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가야 하는 것일까?
(Imaged from Pixabay)
드디어 한국에 왔다. 코로나로 여행이 어려워졌다. 그래서 지난 2년 동안 몸을 사리며 거의 방콕 하는 생활을 하며 다시 어디로 떠날 수 있을 날을 기다리며 살아왔다.
다른 나라로 여행 가는 건 안 가면 그만이지만 한국은 그럴 수 없는 곳이다. 법적으로 캐나다 시민권을 가진 캐나다 사람이지만, 여전히 한국은 내 나라고 부모님과 형제들이 다 한국에 살고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당장 들어가야 하는 일이 있는 것도 아니니 차일피일하는 마음과 들어가야 하나 말아야 하는 마음 사이를 오락가락하고 있다가 한국에 들어와야 할 일이 생긴 것이 아니라 내 상황이 급 진전해지는 바람이 한국을 들어오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전에 한국 오가는 일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는데, 이 상황에 한국을 들어가지나, 넘어야 할 산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우선 한국과 캐나다 간의 무비자 협정이 팬데믹으로 잠정 중지되어서, 나 같은 외국인은 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비자가 필요했다. 캐나다 시민권을 받고 한국 국적 상실 신고를 하지 않고 있었다. 그 당시에는 국적 상실 신고를 늦게 하면 벌금을 내야 했고 국적 상실 신고를 하지 않는다고 크게 문제가 될 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사람이 이민을 가서 그 나라 시민권을 따고 국적 상실 신고를 하지 않으면 한국에서 비자를 내주지 않았다. 국적 상실 신고를 하려면 한국에서 발행하는 증명서들이 필요한데 그 증명서를 영사관에 신청하기 위해서도 영사관에 업무 예약을 잡아야 하고, 신청서 신청해 놓으면 받는데 2주가 걸리고 그걸 받아서 다시 비자 신청을 하기 위해 예약을 잡아야 했다.
단수비자받기는 좀 쉽지만 재외동포비자를 받으면 한국에 90일 이상 머물 수 있고 거소증을 받으면 여러 번 왔다 갔다 할 수 있어서 좋은데 신청하려면 캐나다 경찰에서 범죄경력증명을 받아야 했다. 11월 초에 한국을 가려고 마음을 먹었는데 서류 준비하느라 한 세월, 경찰서에 가서 지문 조회해 놓고 그 결과받아서 비자 신청을 하는데 한 달이 걸렸다.
비자 나오는 다음 날로 비행기표를 끊었는데, 오미크론 변이 때문에 한국에 있는 직계가족을 방문할 경우 가능했던 자가격리 면제가 전면 취소되었다. 오미크론 사태는 진정될 기미는 보이지 않고 결국 1월 초까지 한국에 입국하는 모든 사람은 자가 격리를 해야 했다.
또 출발 전에 PCR 테스트를 받는 것도 여권은 비자 때문에 영사관에 묶여 있는데, 여권 없으면 테스트를 받을 수 없다고 해서 테스트 취소했다가 여권 첫 페이지 복사본 가져가면 된다고 해서 다시 예약하는 법석을 피우고 테스트를 받을 수 있었다.
드디어 떠나는 날이 되었다. PCR테스트 결과 랑 백신 확인서까지 서류를 한 아름 안고 공항으로 갔고, 공항은 코비드 때문에 한산했지만, 검색대를 통과하는 건 더 까다로워져서 시간이 더 걸렸다.
무사히 비행기를 탔다. 비행기는 승객이 반 정도밖에 차지 않았고 코비드 때문인지 일행이 아니면 다 떨어져 앉았다. 계속 마스크를 쓰고 있다가 밥을 먹기 위해 벗으니까 살짝 불안하긴 했지만, 떨어져 앉았으니 좀 낫겠지 하면서 재빨리 먹어 치웠다. <노매드랜드>와 <미나리> 영화 두 편을 보고 좀 자고 그래도 시간은 더디게 흘러가고 11시간은 길었다.
