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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핌 Feb 08. 2022

01. 제주살이,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10년간의 제주 이주의 여정, 2012년 그 시작

글을 시작하며


제주도에 첫발을 뗀 2012년부터 햇수로 10년

이제는 더 이상 여행객으로 보이지 않으며, 제주도민이라고 말하는 게 어색하지 않아 졌다.

제주도는 또 하나의 고향, 익숙한 곳, 그저 삶을 사는 곳이 되었다.


지난 10년을 뒤돌아보며, 어떻게 제주도에 오게 되었는지 그 시작과 정착을 하기까지의 우여곡절, 그리고 평범한 일상이 되기까지의 여정을 정리해 보기로 했다.




번 아웃에서 파이어족으로!


나의 제주살이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때는 2012년, 직장 생활 10년 차, 어느 날! 문득! 갑자기! 일이 하기 싫어졌다.

요즘은 번아웃(Burnout)이라는 말들을 흔하게 사용하지만, 당시에는 딱히 표현할 단어가 없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 한지 10년.

이런저런 회사를 옮겨 다니다가, 한 회사에 정착하여 만 6년이 흘렀고 7년 차 장기근속 중이었다.

내가 근무했던 7년 동안 5명으로 시작했던 직원은 20여 명으로 늘어났고, 사옥을 지어 이전을 했으며, 중국 지사와 현지 공장이 새워졌고, 제2사옥 신축까지 예정되어 있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던 주임에서, 대리, 과장, 그리고 팀장으로 회사와 함께 성장해 가고 있었다.

30대 초반의 이른 승진과 안정된 직장, 회사에서의 역할과 위치는 겉으로 보기에는 좋아 보였지만, 오히려 이른 승진이, 어린 나이의 책임감이, 각 팀원들의 중간 관리자 역할을 하는 것이, 사장님과 이사님 외에 조언을 구할 사수가 없던 나로서는 벅찬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30대 초반의 나이에, 의아해하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사표를 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번아웃 왔고, 이른 파이어족이 되길 희망했던 것 같다.


얼마 전 유 퀴즈 온 더 블록에 41세의 파이어족이 출연했다.

퇴직 후 여유로운 시간 속에서도 아침 운동으로 자기 관리를 하고 여행을 즐기며, 시간이 날 때는 자신이 하고 싶었던 글 쓰는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충분하진 않지만 안정적인 은퇴자금을 확보한 소위 성공한 파이어족의 스토리였다.


나의 33살 퇴사 선언은 당시 많은 질문에 부딪쳐야 했다.

'지금부터 뭐해 먹고살래?'

'그 나이에 다시 취업이 쉬운 줄 알아?'

'결혼은 언제 할 거야?'


나는, 느지막이 일어나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여행을 다니며 새로운 경험을 하고, 여유롭게 않아 수를 놓으며 살고 싶었다. 간섭받지 않을 나만의 공간과, 굶지 않을 정도의 밥벌이면 되었을 터였다.


응원과 부러움을 사는 TV 속 누군가와, 많은 저항에 부딪치며 이루지 못한 꿈에 아쉬워하는 지금의 내 모습이 비교되어 씁쓸해졌다. 


그렇게 무작정 사직서를 내고, 혼자만의 시간이 주어 졌다.




나 홀로 제주여행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제주도는 핫! 한 곳이었다. 

제주도 이주 1세대라고 불리는 이들의 에세이 책이 출간되고, 예술가들의 제주도 삶이 언론에 오르내리던 때였다. 아름다운 제주의 자연과 함께 여유롭게 사는 그들의 삶이 아름답게 포장되어 방송을 탔다.

나 역시 그런 모습들에 막연한 환상을 갖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퇴직 후 시간적 여유가 많았던 나는 혼자만의 여행지로 제주도를 선택했다. 

