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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소현 Dec 29. 2020

불완전한 사랑

―영화 <Her>,  <셰이프 오브 워터>를 보고

   사랑이란 무엇일까. 진부한 질문이지만 어떠한 단어로도, 어떠한 형태로도 정의할 수 없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완전한 사랑과 불완전한 사랑의 규정을 내릴 수는 없으나, 어딘가 불안하고 불완전해 보이는 사랑. 나는 그러한 사랑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스파이크 존스 감독의 영화 <Her>과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셰이프 오브 워터:사랑의 모양>을 토대로 글을 시작하겠다.     


   Ⅰ. 주제의식 

   -진정한 사랑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일까.’ 두 영화를 보면서 끊임없이 떠오르는 질문이었다. 괴생명체와 사랑에 빠진 엘라이자, 그리고 인공지능과 사랑에 빠진 테오도르. 두 영화의 공통적인 주제를 꼽자면 ‘진정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꼭 존재하는 인간과, 형태가 드러난 생명체와만 사랑에 빠질 수 있는 걸까. 영화 속 주인공들은 그렇지 않다. 인간이 아니고 말도 하지 못하는 괴생명체와도 사랑에 빠지고,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할 목소리를 가진 AI와도 사랑에 빠지곤 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주인공들을 통해 영화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일까. 

   두 영화의 주제는 진정한 사랑, 그중에서도 ‘외로움’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영화는 모두 외로운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엘라이자는 언어 장애를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테오도르도 이혼 절차를 밟고 있는, 남의 편지를 대신 써주는 외로운 인물이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외모나 인종 신분 따위가 아니라 서로에 대한 공감과 위로이다. 하나의 인격체로 상대를 존중해 주고, 불완전한 서로를 완전한 상태로 도달해나갈 수 있게끔 이끌어주는 것이다.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의 부제는 ‘사랑의 모양’이다. 제목을 직역하면 ‘물의 모양’인데 어째서 부제는 사랑의 모양일까? 물은 담기는 그릇에 따라, 컵에 따라 자신의 형태를 바꾼다. 물은 담기는 어느 곳에 대해 비난하거나 변화시키려고 하지 않는다. 그냥 그 모습을 받아들이고 본인의 몸을 맡긴다. 두 영화는 모두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물처럼, 마음 한구석부터 시작되는 진정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두 영화는 모두 순수하게 ‘사랑’에 대한 이야기만 하고 있는 걸까? 나는 두 영화를 보면서 비슷하지만 어딘가 다른 부분들을 느꼈다. 정확히 말하면 <셰이프 오브 워터:사랑의 모양>의 경우에는 더 많은 메시지를 담고 있는 영화라고 느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잠깐 등장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자. 주인공인 ‘엘라이자’는 우주 연구소에서 청소를 하는, 언어 장애를 앓고 있는 평범한 인물이다. 그녀는 ‘벙어리’라며 직장 동료에게 비난당하기도 한다. 그녀가 사랑에 빠진 괴생명체는 물고기도 아닌, 인간도 아닌 그 중간 어디쯤에 있는 듯한 괴기한 형상을 띠고 있다. 그들은 서로가 지닌 약점을 아무런 편견 없이 바라보고 교감한다. 사회에 정식으로 속하지 못한 소외감과 외로움이 그들을 하나로 묶어준 것이다. 이러한 모습에서 우리는 수많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 편견에 대한 생각을 하게끔 해준다. 영화 속 괴생명체와 장애를 가진 사람의 사랑은 순수한 사랑을 넘어서서 사회적 주제의식을 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영화 <Her>과 차이를 느꼈다. 

   반면에 <Her>은 소통의 부재에 대한 주제의식을 담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속에서 사람들은 점점 서로를 속이고, 가식적인 가면 속에 자신을 감춘다. 그러한 세상 속에서 제대로 된 소통이 가능할까. 현대에서 나아가 미래가 다가온다면 그러한 현상은 더욱 심해질 것이다. 소통의 부재 속 단비 같은 AI의 등장. 그들의 사랑은 과연 인공지능이라는 체제에 국한된 것일까. 두 영화 모두 다른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있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들이 한 것은, 그리고 지금도 이어지고 있을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라는 것이다.     



