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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뚜아니 Apr 25. 2021

(끄적끄적) 소스안먹는 남자 #1

시큼한 케첩이 싫어.

버거킹에 와서 햄버거 세트를 시키고 주문한 햄버거를 받았다. 참고로 나는 감자튀김을 케첩없이 그 자체로 즐긴다. 나에게 주어진 케첩을 반납하면서, 문득 내가 왜 케첩을 안먹는지 어린시절 기억이 떠올랐다.


초등학교 3학년 어느 점심시간. 선생님 지휘하에 급식당번인 친구들이 배식을 해주었다. 나 역시 줄을 서서 배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의 반찬은 기억은 안난다. 왜냐하면 이 날 받은 10살 소년의 트라우마는 25년이 지난 지금도 이어져오기 때문이다. 기억안나는 반찬을 받고 밥으로 야채볶음밥을 받았다. 국 받고 마지막 친구가 내 야채볶음밥위로 한바퀴, 두바퀴 케첩을 뿌려주었다. '나름 잘뿌렸지?'라고 자신의 실력을 뽐내듯 말이다.


나는 케첩을 어릴때부터 즐겨먹지 않았다. 케첩의 그 시큼한 향이 나에게는 쉽지 않았고 냄새만 맡아도 헛구역질이 났다. 그런데 더더욱이 케첩을 밥에 비벼먹으라니 '오 마이갓'.

'케첩은 안돼!' 라고 말하기도 전에 볶음밥에 뿌려진 케첩을 나는 그저 바라볼수밖에 없었다.

'친구는 잘 뿌렸지? 맛있게 먹어' 라고 했다. 그 말이 들리는둥 마는둥이었다.

'선생님은 편식하지 말고 골고루 먹어야지'라는 말로 얼어붙은 나를 돌려보냈고, 나는 케첩을 뿌려주는 친구에게 원망가득한 눈빛을 쏘면서 자리에 앉았다.


자리에 앉아서 나는 고민을 했다. 이걸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말이다. 케첩을 피해 살살 볶음밥을 먹기로 하고 야금야금 먹었다. 최대한 숟가락에 케첩이 닿지 않게 말이다. 옆에 친구들은 좋다고 케첩을 비벼서 맛있게 먹는데 나는 혼자서 케첩과 씨름을 하고 있었다. 열심히 먹었지만 그래도 케첩 2바퀴의 여파는 너무도 컸다. 10살 소년에게는 감당하기 너무 버거웠다. 결국 밥을 많이 남기고 식사를 마쳤다. 짝꿍은 무슨 케첩이 그렇게도 좋은지 숟가락을 박박 긁어가며 밥을 먹고 있었다.


더 이상은 안되겠다 싶어서 터덜터덜 식판을 반납하러 갔다. 퇴식구를 지키는 선생님은 왜 음식을 남기냐고 물어보셨다. '선생님 저는 케첩을 못먹어요' 라고 대답했더니 나를 돌려보내면서 '음식을 남기면 안돼, 다 먹고 오렴'라고 하셨다. 결국 식판 반납을 못하고 나는 다시 식판을 들고 자리에 앉았다. 자리에 앉아서 답답한 마음으로 케첩을 비볐다.


조금씩 퍼지는 케첩향에 헛구역질이 났다.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나 또 고민했다. 고민하다가 나는 코를 막고 먹기로 했다. 코를 막으면 맛을 못느끼니까 말이다. 한손으로 코를 막고 숟가락 밥을 크게 퍼서 막 먹었다. 코를 막아도 침투하는 그 케첩의 향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헛구역질을 참으면서 우걱우걱 먹었다. 사실 먹는게 아니고 삼켰다. 이때부터 나는 케첩만 보면 절래절래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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