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께서는 내가 하는 일이 기후변화 분야인 것만 아신다. 자세한 내용은 그렇게 관심이 없는 눈치다. 부모님 두 분 모두 어린 시절 농촌에서 자라 성인이 되어서는 이촌향도 물결을 탄 전형적인 베이비부머 세대다. 기후변화 담론을 잘 아는 분야도 아니고, 농민의 삶을 사는 게 아니니 기후변화를 직접 겪거나 그 위험을 체험할 위치가 아니신 이유에서다.
추석을 맞아 차를 타고 외식을 하러 이동하던 중에 뒷좌석에 앉아 있던 엄마가 기후를 입에 올렸다. 농담 삼아 하신 말씀, "추석인데 이렇게 더워서야. 기후 일하는 네가 해결 안 하고 뭐하니"라는 한마디. 그런 농담을 하는 것도 당연하다. 추석을 맞았는데 폭염특보가 발효 뉴스는 부모님도 처음이니까 말이다. 세대와 연령대를 떠나 가을 한가운데라는 추석에 삼복더위에나 나오는 폭염경보가 울리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뭔가 평행우주에서나 있을 법한 이야기처럼 느껴질 테다. 아무튼 부모님 앞에서 일 얘기 일절하지 않는 우리 집에서 자연스럽게 기후 얘기가 나온 건 상징적인 일이다.
콩순이 아이스크림 만드는 장난감 선물을 받아간 2살짜리 조카 얘기도 해야 한다. 조카 인생의 추석은 아마 나와 부모님이 평생에 걸쳐 겪어온 그것과 다를 것이다. 아침저녁 서늘함이 느껴져 잠결에 이불을 단디 덮을 수밖에 없고, 가을 하늘의 푸르름이 물씬 풍겨 천고마비라는 사자성어를 되뇌고, 농경시대의 온 가족 수확의 기대감이 도시로 건너와 식탁 위 풍성함으로 들뜬 마음을 품는 것. 앞으로 조카가 겪을 한가위는 그런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 가능성이 농후하다. 당장 이번 추석도 피서로 고군분투했던 기억뿐이다.
온난화로 달라진 명절을 애석하다면서 감성 자극하자는 게 아니다. 알파세대와 그 이후 세대에겐 이게 노말일 테니까 말이다. 폭염 추석이 낯설고 애석하고 당황스러운 건 풍성한 한가위를 아는 나이 든 사람들의 몫이다.
우리나라의 이번여름과 가을에 걸친 더위는 역사적인 더위로 알려진 1994년과 2018년을 포함한 그 어떤 해보다 지속성과 강도 측면에서 모두 압도한다. 더위에 관한 대부분의 기록은 경신된 해다.
침대에 누워 평소 꾸준히 사모으고 있는 2차 배터리와 인공지능 주식을 뒤로하고 귀해질 곡식과 농산물을 떠올리며 농업 ETF를 한껏 더 담았다. 기후위기는 전 세계 곳곳에서 수확의 기대를 할퀼 테니까 말이다.
기후위기에 좌절할 시간도 없다. 어떻게 세상을 바꿀지 모두가 고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