   Ⅱ. 사회적 메시지

   -차별과 편견

   앞서 간단하게 이야기했지만,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사랑의 모양>에서는 차별과 소외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회 속 소외받은, 주류사회에 속하지 못한 존재들의 고통을 묘사한다. 인간에 의해 고통받고, 실험당하는 존재인 양서류 괴생명체와 장애를 앓고 있는 사회적 소수자의 사랑. 둘은 다른 형태의 아픔을 가지고 있지만 ‘언어’라는 매개체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둘이 교감하고 소통한다는 점이 참 인상적이었다. 이러한 사회적 소수자의 모습을 드러내는 장면들은 두 주인공 외에도 종종 보인다. 현대에는 인권과 혐오, 편견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늘었지만, 영화 속 배경인 1960년대는 지금보다 훨씬 차별과 혐오가 심했다. 엘라이자와 아주 가까운 친구인 ‘자일스’는 자주 가는 파이 집에서 직원의 손을 만졌다는 이유로 퇴출당한다. 여기서 직원은 그를 동성애자로 취급하여, 그 모습을 혐오해서 그를 퇴출시킨 것이다. 또한 같은 장면에서 파이 집에 들어오는 흑인 부부를 보고 직원은 자리가 모두 예약되었다며 포장밖에 안 되니 나가라고 한다. 지금도 지긋지긋하게 들려오는 인종차별은 그때도 마찬가지였다. 영화는 여러 편견과 혐오 등 사회적인 문제점에 대해 언급한다. 그러한 사회적 상황 속에서 편견 없는 둘의 사랑은 시대상과 대비되어 더욱 아름답고 극적으로 연출된다.      


   -소통의 부재

   그렇다면 영화 <Her>에서는 어떠한 사회적 메시지를 반영하고 있을까. 영화 속 배경은 현대와는 조금 다르다. 앞서 <셰이프 오브 워터>에서는 60년대의 과거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면, 이 영화는 가깝지만 먼,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도 그렇듯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갈수록 소통이 사라져 간다. 관계에 있어서 진정한 소통은 사라지고, 빈 껍데기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런 사회 속에서 AI와의 사랑, 있음 직한 미래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주인공인 테오도르는 인공지능 운영체제인 ‘사만다’를 만나게 된다. 테오도르는 다른 사람의 편지를 대필해 주는 일을 한다. 그는 따뜻하고 마음을 전하는 글을 쓰지만 정작 자신의 삶은 어딘가 공허하고 외로운 인물이다. 아내인 캐서린과는 이혼을 앞두고 있고, 소통하는 사람도 별로 없다. 외로운 존재인 테오도르는 사만다와 소통하면 소통할수록 그녀에게 빠지게 되고, 감정을 가진 인공지능인 사만다도 그와 점차 사랑에 빠지게 된다. 현대 그리고 미래 사회의 외롭고 공허한 존재를 첨단 기술이 보담아 주는 사실은 씁쓸하기도, 신선하기도 하다. 그리고 과연 그들의 사랑은 거짓일까 진실일까. 그렇다면 거짓된 관계 속에서 의미 없는 껍데기만을 유지하는 것과, 인공지능과 진실된 소통을 하는 것. 그 둘 중에서는 어느 것이 더 윤리적으로 옳다고 말할 수 있을까. 세상이 발전할수록 부족한 것은 사라지고,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시대가 완성되어가고 있다. 그렇지만 그 속에서 메말라가는 감정과 인류애, 그리고 소통. 현대인들의 고독과 소통의 부재를 잘 드러낸 영화라고 생각한다.           



