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푸르나 둘레 길을 걷다 #15. May 17 (트레킹 13일 차)
하산하느라 계속 내리막길을 걷고 있어서 그런지 종아리가 많이 아프다. 아침을 먹고 여덟 시에 Marpha를 막 출발하는데 버스정류장 같은 곳에서 캐나다 커플, 말콤과 제시카가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안나푸르나 서킷 트레킹을 하는 동안 같은 사람들을 자주 마주쳤는데 소롱 라 패스를 지나고 나서는 차츰 사람들이 줄었다. 다 걷지 않고 내려가거나 버스를 타고 건너뛰며 가는 것 같았다.
평평한 산길을 따라 걸었다. 평화롭고 아름다운 길이었다. 두 시간쯤 걷고 사과나무가 많은 마을의 간이식당에 들어갔다. 점심 먹기에는 이른 시간이라 간식을 먹기로 했다. 집 담장 난간에 앉아서 잠시 쉬면서 사과나무가 담장을 이룬 마을을 내려다보았다. 마을은 고즈넉하고 평화로워 보였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부엌에서 애니타가 반죽해 놓은 것을 밀대로 밀어 티베트 브래드를 만들고 킴은 옆에서 그걸로 브래드를 굽고 있었다. 굽는다기보다는 거의 기름에 튀기는 수준이었다. 디와는 야채를 썰어 오믈렛을 만들고 있었다. 집주인과 친한 모양인지 자기 집에서 하는 것처럼 요리를 했다.
갓 구운 티베트 브래드와 오믈렛을 먹으면서 안주인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아래쪽 마을에서 이 마을로 시집을 왔는데 이제는 고향 마을보다 이 곳이 더 좋다고 했다.
'그래. 살다 보면 지금 살고 있는 곳이 좋지. 오래전 떠나온 고향에 가면 낯설기만 하지.'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캐나다에서 이십 년을 살았는데 지금 한국으로 돌아가면 살 수 있을까 싶다. 가끔 한국에 가면 낯설다. 분명 영어보다는 한국어가 더 편하고 한국의 모든 것이 익숙한데도 뭔지 알 수 없는 낯섦을 느낀다.
열 시 반. 집을 나서 다시 걷기 시작했다. 강을 따라가려고 강바닥으로 내려서는데, 젊은 서양 여자 둘과 함께 오던 가이드 아저씨가 강으로 갈 수 없고 산으로 가야 된다고 했다. 그 일행과 함께 강의 왼쪽 산비탈로 올라가 비탈을 타기 시작했다. 계곡을 지나가려면 산 위로 올라가야 하는 모양인데 중간에 내려가는 길로 잘못 접어들어 중간에서 길도 없는 곳을 헤치고 산꼭대기로 치고 올라갔다. 길도 없는 곳에 경사도 심해서 나뭇가지를 붙들고 힘들게 올라가야 했지만, 오래 걸리지 않아 꼭대기에 도착했다.
꼭대기에 도착해서 길을 찾아 내려오는데 천둥이 치고 비가 오기 시작했다. 배낭 커버를 씌우고 레인 쟈켓을 꺼내 입고 걷기 시작했지만, 비구름이 잠깐 지나가는 것이었는지 비는 오지 않았다.
한시가 좀 넘어서 Sauru마을에 도착했다. 오전에 간식을 먹었기 때문에 점심은 다음 마을에서 먹기로 하고 계속 걸었다.
검은 개 두 마리가 우리를 따라오고 있었다. Marpha에서부터 따라온 것 같았다. 처음에는 웬 개들인가 싶었지만 따라오다 말겠지 했는데 몇 시간째 우리를 따라오고 있었다. 주인 없는 개들이 길가는 트레커를 따라다니기도 하는 모양이었다. 애니타가 한 놈을 강 쪽으로 밀어 보기도 하고, 두 녀석이 서로 물고 뜯고 싸울 때는 때리는 시늉을 하며 위협을 하는데도 계속 따라왔다.
날씨는 점점 더위 졌다. 산 위쪽에 있을 때는 더운 줄 몰랐는데 아래쪽으로 내려오니 기온이 올라간다. 차도를 벗어나서 강을 따라 트레일을 걸었다. 바람도 불지 않고, 차도 다니지 않아서 좀 둘러가더라도 훨씬 좋은 것 같았다.
오후 세시 Kopchepani마을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다시 출발해서 네시 반에 Kalopani 마을에 도착했다. 오늘 묵을 게스트하우스는 지금까지 묵던 게스트하우스가 아니라 호텔이다. 이번 트레킹에서 묵었던 숙소 중에는 제일 좋다. 방에 욕실도 딸려 있고 욕실에 세면기, 좌변기와 샤워기도 있고 타월도 방에 비치되어 있었다. 모처럼 뜨거운 물로 만족스럽게 샤워도 하고 빨래해서 널어놓고 나니 저녁 먹을 시간이라 다이닝룸으로 올라왔다.
오늘은 20킬로미터를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