이미 가족과 함께, 친구들과의 여행지로, 스쿠버 다이빙을 하러 여러 차례 방문했던 제주도였지만, 다시 한번 제주도를 온전히 경험하고 싶었다. 처음 떠나는 혼자만의 여행이었다.


올레길을 따라 천천히 걷는 뚜벅이 여행을 계획하고 배낭을 꾸렸다. 


나의 첫 숙소는 올래 1코스 지점에 있던 시흥리의 '오신생할망집'이었다.

느지막이 일어나 동네 구경을 다니고, 할망집 앞 민박과 함께 운영하는 슈퍼마켓에서 귤을 까먹으며 동네 사람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절반 이상 못 알아 들었던 제주어 대화 속에서 귤이 여러 품종이 있다는 것도, 귤을 담는 노란 상자를 '콘테나'라고 부른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다.

여행객으로 방문했다가 제주도에 살게 되었다는 동네언니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는데, 연세로 살고 있는 제주 구옥 집주인 할아버지가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 간섭을 한다는 이야기며, 귤을 따러 갔던 이야기, 선반 수리는 누구에게 부탁하면 된다는 등 사람 사는 이야기 었다.

어느 날은 그림을 그리는 여행객과 직접 그린 여행일기를 보며 밤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들 허전한 마음 한구석, 다친 아픔을 제주도의 자연 속에서 사람과 함께 치유하며 보내고 있었다.  


다음날 밥을 먹으러 가려는데 지갑에 찾아놓은 현금이 거의 없었다. 어디든 카드가 되고 편의점마다 현금 지급기가 있는 서울 생활에 익숙해져 현금을 따로 준비하지 않은 탓이었다.

해안도로를 따라 한참을 걸어가다가 편의점을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에 들어가 봤으나, 현금지급기는 없었다. 손님도 없고, 물건도 거의 채워져 있지 않던 이제 막 오픈한 듯한 썰렁한 편의점의 주인아저씨는 편의점에서 현금 지급기를 찾는 나를 의아해했다. 춥고 배고프고 현금은 없고, 어떻게 할지 고민을 하다가 일단 카드가 되는 식당을 찾아 밥을 먹기로 했다.

당시 올레 1코스 해안도로에는 식당뿐만 아니라 건물도 거의 없었다. 한참을 걸어 해녀의 집을 발견하고 카드결제가 되는지 확인 후에 전복죽을 시켰다. '시흥해녀의집'이 가게 이름이 아니라 정말 시흥리의 해녀 분들이 하는 어촌계 식당이라는 건 나중에 알게 되었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쌀쌀한 날씨에 해안도로를 한참이나 걸었던 나에게 전복죽 한 그릇은 정말 꿀맛이었다. 

전복죽 한 그릇을 싹싹 비우고, 현금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 항구가 떠올랐다. 항구에는 뭐라도 있겠지! 어차피 올레길을 걸으려고 했고 우도에도 가보고 싶었으니 일단 성산항에 가보자 결심을 하고 다시 해안도로를 걸어갔다.


지금이야 어디든 편의점도 많고, 카드를 안 받는 가게도 거의 없지만, 10년 전 제주도는 버스도 현금으로 타던 때였다. 버스카드가 보급은 되었지만 시행 초기라 카드 종류에 따라 안 되는 것도 있었고, 요금도 거리마다 달랐다. 버스 기사님은 사람이 탈 때마다 어디를 가는지 물으며 가격을 알려 주었고, 현금으로 받은 지폐를 가지런히 정리해 요금통 옆에 꽂아 두었다가 만 원짜리를 내는 손님에게 자연스럽게 거슬러 주었다. 버스 맨 앞자리에 앉으면 커다란 버스 창문으로는 제주도의 풍경을 감상하고, 정거장에서는 타고 내리는 손님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생각대로 성산항에는 현금 지급기가 있었다. 다음 여행을 위해 충분한 현금을 찾고 우도로 가는 배에 올랐다. 휴학을 하느라 함께 가지 못했던 대학 동기들의 졸업 여행지가 제주도 우도여서, 친구들에게 여러 번 말로만 들었던 우도의 해변을 꼭 가보고 싶었다. 우도에 내려 어디로 갈지 지도를 보는 사이 삼삼오오 북적거렸던 항구가 혼자 남아 한산해졌다. 

