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의 탄핵 판결이 화제가 되며, 문형배 헌법재판관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판결의 무게만큼이나 인상 깊었던 것은 그가 살아온 흔적과 흔들림 없는 태도였다.
문 재판관은 경남 하동의 가난한 농가 4남매 중 첫째였다. 법률가의 꿈을 품을 수 있었던 건, 사회복지사업가 김장하 선생의 장학금 덕분이었다. 법을 배운 것보다 먼저, 누군가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사실을 그는 잊지 않았다. 법조인이 된 이후에도 줄곧 그 은혜를 사회에 갚아야 한다는 김장하 선생의 가르침을 가슴에 품고 살아왔다.
헌법재판관으로 임명될 당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문 재판관은 이렇게 말했다. “제가 결혼할 때 다짐한 게 있습니다. 평균인의 삶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되겠다.” 그리고 30년에 이르는 법관 생활 이후 그의 재산은 4억 원이 조금 안 됐다. 그런데도 그는 청문회에서 “평균을 조금 넘어선 것 같아서 반성하고 있습니다”라고 덧붙였다.
대한민국은 학벌주의, 능력주의, 경쟁만능주의, 양극화의 심화로 '평균' 그 자체는 경시되고 있으며, 평균이란 이름으로 사회구성원 대다수를 멸시하고 모욕하는 데 아무런 서스럼조차 없다. 그럼에도 대한민국 최고 엘리트라고 할 수 있는 법조인으로 오랫동안 일한 사람들의 재산 수준과 비교했을 때 문 재판관이 평균 이내라는 삶을 살겠다는 것을 보니, 느껴지는 것은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는 우리 사회의 역설,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평균을 상회하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하고 노력해왔던 스스로에 대한 양심의 가책뿐이다. 어쩌면 그가 유감스러웠던 것은 본인의 삶이 아니라, 그런 기준이 당연시되는 사회 분위기였는지도 모른다.
문 재판관은 중앙집중적인 사회 구조에 대한 문제의식도 분명히 밝혔다. “지방에서 살아보니 우리나라의 자원이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고, 중앙집권화로 인하여 지방에 거주하는 국민의 뜻은 충분히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절감하는 때가 많았습니다.” 그는 이어 “중앙에 집중된 권한을 대폭 지방에 넘기는 분권이 이루어져야 하고 그 과정에서 국민의 참여가 보장되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생애 대부분을 지방에서 살아온 법관으로서, 지역의 목소리가 헌법정신 속에서 살아 숨 쉴 수 있도록 하겠다는 그의 다짐은 무겁고 진중했다. 서울공화국이 되어가는 대한민국에 꼭 필요한 시그널이었다.
서울, 엘리트, 최상급이 잡아당기는 힘의 원천은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에서 나온다. 요즘 우리는 이런 질서가 형성한 당연함 속에 살아간다. 더 많은 연봉, 더 큰 영향력, 더 빠른 출세. 그런 것들이 동기부여가 되고, 또 그것이 사회 전체의 성장을 이끌 수 있다는 담론이 지배적이다.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내 나름대로 열심히 소수의견을 냈지만) “결국은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동기부여가 있어야 혁신도 일어나고, 사회도 돌아가는 것 아니냐”는 결론이 나왔다. 조선시대 청렴한 선비들은 이제 어린이 서적과 만화에서 나오는 옛날옛적 이야기로도 환영받지 못하는 지금 문 재판관이 회자되는 게 무척 반갑다.
그는 법관 생활을 하며 오랫동안 ‘착한 사람들을 위한 법’이라는 취지로 블로그에 글을 남겨왔다. 헌법재판관이 된 이후로는 여러 서적을 읽고 간단히 독후감을 남기고 있다. 내려쳐지는 법봉 소리 안에 얼마나 많은 고민과 배움이 묻어있을지 가늠이 된다. 또한 그가 읽어내린 책의 종류와 분야를 보면 평균인의 삶을 살겠다던 그의 말이 다른 식으로 무색해진다. 지식인의 삶을 위시하고 살겠다는 둥 건방졌던 내 모습을 반추하다보니 독후감에 적힌 글자들은 귀감이 되었다. 배움과 깨달음에는 평균이 무슨 의미일까.
탄핵 판결 하루 후 문 재판관이 공보관실을 통해 소회를 전했다. "탄핵심판 절차가 원만하게 진행되도록 충실한 보도를 해주신 언론인들, 헌재의 안전을 보장해주신 경찰 기동대 대원들께 감사드린다. 아울러 탄핵심판이 무리 없이 끝난 데에는 헌신적인 헌법연구관들과 열정적인 사무처 직원들의 기여도 있었음을 밝혀둔다." 탄핵정국, 지난하고 혼란스러운 데 자기 몫을 다한 분들에 대해 전한 꾹꾹 담은 감사 인사였다.
문형배라는 이름에서, 우리는 사회가 나아갈 수 있는 또 하나의 방향을 본다. 그것은 더 많은 것을 가지는 삶이 아니라, 더 많이 나누는 삶이다. 그 영향력이 이번 판결을 계기로 다양한 계층의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닿기를 바란다. 우리가 놓치고 있던 ‘다른 가능성’을 다시 이야기할 수 있도록 말이다.
마지막은 헌법재판관 임명 당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문 재판관 발언 중 발췌다.
"법관의 길을 걸어온 지난 27년 동안 저는 한결같은 마음으로 대한민국 헌법의 숭고한 의지가 우리 사회에서 올바로 관철되는 길을 찾는 데에 전력을 다하였습니다. 그것만이 (김장하) 선생의 가르침대로 제가 우리 사회에 진 빚을 조금이나마 갚을 수 있는 길이라 여기면서 살아왔습니다. 제가 헌법재판관에 임명되더라도 지금까지 간직해 온 저의 초심은 언제나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