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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핌 Feb 10. 2022

02. 제주 이주, 상상을 현실로

10년간의 제주 이주의 여정, 2012년 그 시작

결심


회사를 그만뒀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여기저기 여행을 다니고 혼자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여전히 백수였고 수중에 돈은 줄어들고 있었다.

결단이 필요했다. 

아직 34세, 시작했다 잘못되더라도 다시 시작하기 충분한 나이었다.

일단 부딪쳐 보기로 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


홀로 제주도를 여행한 지 몇 달 뒤, 당시 친하게 지내던 친구 D에게 연락이 왔다.

D 역시 제주 이주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는 지인을 통해 제주도에 있는 집을 소개받기로 했다며 함께 가보자고 하였다. 흔쾌히 수락을 하고 D와 함께 제주도로 출발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제주도는 공인중개사를 통해 다양한 매물을 알아보기 쉽지 않은 환경이었다. 온라인에 공개된 매물도 많지 않았을뿐더러, 부동산을 찾아가도 이렇다 할 매물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결국 지역 주민들끼리 누구네 땅 내놨다더라 식의 알음알음 정보를 얻는 방법뿐이었다.

옆집의 누구는 동네 슈퍼 앞 삼삼오오 모여 앉은 어르신들에게 혹시 이 지역 땅 내놓으신 분 계신가요? 하고 물어 거래를 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이렇게 제한적인 정보의 환경에서 제주에 살고 있다는 D의 지인 K를 만나게 되었다.


- 주변에 대해 관심이 적은 내 성격상, 10년 전의 일을 디테일하게 기억해 내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최대한 떠올려 보겠지만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점 미리 양해를 구한다. - 


K는 D의 중학교 동문 선배가 소개해준 친구분이었다. 친구분과 동창이니 D와도 역시 동문이 될 터였다. 처음 보는 사람이지만 선배님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글을 쓰며 다시 떠올려 정리를 해 보니 '친구 동문 선배의 친구' 정말 나와는 남남이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조천읍에 있는 K의 집에서 처음 만난 우리는 멀리 바다가 보이고 뒤로는 숲이 우거진 전원주택에 감탄을 했다. 제주도에 대해 우리가 모르던 것들을 조금의 자랑을 섞어 이것저것 친절히 이야기해 주었다. 처음 제주도에 오는 사람들은 바닷가에 살길 원하지만 드센 바람과 소금기에 금방 지치기 때문에 숲이 있는 중산간 지역이 좋다는 설명을 장황하게 하기도 했다. 당시만 해도 해안-중산간-산간의 구별도 명확히 몰랐기 때문에 고개를 끄덕이며 그저 좋은 이야기려니 귀 기울여 듣기만 했다. 


제주도는 기본적으로 한라산을 중심에 둔 화산섬이다. 섬 전체를 하나의 큰 산이라고 보고, 해발고도 200~600m의 지역을 중산간이라고 부른다. 말 그대로 산의 중간 지점을 중산간이라고 하는 것이다. 고도에 따라 지리적 특성과 날씨가 다르기 때문에 구분해서 부르는 것 같다. 그만큼 해안과 중산간, 산간지역은 같은 날에도 기온과 날씨가 모두 달랐다.

출퇴근으로 체감한 지역별 기온은 중산간을 기준으로 해안이 +2, 산간이 -2도 이상 차이가 났으며, 폭설을 알리는 기상청 문자에 해안으로의 출근길은 걱정이 없지만, 산간으로 출근하려면 통행 제한과 빙판에 가로막히기 일수였다.


집을 구하러 온 D에게 K가 소개해 준건 제주도의 동쪽 중산간에 위치한 작은 토지였다. 조천읍 조용한 마을 안 울타리의 자물쇠를 열고 들어가 보니 온갖 꽃과 나무가 우거져 있고, 커다란 비닐하우스가 하나, 그리고 닭과 오리들이 있었다. 이름 모를 꽃들에 둘러싸여 스테레오로 들려오는 생생한 새들의 지저귐에 비밀의 숲 한가운데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개발이 가능한 구역에, 농업용 수도가 들어와 있고, 전기도 신청만 하면 연결되는 지역으로, 정원을 가꾸고 작은 집을 하나 지으면 살기 좋을 거라며, 땅의 주인이 강원도로 이사를 가며 급하게 처분을 하는 것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비밀의 화원에 마음을 뺏긴 우리의 고민이 깊어졌다.

알 수 있는 정보의 양이 워낙 적다 보니 시세를 가늠하기도 어려워 실제로 싼 지 비싼지 비교해 보기도 어려웠다. 240여 평의 토지는 비싸다고 볼 수는 없었지만, 생각했던 예산 범위 밖이었다. 

무엇보다 집을 지어야 하는 문제도 있었다. K는 본인이 살고 있는 집도 직접 지었다며,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가 집을 지을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하였다. 

D 역시 이곳이 꽤나 마음에 들었지만 혼자 감당하기 힘든 예산에 고민을 하며 나에게 공동구매 의사를 물어 왔다. 한참의 고민 끝에 토지를 공동 구매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한동안 제주도의 집값과 땅 값을 외지인이 다 올려놔 살기 힘들다며 성토를 하는 제주도민들이 많아졌었다. 그도 그럴 것이 몇 년 사이 연세 100~200이면 1년을 살 수 있었던 시골 작은 집들의 연세가 1천만 원까지 오르기도 했다. 집주인들은 외지 사람을 보면 무조건 시세의 2~3배를 부풀려 불었고, 서울에 비해 비교적 저렴하게 느껴지는 가격에 홀려 계약을 하는 이들이 하나둘 늘어나며 전체적인 가격 상승을 불러왔다. 지역 사정 다 아는 제주도민보다는 외지인에게 팔아야 이익이 남았으니, 오래도록 저렴한 연세에 살던 원주민을 내보내고 외지인에게 집이 파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이렇게 떠나게 된 원주민들의  불만이 커진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하지만 부풀려진 연세와 매매이익 얻은 사람도 제주도민이었으니 집값과 땅값이 오른 것을 외지인 탓만 하기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지금은 공인중개업소도 많아지고, 정보의 공유도 많아져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거래되는 일은 거의 없는 듯 하지만, 부동산에 있어서 제주도만의 특징이 여전히 존재하는 것 같다.


등기부등본을 확인하고 필요한 서류를 살펴보았다.

인생 처음으로 해보는 토지거래였다.

K를 믿고 하는 거라고 하지만, 부동산을 통한 거래가 아니기 때문에 더 신경 써야 했다.

토지매매 계약서를 출력하여 조천읍사무소 민원실에 앉아 계약서를 작성했다.

인감도장을 들고 도장을 꾹 눌러 찍었다.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훗날 친구들이 가끔 물어본다. '어떻게 그때 땅을 살 생각을 했어?'

나는 대답한다. '뭘 몰라서 그냥 저지른 거지. 꼼꼼하게 따져 봤으면 못 샀을 거야.'


우리는 정말 무지했고 용감했다.

뒤 돌아 생각해 봐도 사기를 당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다!

어찌 되었는 땅 주인이 되었다. 

제주도 이주의 꿈이 상상에서 현실로 한 발짝 발걸음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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