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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플 May 24. 2021

가다가 멈추어야 하는 순간

파타고니아 다이어리 2017 #5, 토레스 델 파이네 O 트레킹

12월 10일 (트레킹 5일 차)


계획대로 파이네 그란데 산장에 예약이 되었으면 천천히 내려가면 되지만, 예약이 틀어지는 바람에 일정이 빡빡해졌다. 하루 안에 파이네 그란데 산장까지 내려가서 브래타니코 전망대까지 올라갔다가 묵을 프란세스 캠핑장으로 가려면 서둘러야 했다.


6시에 일어나 옷을 갈아입고 배낭을 챙겨서 조용히 방을 빠져나왔다. 다들 그때까지 자고들 있었다. 7시에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점심을 받아 넣었다. 이제부터는 끼니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 앞으로는 풀 보드 밀로 예약을 했기 때문에 산장에서 세끼를 다 해결할 수 있다. 그레이 산장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시간만 있으면 좀 더 있고 싶지만 빨리 가야 한다.


그레이 산장 Refugio Grey – 파이네 그란데 산장 Refugio Paine Grande (11km) 3.5시간

길은 산기슭을 타고 가는 평지여서 힘들지 않았고 이른 시간이라 트레일에 사람도 거의 없었다. 가다 보니 타버린 나무들이 줄지어 나타났다. 산불에 타버린 나무들인 모양이었다. 파이네 그란데 산장 가까이 가자 반대편에서 오는 사람들의 드문드문 나타났다. 아침에 까따마란을 타고 온 사람들이 산행을 시작할 시간이었다.


11시 반에 파이네 그란데 산장에 도착했다. 건물이 그레이 산장보다 훨씬 크고 시설도 좋았다. 4시간 가까이 걸었기 때문에 목이 말라 산장 안에 들어가 가게에서 콜라를 하나 사서 점심 샌드위치랑 같이 먹었다. 밖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데 산장에서 트렁크를 끌고 배낭을 메고 나온 한 무리의 사람들이 호수가의 선착가로 걸어가서 배를 탔다. 트레킹을 끝내고 가는 사람들이었다.


파이네 그란데 산장-이탈리아노 캠핑장 (7.6km) 2시간


파아네 그란데 산장을 떠나 페호 호수 Lago Phoe를 지나자 길은 위쪽으로 올라가기 시작했고 바람도 거세졌다. 트레일이 스코트버그 호수 Laguna Sccottsberg 옆으로 접어들자 바람에 몸이 휘청일 정도였다. 선캡을 뒷머리 묶는데 걸고 그 위로 밴디나로 고정을 시켰는데도 바람에 모자가 벗겨져 날아가서 뛰어가서 모자를 잡아야 했다. 길은 숲으로 올라갔다. 계곡을 건너 반대편 숲 속으로 좀 더 올라가자 이탈리아노 캠핑장이 나왔다.


Italiano 캠핑장


이탈리아노 캠핑장은 무료인데 선착순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캠핑장에는 캠프 사이트는 많지 않은 것 같았다. 지금까지 잤던 캠핑장은 유료로 운영하는 곳이라 텐트가 세워져 있었는데 텐트가 많이 보이지는 않았다. 백패킹을 하는 트레커들은 이곳에 백팩을 두고 브라타니코 전망대 Mirador Britanico에 갔다 온다고 했다. 이미 올라간 트레커들의 백팩이 길옆에 서 있었다. 안내판에는 브리타니코 전망대까지 가기 위해서는 3시 이전에는 출발해야 한다고 써져 있었다. 2시 조금 지나서 도착했기 때문에 올라갈 수는 있는 시간이었다. 배낭이 무겁지도 않고 물은 가져가야 할 것 같아서 배낭을 지고 출발했다.


Mirador Frances 2시간


지도에는 이탈리아노 캠핑장에서 브래타니코 전망대까지 5.5킬로미터 2시간 반 걸린다고 나온다. 오래 걸리는 것으로 나오는 걸 보니 길이 험하겠다. 벌써 이십 킬로미터 가까이 걸었는데 5시간 동안 올라갔다 와서 다시 캠핑장까지 가야 한다. 캠핑장 예약이 겹치면서 하루를 줄이는 바람에 어제오늘 이틀 좀 힘든 일정이 되었다.


트레일은  프렌치 밸리 French Valley를 따라 올라간다. 크릭 따라가다가 계곡 길로 접어들었다. 길가에는 빨간 열매들이 핀 나무들이 많이 있었다. 무슨 열매인지 궁금했다. 올라가는 사람들은 계속 보이는데 내려오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계곡의 돌길로 올라가는데 산길로 접어들면서 비탈을 올라가야 했다. 날씨가 점점 흐려지고 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바람에 빗방울이 실려 날아오고 있었지만 비는 아직 내리지 않았다. 비탈을 빠져 올라가자 전망대가 하나 나타났다.  

