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핌 Feb 14. 2022

03. 제주도 이주민들의 텃세

10년간의 제주 이주의 여정, 2012년 그 시작

아는 사람이 더 무섭다


오랜 직장생활 동안 모아놓은 돈과 퇴직금을 탈탈 털어 땅을 샀다.

제주도에 공동명의로 240여 평의 땅이 생겼다.


땅이 생겼다는 기쁨도 잠시 현실적인 문제들이 하나 둘 튀어나왔다.

땅을 소개해준 K는 터무니없는 수고비를 요구했다.

처음 소개를 해줄 때만 해도 D의 선배로서 어린 친구들 도와주는 거라고 하였다. 결국 선한 마음의 호의는 수고비를 위함이었다. 공인중개사도 아닌 K가 수고비라며 요구한 금액은 법정 매매 수수료의 3배를 넘는 금액이었다. 토지를 저렴하게 구매하도록 도와준 명목이라고 했지만, 알아보니 땅 주인에게는 시세보다 비싸게 팔아줬다며 차액을 크게 챙긴 후였다. 


처음부터 '그 땅'을 팔아 큰 차액을 챙기기 위한 목적으로 우리에게 소개해 줬던 것이었다.

'아는 사람이 더 무섭다.'

'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도 없다.' 


나는 공인중개사법에 명시된 토지매매 수수료만 주겠다고 하였다.

중간에서 입장이 난처해질 친구 D 였지만 그것이 최선이었다.


K를 믿고 일을 진행했는데, 더 이상 믿을 수 없어졌다.

모든 계획을 중단하고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 보기로 했다.




이주민들의 텃세


얼마 후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우리가 매매한 토지는 조천읍의 중산간에 위치한 작은 마을 안에 있었다.

커다란 비닐하우스를 중심으로 여러 나무들이 심어져 있었고, 이것 저것 잡동사니들이 늘어져 있었다. 전 주인이 가꾸지 않아 방치된 밀림과도 같았지만 잘 꾸미면 예쁜 정원이 될 터였다. 한쪽에는 닭과 오리를 키우는 울타리도 있었는데, 닭과 오리는 원 주인이 매매 전 모두 정리한다고 하였다.

등기 이전이 완료되고 토지를 정리하러 갔을 때 옆 교회의 목사가 찾아왔다.


다짜고짜 나무를 파간다는 것이었다.

어이없는 상황에 자초지종을 알아보니 땅의 원 주인이 나무를 교회에 기증했다는 것이었다.

매매 과정에서 아무런 이야기를 듣지 못한 우리는 항의했지만, 목사는 지상권 운운하며 으름장을 놓았다. 

그 와중에 동네 주민인 듯 옆에 서있던 아저씨가 나서더니 나무를 옮겨 심는 작업을 자신의 포클레인으로 하기로 했으며 작업비는 나무 받아가기로 했다고 거든다. 

원래 같은 동네에 살았다는 목사는 옆 동네에 교회를 짓고 있었는데, 새로 짓는 교회의 조경을 위해 우리 땅의 나무에 눈독을 들인 것이다. 포클레인 아저씨 역시 새로 짓는 자신의 집 정원에 심기 위해 공짜 나무를 얻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다. 주객이 전도되어 우리 땅에서 자기들끼리 어떤 나무를 가져갈지 신경전을 벌이며 나누고 있었다.


토지를 소개해 준 K에게 항의를 하니 우리 앞에서는 소유권이 우리에게 있다며 걱정 말라고 안심을 시켰으나, 목사 나타나자 좋은 게 좋은 거라며 바로 말을 바꿨다. 그도 그럴 것이 토지를 소개해준 K, 전 토지주, 포클레인 아저씨 모두 그 목사의 교회에 다니는 제주 이주민들로 한통속이었던 것이다.


해외 이민을 가면, 같은 교민끼리 사기를 친다고 하지 않던가.

교회에 다니지 않으면 교민 사회에 적응하기 힘들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곳 역시 다르지 않았다.


'앞으로 계속 여기서 얼굴 보며 살 텐데 - 어!'

'동네에서 잘 어울려서 살려면 - 어!'

'법으로 하면 소유권이 - 어!' 

'소송 걸고 싸워 봤자 - 어!' 

'젊은 사람들이 욕심을 부리면 - 어!'

'어른한테 예의를 갖춰야지 - 어!'

'어련히 깨끗하게 잘 파 갈까 봐 - 어!'

'우리가 공짜로 땅 정리 다 해주는 거지 - 어!'

누구를 위하는 건지 모를 말들이 쏟아져 내렸다.


이판사판 법대로 하자며 소송을 하고 싸울 것이 아니라면, 드러누워 길을 막고 발악을 할게 아니라면, 포클레인을 들이밀며 인맥이니 나이니 종교니 권위로 윽박지르는 이들에게 대항하여, 방금 제주도에 발을 디딘 우리 두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며칠 후, 포클레인이 들어와 나무를 파기 시작했다. 

울창했던 정원은 자신들이 원하는 나무를 파기 위해 여기저기 파헤쳐졌으며 포클레인이 지나간 자리는 휭 하니 볼품 없어졌다. 오리 우리가 있던 질퍽한 바닥 위로 나무를 파기 위해 뒤집어 놓은 흙더미와 나뭇가지, 전 주인이 미쳐 치우지 않은 잡동사니들이 쓰레기가 되어 뒹굴었다. 

당시에는 하나하나의 나무 이름을 잘 모를 때라 얼마나 좋은 나무들을 강탈해 갔는지 알 수가 없었는데 '워싱턴야자' 만큼은 특이해서 기억에 남아 있다. 그 외에도 꽤나 값나가는 오랜 수령의 나무들을 빼앗겼다. 

목사는 원하는 나무를 얻어 만족해했고, 포클레인 아저씨는 목사가 선점한 탓에 원하는 나무를 얻지 못했다며 구시렁대면서도 여기저기 헤집고 다니며 나무를 골라갔다. 나무를 가져가고 땅을 정리해 주겠다던 약속이 무색하게 원하는 나무를 얻은 포클레인 아저씨는 자신의 정원에 나무를 심기 위해 빠르게 철수를 하였다.

그렇게 얼마 전 제주도를 강타한 대형 태풍 볼라벤 때도 멀쩡했던 정원은 폐허가 되어 버렸다.



쓰린 속을 부여잡고 폐허가 된 땅을 정리하기 위해 우리 돈을 들여 대형 포클레인을 다시 불러야 했다. 여기저기 흩어진 잔해를 한쪽으로 모으고, 쓰레기를 치우고, 질퍽해진 땅을 밟고 다닐 수 있도록 다지는 작업을 했다. 산처럼 쌓인 쓰레기를 분리해서 버리고 또 버렸다. 낙엽과 부러진 가지들을 모아 태우고 또 태웠다. 몇 날 며칠 치우기를 반복한 끝에 어느 정도 사람 사는 모양을 갖추게 되었다.


마음대로 태워도 되는지 몰라 읍사무소와 소방서에 전화를 걸어 문의를 했는데 뭘 이런 걸 물어보냐는 투로 대수롭지 않게 반응했다. 요즘 같으면 옆집에서 바로 신고가 들어갔을 상황인데, 10년 전 제주도는 밭 가운데서 이런저런 생활 쓰레기를 태우는 일이 흔하던 시절이었다.


이렇게 너무나 쓰린 경험을 겪으면서, 토지 계약 당시 수목에 대한 소유권과 폐기물 처리와 관련하여 반드시 협의하고 명시해야만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전 02화 02. 제주 이주, 상상을 현실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