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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레네 Dec 14. 2021

김밥 옆구리 터질 때

시골 사색 - 오늘

- 아아!! 아빠~

새벽이었다.

건넌방에서 자던 아들이 잠결에 깼다.

아빠가 옆에 없다는 걸 알고 소리쳤다.

우리 집에서 흔한 일이다.

아들은 꼭 아빠가 재워 주어야 잔다.

자다가 혹시라도 눈을 뜨면 아빠가 곁에 있어야만 안심한다.

딸아이는 자다가 깨도 다시 잠이 들거나 엄마에게로 와서 잔다.

둘은 너무나 다르다.


새벽시간에 깨면 다시 잠들기가 어렵다.

그렇다고 누굴 찾지는 않는다. 하지만 뭔가 거리를 찾는다.

책을 본다던 가. 다 고치지 못한 글을 다시 뒤적거려 본다.

그러다 보면 시간은 이내 아침이 된다.

문제는 그때부터 졸리다는 사실이다.

이른 새벽부터 깨어있어 어지러웠다.

- 나 조금만 자고 일어날게요.

그리고는 한참을 잤다.


미리 일어나 아침 준비를 해야 하건만 아이들이 일어나는 시간 같이 일어나게 된다.

그래도 엄마라고 밥 못 먹고 가는 건 안쓰럽다.

집에 김밥 재료가 있어 그 바쁜 와중에 재료를 준비한다.

금방 될 줄 알았다. 내 손이 그렇게 굼뜬 걸 늘 잊어버린다.

- 다 돼가. 꼭 먹고 가.

아이들은 번개같이 준비하고, 아기새처럼 입을 벌리고 앉았다.

- 이제 썰면 돼.


아뿔싸!

칼이 그 얇은 김을 썰어내지 못하고 뭉그적 거렸다.

열심히 쓱싹거리는데 '퍽'하고 김밥이 터져 버렸다.

내 마음도 터졌다. 화가 났다.

- 칼이 왜 말을 안 듣지!

칼을 갈아 본 적이 없다.

어제가 결혼 13주년이었으니, 13년 된 부엌칼이다.

난 왜 한 번도 칼을 사야겠다 생각을 못했을 까.

이렇게 급하게 김밥을 썰어 본 적이 없어서일 까?



잘하고 싶었는 데, 힘을 주는 데도 무뎌져서 제대로 해내지 못할 때.

마음이 터진다. 화가 나온다.

감출 수도 없는 날 것이 눈에서 얼굴에서 입으로 나온다.

칼은 새로 살 수 있지만, 터진 내 마음은 어떡해야 하나.


그렇게 전쟁같이 아침을 치르고 모두가 외출했다.


얼마 전 도서관에서 빌려 온 '구백구 상담소'라는 책이 눈에 띄었다.

아들이 한참 보더니 재밌다고 했던 만화책.

읽다 보니 내 마음도 갈아졌다. 조금은 부드럽게.


다음엔 내 실력에 맞게 2시간쯤 미리,

아니면 잘 드는 칼을 준비해야 맛있는 김밥을 먹을 수 있겠지.


김밥 옆구리 터지는 바람에 오늘은 글도 쓸 수 있었으니,

그거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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