우도 쇠머리오름도 올라가고 산호 해수욕장도 가보고 싶었지만, 이미 숙소에서 항구까지 한 시간 넘게 걸어왔던 나는 우도를 돌아볼 체력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래도 없는 체력을 끌어올려 해안도로를 따라 걷고 또 걸었다. 누군가 쌓아 올렸을 수많은 돌탑과 반짝반짝 빛나는 하얀 모래사장 위 투명하게 부서지는 파도가 나에게 힘내라며 손을 흔드는 듯했다. 봄이 오기 전 3월의 차가운 바람에 쓸쓸함이 밀려왔다.


혼자만의 해방감과, 외로움의 경계에서 혼란스러운 내 심정만큼, 3월의 제주는 하루하루 달랐다.

차가운 바람에 내복을 찾고 옷깃을 여미고 기도 하고, 따뜻한 햇살에 외투를 벗게 되는 날도 있었다.

날이 많으면 맑은 대로, 흐리면 흐린 대로, 추운 날도 따뜻한 날도 시시각각 변하는 제주의 자연은 그날그날의 아름다운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 주었다. 


버스를 타고 올레 2코스 지점, 이름도 생소한 광치기 해변에 내려 마주한 이색적인 풍경은 나를 압도하며 커다란 감동을 주었다.

광치기 해변은 지금은 이미 유명한 관광지가 되어버렸지만, 그때는 정말 알려지지 않은 외딴 해변이었다. 인적 없는 광활한 해변에 태초의 모습처럼 펼쳐진 바다, 돌과 이끼 모래에 반사된 햇살과 저 멀리 성산일출봉이 만들어내는 풍경, 그리고 해변을 달리는 말들까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그 풍경을 잊지 못해 나중에 몇 번을 찾아갔지만, 그때의 감동을 느끼긴 어려웠다. 

알아보니 간조시간을 잘 맞춰가야 물이 빠진 풍경을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우연히 방문한 그때 그 시간이 나에게 멋진 풍경을 선물해 줬던 것이다. 남아 있는 사진이 있긴 하지만 그때 그 감동은 사진보다는 내 눈과 마음에 담겨 있다.


중간중간 버스로 이동을 하고 올레길을 걸으며 혼인지에 도착했을 때에는 주변에 사람 한 명 없었다. 

잘 꾸며진 한적한 정원은 제주의 삼심과 떠내려온 이웃나라 세공주의 결혼 스토리에 상상력을 더하기 좋았지만, 신방을 꾸몄다는 땅으로 이어진 동굴 앞에선 혼자 둘러보기 조금 스산하기도 했다. 

나중에 혼인지에서 진행하는 전통혼례를 체험해보는 행사가 있었는데, 신청 자격에 몸무게 제한이 있어 신청하지 못했다. 아마도 가마꾼이 대부분 어르신 들이라 그랬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한동안 신랑이 놀려대던 게 기억이 난다. 이후 수국을 가득 심어 수국 명소가 되어버린 혼인지는 더 이상 한적하고 조용한 정원이 아니게 되어 버렸다.


올레 3코스를 마치고 도착한 표선해수욕장은 사막처럼 넓은 해변에 파도가 옆으로 치는 신기한 해변이었다. 시선을 달리하니 파도가 옆으로 치는 게 아니라, 모래사장이 좌우로 길게 뻗어 있는 것이었다. 

멋진 풍경에도 뱃속은 꼬르륵 신호를 보내왔다.

