진 것만 아니면 마당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돌덩이 중 하나였다. 어쩌면 엄마가 실수로 운석이 아닌 다른 돌을 주워온 것이라 해도 말이 되지 싶었다. 이 돌을 운석이라고 학교 친구들에게 보여주면 놀림거리만 될 것이 분명했다. 생김새로는 특수할 것 하나 없는 이 돌의 특별한 점은 아직 만져지지 않았다,라는 것이었다. 엄마조차도 장갑을 끼고 돌을 옮겼으니, 아직 이 돌은 지구의 그 누구와도 접촉하지 않았다는 가치가 있었다. 그 가치를 호기심 때문에 깨고 싶지 않아 돌을 건드리지 않고 가만히 놔뒀던 것이다.
10시가 되자 나는 TV를 켜고 실시간으로 화면에 비치는 우리 집을 버엉하게 감상했다. 화면에는 담장 너머로 거대한 구덩이가 파진 우리 집 마당이 보였다. 지금 보시는 모습이 바로 그 운석이 떨어진 곳으로 추정된.. 어젯밤 00시 00면에서 굉음이 발생하며.. 이로써 우리나라가 00번째 운석을 발견할지.. 기자들뿐만 아니라 무슨 일인지 구경 나온 동네 사람들의 반가운 얼굴도 여럿 눈에 띄었다. 이 도심 변두리 마을은 원체 사건사고가 없는 터라 - 있어도 조용히 묻고 지나가거나 - 무슨 일이라도 난다 하면 동네 사람들이 득달같이 몰려와 말을 얹는 것이었다. 고맙게도 마을 이장인가 하는 할아버지가 우리 집 담을 넘으려던 기자에게 호통을 치는 모습이 화면에 비췄다. 따라나온 이장님 손자는 기자에게 나와의 친분을 열심히 설명하다가 화면 조정이 됐다. 참고로 말하자면 그 손자와는 안면만 있을 뿐, 서로 이름도 모르는 사이였다.
엄마는 회사에 연차를 쓰고 담임 선생님께 내가 오늘 학교에 가지 못할 것이라고 전했다. 아무리 아프다고 노래를 불러도 학교만큼은 절대 결석하지 못하게 하던 엄마인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엄마가 변했다고 느낀 순간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속도로 말하지 면 평소의 두 배는 빠르게 행동했다.
우선 새 고무장갑을 꺼내 끼더니 흰색 보자기 위에 운석을 올리고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사진이라면 찍는 것도 찍히는 것도 질색하던 그녀는 각도별로 돌려가며 100여 장의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나더러 잘 나온 사진을 좀 골라보라고 했다. 그다음은 갑 티슈와 물티슈를 각 한 통씩 써가며 운석을 구석구석 닦았다. 돌 수집가처럼 말이다. 그리고 다시 사진을 100여 장 찍더니 운석신고센터 홈페이지에 들어가 신고 절차를 마쳤다. 한국운석연구센터(가명)에 전화를 해서는 홈페이지에 등록 신청 글을 썼으니 빨리 확인해달라고 재촉했다. 이 모든 일이 채 한 시간도 되지 않았다는 게 놀라웠다.
정오쯤 되었을 무렵에는 배꼽시계가 요동을 치고 있었다. 배고프다고 칭얼거리는 나에게 엄마는 천장 깊은 곳에 숨겨둔 컵라면 하나를 꺼내 주었다. 정말 착한 일을 했을 때 - 이를테면, 단원평가에서 80점을 넘었을 때나, 봄맞이 대청소를 적극적으로 도와주었을 때 - 나 먹을 수 있는 컵라면이 이렇게 손쉽게 쥐어지다니. 정말로 이상한 날이라니까. 내가 전기포트에 물을 끓이는 사이에 엄마는 화장을 하고 있었다. 한 겹, 두 겹, 세 겹, 눈썹, 눈두덩이, 코, 입이 붉고 흰색으로 칠해졌다. 마치 전투력을 올리기 위한 의식을 치르는 것만 같았다. 엄마가 어때?라고 물었을 때의 인상은 아빠와 이혼하기 위해 법원에 출두했을 때나 볼 수 있는 강렬함을 풍겼다. 애써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고개를 서너 번 끄덕이자 만족해하며 다시 운석 어쩌고 센터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 너머의 상대는 지쳤다는 듯이 기다려달라는 말만 반복했다. 그리고 이제 점심시간이라 응답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한국운석연구센터에서 우주인 같은 차림을 한 연구원이 도착했을 때는 오후 4시를 막 지나고 있을 때였다. 이미 김이 샌 동네 사람들은 자리를 떴고 눈이 이글거리는 기자들과 할 일 없는 유튜버들만 문 앞을 지키고 있었다. 그 사이 엄마는 정신없이 집 안을 왔다 갔다 하며, 운석을 들여다봤다가 나를 보고 한숨을 쉬다가 하며 초조하게 중얼거리기까지 했다. 눈치를 보는 나는 안중에도 없는 모양이었다. 덕분에 내리 3시간을 게임만 할 수 있었다. 띵동 - 또 한 번의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흰색 실험복을 입은 남자 하나와 정장을 입은 남자 하나였다. 그들이 등장하자 집 앞에 모여있던 이들이 홍해처럼 갈라졌다.
"한국운석연구센터에서 나왔습니다."
엄마는 반색을 하며 현관문을 벌컥 열었다.
"저기, 안녕하세요, 저 어젯밤에, 갑자기 하늘에서 뭔가 떨어지더니 그 안에 운석이, 아니, 구덩이가..."
정장을 입은 남자는 엄마를 안심시키기 위해 손을 들었다.
"걱정 마세요. 저희가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우리는 두 남자를 거실로 데려왔다. 그들은 오븐용 팬에 올려진 운석을 보고 약간 당황했지만 이내 필요한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실험복 남자는 마당으로 나가 구덩이를 조사했고, 정장 입은 남자는 엄마에게 몇 가지 서류를 내밀고 절차를 설명했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둘 사이를 왔다 갔다 했는데, 둘 다 "어른들 일하는데 방해하지 마"라고 했다. 그래서 얌전히 그들이 '처리'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남자들은 '처리'를 마친 후 운석을 조심스럽게 상자에 옮겨 담고 자리를 떴다. 엄마는 연신 잘 부탁한다는 인사와 함께 보상금을 받을 수 있는 게 확실한지 재차 확인했다.
그날 저녁 엄마는 동네에서 가장 핫한 스타가 되었다. 진짜 하늘에서 운석이 떨어진 거냐고 묻는 이장 할아버지의 전화, 연구원들이 떠난 뒤 한 인터뷰 영상이 잘 나왔다는 옆집 아줌마의 전화, 그것 때문에 연차 냈냐는 과장님의 전화. 심지어는 3년 동안 얼굴도 못 본 아빠에게까지 연락이 왔다, 그거 보상 얼마 받을 수 있냐고. 엄마는 "꼴좋다"라고 했다.
엄마는 일주일 동안 운석연구센터에 매일 전화를 걸었다. 이틀 째부터는 연결음은 계속 울리는데 답을 하지 않는 것으로 봐서 우리 집 전화를 무시하는 것이 틀림없다. 적어도 엄마는 그렇게 믿었다. 초조했다. 나는 학교 친구들에게 자랑했던 것이 물거품이 될까 봐 두려웠고, 엄마는 보상금을 받지 못할까 봐 근심했다.
하지만 결국 일주일 만에 연락이 왔다.
"운석이 맞습니다."
이번엔 우리 둘 다 한껏 소리 지르며 환호성을 내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