프란세스 전망대


프란세스 전망대였다. 계곡 아래로 호수가 보이고 계곡 건너편과 뒤편으로도 빙하가 보인다. 삼봉이 옆으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쟈켓 안에 패딩을 입고 말린 과일도 먹고 물도 마시면서 앉아서 쉰다. 바람이 심하게 불어서 바위를 방패막 삼아 바람을 피했다.


한 시간쯤 올라왔는데 지도상으로 삼분의 일 정도 온 것 같다. 계속 올라가야 할지 고민이 됐다. 한 시간 반 정도면 올라가긴 할 것 같은데 비가 오면 경치는 꽝일 테고 돌길이라 내려가기도 힘들 것 같다. 바람이 심해서 오래 앉아 있을 수도 없었다. 여기서 구경하는 걸로 만족하고 내려가기로 했다.


설렁설렁 내려가기 시작한다. 여자 트레커가 오는 길에 무슨 열매인지 궁금했던 빨간 열매를 따먹고 있었다. 물어보니 엘 깔라파테 열매라고 했다. 먹어도 되는 건지 몰랐는데 먹을 수 있는 거였나 보다. 따먹어 봤다. 체리보다는 좀 딴딴한 느낌이고 달았다. 엘 깔라파테의 지명은 이 열매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궁금하다. 열매가 보이면 따먹어가며 내려왔다.


네시, 다시 이탈리아노 캠핑장에 도착했다. 물이 떨어져서 캠핑장에서 물을 채웠다.


이탈리아노 캠핑장 – 프란세스 캠핑장


프란세스 캠핑장까지는 삼 킬로미터로 트레일은 숲 사이로 나 있었다. 수풀도 무성해서 숲을 헤치고 가는 느낌이었다. 개울을 건너기도 했다. 비가 살짝 흩뿌려서 좀 서둘러 걸었다. 캠핑장 표지판이 보이고 호수 쪽으로 내려가는 길과 올라가는 길로 갈라져서 윗길로 조금 가자 텐트들이 보였다.


체크인을 해야 하는데 거기는 텐트들 밖에 안 보여서 샤워실이 있는 건물 쪽으로 내려가다 직원을 만나 체크인을 하고 텐트를 배정받았다. 비탈에 다리를 받치고 나무 텐트 패드를 설치해 놓아서 마치 평상 위에 텐트를 세워놓은 것 같았다.

샤워시간이 정해져 있다고 해서 시간에 맞춰 샤위실로 내려갔다. 샤워실은 남녀 구분되어 있었고 여자 샤워실에 들어가자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줄을 서서 왜 샤워를 하지 않느냐고 물어보니까 시간이 되었는데도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아서 샤워를 못하고 있고 누가 물어보러 갔다고 했다. 한참 기다린 후 뜨거운 물이 나오고 제일 앞에서 기다리던 여자 둘이 샤워실로 들어갔는데 샴푸와 세제를 주고받으면서 계속 이야기를 하면서 끝도 없이 샤워를 했다. 들어보니 스페인어는 아니고 포르투갈어였다. 아르헨티나에서 온 것 같았다. 사람들이 줄 서 있는 상태에서 들어갔으니 사람들이 기다리는 걸 알 텐데 집이 아닌 곳에서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지 않고 행동하는 것이 참 이해가 안 된다.


내 앞에 대여섯 사람들이 서 있었기 때문에 대충 계산을 해봐도 저녁식사 시간 전에는 샤워를 할 수가 없을 것 같아서 포기하고 줄에서 빠져나와 세면도구는 텐트에 두고 저녁을 먹으러 식당으로 내려갔다. 식당은 한참 내려가야 했다. 식당은 건물 이층에 있는데 창으로 호수가 내려다 보였다. 혼자 트레킹을 하는 호주 여자분과 일본 여자 남자와 같이 저녁을 먹었다. 호주 여자분은 은퇴하고 세계 이곳저곳을 혼자 여행하는 중이었고 일본 여자 남자는 처음에는 동행인 줄 알았는데 오던 길에서 만나 같이 온 거라고 했다. 모두 W코스를 걷는 중이고 텐트가 아니라 도모에서 잔다고 했다. 도모는 호수 가까이 있었는데 큰 공처럼 생긴 건물이었다.


저녁을 먹고 올라와서 다시 샤워하러 갔는데 사람들의 줄은 없어졌는데 샤워를 마치고 나오는 사람이 뜨거운 물이 안 나오고 물이 미지근하다고 했다. 오늘 제대로 샤워하긴 그른 것 같다. 대충 빨리 씻고 나왔다.

오늘은 전망대까지 올라가다 말아서 정확하지는 않지만 25킬로미터 정도 걸었다. 이틀 연속 길게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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