   Ⅲ. 등장인물

   <셰이프 오브 워터:사랑의 모양>

   이 영화에서 매력적으로 느껴진 인물은 바로 ‘젤다’였다. 그녀는 유머러스하고 털털한 평범한 여성 같지만 사실 그녀도 가려진 외로움이 있다. 소통이 잘되지 않고 식모처럼 밥을 차려줘야 하는 남편이 있기 때문이다. 엘라이자가 괴생명체를 구출하려 했을 때, 엘라이자를 걱정하는 마음에 말리려 하지만 그녀의 굳은 의지를 보고 도와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남편과의 관계에서는 실패했을지 몰라도, 십 년을 가까이 봐온 엘라이자와는 단단한 관계가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또 한 명의 외로운 인물인 그녀에게 엘라이자는, 또 엘라이자에게 젤다는 서로에게 큰 버팀목이 되어주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뭐니 뭐니 해도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는 바로 ‘엘라이자’였다. 사실, 영화를 보면서 엘라이자와 괴생명체 간의 교감이 너무 빨리 형성되고, 그 관계가 목숨을 걸고 서로를 지켜낼 만큼 깊은 것인가에 대해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말을 못 하는 고통을 알고, 외로운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기분이 무엇인지 알기에 둘이 더욱 교감하고 소통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엘라이자는 강가에 버려져 고아원에서 태어났다고 했는데, 그때의 트라우마로 말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런 그녀가 괴생명체를 앞에 두고 노래를 부르려 노력하는 장면은 정말이지 인상적이었다. 사회적 약자를 대신해 목소리를 내주고 있는 인물인 엘라이자는 이 영화에서 가장 매력적이고 인상적인 인물이 않을까 생각한다.      


   <Her>

   이 영화에서 정말 매력적인 인물은, 특히 목소리는 스칼렛 요한슨이 녹음을 한 ‘사만다’이다. 개인적으로 그 배우를 좋아해서 더욱 반갑고 인상적인 것은 있었지만, 영화 속 사만다라는 인물도 충분히 그 자체로 매력적이었다. 그녀는 말 그대로 사람이 아니라 인공지능이다. 그렇지만 사람보다 더 풍부한 감성을 지니고 테오도르를 이해해 준다. 비록 그녀는 테오도르 말고도 수백 명과 사랑에 빠져있지만, 테오도르를 진심을 다해 사랑한 것은 확실하다. 그녀는 외롭고 공허했던 그를 성장하게 해 줬다. 

   다음은 주인공 ‘테오도르’이다. 그가 매력적인 느껴진 첫 번째 이유는, 타인 대신 아름다운 편지를 써주는 그의 직업 때문이었다. 지금은 그러한 특정 직업이 없지만, 가까운 미래에는 충분히 가능할 것 같다. 메마른 감정과 소통의 부재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조차 제대로 표출하지 못해 남에게 부탁할 것이다. 그러한 사회적 배경 속에서 자신은 외로울지라도 남을 위해 글을 써 내려가는 테오도르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그의 내면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증거는, 육체가 없는 사만다를 진심으로 사랑한 것이 아닐까 싶다. 아내 캐서린과 좋지 않은 사이로 지냈지만, 사만다를 보내고 성장한 그는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따뜻한 편지를 보낸다. 



   마무리

   사랑은 무엇일까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됐던 감상에서 답은 찾지 못했다. 그러나 여러 사랑의 형태와 사람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던 시간이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사랑을 할 때 그렇게 따지고 재는 것일까. 영화라서 가능한 일일지 몰라도 진정한 사랑에 대한 아릿한 여운을 느낄 수 있었다. 두 영화를 보았지만 <셰이프 오브 워터:사랑의 모양>라는 작품이 더욱 와 닿았다. 아마도 과거의 시대상과 sf적 요소가 들어간 신선한 영화이기 때문인 것 같다. 그 작품을 보고 나니 떠오르는 시가 있었다. 이정하 시인의 ‘낮은 곳으로’라는 시이다. 시의 마지막 연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이 구절을 끝으로 감상문을 마치도록 하겠다. ‘잠겨 죽어도 좋으니 너는 물처럼 내게 밀려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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