혼밥족이 거의 없던 10년 전 해변의 식당가는 혼자서 선뜻 들어가기 망설여지는 분위기였다. 마침 눈에 들어온 올레센터에 들어가 혼자 밥 먹기 편한 식당을 추천받기로 했다. 올레센터를 지키던 어르신께서 1인분을 시켜도 잘 차려준다며 고깃집 한 곳을 알려주셨는데, 정말로 고기 1인분 주문을 대수롭지 않게 받아 주시고 한상 가득 반찬을 차려 주셨다. 덕분에 혼밥 난의도 최강이라는 1인 삼겹살에 소주를 무려 10년 전에 성공적으로 먹을 수 있었다. 지금도 혼자 고기를 먹을 수 있냐고 묻는다면 글쎄, 다시 시도해 보지는 못할 것 같다.


두 번째 숙소는 산방산 근처 대정에서 머물렀던 아일랜드 게스트하우스였다. 말레이시아 여주인이 운영하는 곳으로 남녀 구분이 없는 도미토리를 처음 경험했다. 내 또래의 외국인이 홀로 제주도에서 와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다는데 나라고 못하라는 법이 있나!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이국적으로 꾸며진 숙소 안 바에 앉아 처음 보는 여행객과 와인을 나눠 마시며 밤새 떠들었던 추억과, 추천해준 마을행사에 뻘쭘하게 참여했다가 몰래 빠져나온 일도 기억에 남는다. 당시 행사에서 통기타를 치며 제주어 사투리로 노래를 부르던 현지 가수의 모습을 나중에 제주방송 TV에서 다시 볼 수 있었다.

산방산 탄산온천에 다녀오는 길 버스를 타려고 정류장에서 한참을 기다리다가, 태워주겠다는 낯선 이의 권유를 거절하던 일도 생각이 난다. 한 시간에 한대 다닐까 말까 했던 시골 마을버스의 사정을 잘 아는 주민이 베푼 친절한 호의였을 거라는 걸 제주에 살면서 깨닫게 되었다. 지금은 나도 시골길 혼자 걷는 학생을 만나면 뒷좌석을 내어주는 일이 익숙해졌다. 그날은 결국 숙소까지 걸어서 갔다.


여행 일정이 끝나가던 즈음, 마라도를 가볼 생각에 모슬포로 향했다. 마라도를 가는 배가 모슬포항이 아니라 운진항으로 가야 한다는 걸 몰랐던 때였기에, 작은 고깃배가 가득한 모슬포 항구를 몇 바퀴나 돌았지만 결국 선착장을 찾지 못해 포기하고 밥을 먹기로 했다. 대로변 사람이 가장 많던 식당으로 들어가 짬뽕을 먹었는데 소문난 맛집이라는 건 나중에 알았다. 해물 가득한 매콤한 짬뽕이 추위와 피로를 싹 날려 주었다. 최근에 '홍성방'으로 검색을 해보니 예전의 모습은 사라지고 리모델링한 요릿집이 되어 있었다. 배를 두둑이 채우고 모슬포 중앙시장에서 귤과 옥돔을 한가득 택배로 보내는 것으로 올레 10코스에서 제주도의 여행이 끝나 가고 있었다.


올레 1코스부터 10코스까지 때로는 걷고 때로는 버스를 타며 홀로 지나온 여행지와 풍경들은 지금도 그 장소를 지날 때면 추억이 되어 떠오른다. 길지도 짧지도 않았던 혼자만의 일주일은 이후로도 없었던 혼자만의 가장 긴 시간이었다. 


제주도에서 여행을 하며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머릿속에서는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바닷가에 작은 집 하나, 셰어하우스를 운영하며 여름에는 물놀이와 스쿠버다이빙을 즐기고, 계절마다 바뀌는 올레길을 걷고, 틈틈이 바느질로 만든 작은 소품을 올레 장터에서 판매를 하는 소소한 삶.

막연했던 꿈이 가능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긍정의 상상으로 구체화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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