승무원이 밥 줄 때나 서류 줄 때 한국 사람이냐고 물어보는데 밥 줄 때는 한국말로 설명하려는 것이니까 ‘예스’였고 서류를 받을 때는 ‘노’였다. 한국 사람이다가 외국 사람이다가 왔다 갔다 하는 기분.
예전에는 안 썼던 서류를 두 개를 더 작성했다. 인천공항에는 오후 5시쯤 내렸다. 제일 먼저 건강상태를 물어보는 질문지를 냈다. 부모님 댁은 자가 격리를 하기가 어려울 것 같은데 격리 시설로 갈 수 있는지 물어보니까 나는 단기체류 비자가 아니라 재외동포비자-이것은 장기체류에 해당된다-라서 원칙적으로 자가 격리해야 한다고 했다. 집에서 안되면 자가 격리할 숙소를 직접 찾으라고 하면서 자가 격리할 수 있는 호텔 이름을 알려주었다.
그곳을 나오자 자가 진단 앱을 설치해주는 곳이 나왔다. 그 앞에 유심 칩 파는 부스가 있어서 데이터와 전화 수신이 가능한 유심칩부터 구입했다. 거기 자가 격리자들이 묵을 수 있는 호텔 광고판을 보고 카톡으로 메시지를 보냈는데 답이 빨리 안 와서 기다리고 있는데 자가 진단 앱 설치해주는 군인들이 빨리 오라고 불러서 우선은 그곳에 가서 앉았다. 승객들이 없어서 다른 군인들은 정리하고 나가고 마지막으로 남은 애기 애기한 군인 앞에 앉았는데 앱 설치했는지 물어보고 폰을 달라고 했다. 내가 집에서 자가 격리를 할 수 없을 거 같아서 다른 곳을 찾아보아야 할 거 같다고 하는데도 자가 격리해야 한다고 했으면 집으로 가면 되지 않냐면서 우리 집 주소로 자기 격리 앱을 등록해주었다. 필요한 건 내가 찾아봐야 하는 거고 부산 집 주소로 등록을 해주니 우선 부산으로 가야 할 거 같았다.
그다음에는 입국심사대를 통과하고 수화물을 찾으러 갔더니 내 가방만 돌고 있었다. 가방을 찾아서 마지막으로 세관신고서를 내고 나오는 것으로 입국절차가 끝났지만, 부산으로 어떻게 가야 하는 건지 집에서 과연 자가격리를 할 수 있을지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았다.
5시 좀 넘어서 랜딩하고 수속하고 나오는데 한 시간 정도 걸려서 6시가 좀 넘은 시간이었다. 공항에서 리무진 버스를 타고 광명역으로 가서 거기서 KTX를 타고 부산으로 가서 거기서 다시 집에 가면 한밤중에 도착할 텐데 생각만 해도 피곤했다. 그런데 출국장 바로 앞에 안에서 보았던 자가격리 호텔 부스에 사람들이 있길래 가서 자가 격리하는 장소를 바꿀 수 있는지 물어보니까 호텔로 가면 호텔에서 보건소로 연락해서 바꿔 줄 수 있는데 동생집으로 가려면 직접 검역관을 만나러 가서 자가 격리 주소를 바꾸라고 했다.
귀찮니즘이 경제관념을 이겨서 그 자리에서 자가 격리 호텔로 가기로 결정했다. 캐나다에서는 돈 벌겠다고 그렇게 열심히 설명하고 그러지 않는데, 한국에서는 다들 참 열심히 산다 싶어서 좀 넘어가 주기로 했다. 과소비했다는 마음은 잠시 접어두고.
리무진 버스 타는 곳에 가서 호텔 가는 리무진 버스표 사서 7시 20분에 버스를 탔다. 리무진 버스는 여객터미널에 들리고 여기저기 손님들을 내려주고 호텔에는 9시가 다 되어서야 도착했다. 호텔비를 선불로 지불하고 체크인하고 챙겨주는 도시락을 받아서 방으로 올라왔다. 이만하면 큰 어려움 없이 잘 온 거야.
이제부터 열흘 동안 이 안에서 잘 버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