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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뚜아니 Apr 02. 2021

(끄적끄적) 고생했어, 치약아.

치약에게서 느끼는 동병상련.

졸린눈 비비고 화장실 거울앞에 서서 팅팅 부은 얼굴을 앞세워 칫솔과 치약을 집어 든다. 좁디 좁은 원룸 화장실에는 손만 뻗으면 모든것이 잡히도록 세팅이 되어있다. 눈은 감고 있어도 괜챃다. 몸이 기억하고 있다. 칫솔과 치약이 어디에 있는지. 변기 위 수납장에 넣어놓은 나의 소중한 칫솔과 치약. 잘못 집다가 며칠 쓰지도 않은 칫솔을 변기에 빠뜨릴때면 아침부터 화장실에서 샤우팅을 외치게 된다. '끼~~야' 아까운 내 칫솔. 


새로운 칫솔을 꺼낸다. 기분전환으로 내가 좋아하는 녹색 칫솔을 고르지만 쉽사리 분노가 사그라들지 않는다. 한동안 이가 시려 시린이 치약을 쓰고 있다. 배가 빵빵하던 치약은 한달 사이 홀쭉 말라버렸다. 아마도 치약을 많이 쓸수록 시린이가 빨리 나아질거라는 기대감에 나도 모르게 평소보다 많이 짜서 그랬나보다. 말라비틀어진 치약을 보니 마치 나를 보는듯 마음 한켠이 찡하다.아침부터 동병상련이다. 최근 한달동안 일이 계획된대로 되지 않아 몸은 몸대로, 마음은 마음대로 고생이 많아서 나도 치약처럼 살이 빠져 홀쭉해졌다. 나도 번아웃, 치약도 번아웃이다. 


그래도 양치는 해야하니, 안타깝지만 치약을 집어든다. 일이 나를 괴롭히듯, 반대로 나도 치약을 괴롭히고 있는 기분이다. 설마 가능할까? 어제 자기전 치약을 짤때도 힘이 들어갔었다. 아침부터 용을 쓴다. 혼신의 힘을 다해 엄지에 힘을주고 치약을 짜낸다. 들리지는 않지만 치약은 외마디 비명을 남기며 나에게 모든것을 주었다. 나의 라임오렌지나무가 생각난다. 아낌없이 주는 나의 시린이 치약. 가위로 반을 내서 속까지 박박 긁어서 더 쓰는 것이 국룰(국민룰.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정해진 규칙)이지만 그러기엔 마음이 너무 아파서 그만 놓아주려한다.


슬픔을 뒤로한채 차분히 양치를한다. 분노의 양치질을 하고 싶지만 내 잇몸은 소중하니까 살살 다룬다. '치카 

포카 치카포카'. 이제 남은건 느긋하게 변기에 반신욕 하면서 꺼내달라고 하는 칫솔. 고무장갑을 끼고 칫솔을 꺼내니 한숨인 나온다. 오늘 하루 얼마나 좋은 일이 벌어지려고 아침부터 이런 시련이 생기나 싶다. 다음부터는 꼭 자기전에 변기뚜껑을 닫아놓고 자야겠다. 치약을 분리수거함에 넣어두고 속으로 치약에게 마음을 전한다.


To, 치약.

덕분에 이가 안시려, 고마웠어. 나도 고생했고 너도 고생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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