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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받지 못한 게 아니라 사랑을 잃지 않은 것

넷플릭스 '모태솔로지만 연애는 하고 싶어' 후기

by 김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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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에서 인간이 살아가는 대부분의 공간에서 인간 군상의 연애는 시장처럼 작동한다. 시장이라는 말은 인간을 상품에 비유해, 외적 요인·경제적 요인·사회적 관계 요인 등에 따라 ‘우등’과 ‘열등’으로 나뉘며, 프로그램 출연자 선정과 최종 결과 역시 이러한 원리에 의해 결정된다는 뜻이다.


한 해에 20개가 넘는 연애 프로그램이 제작된다. 특히 대다수의 인기를 끌고 있는 관찰형 연애 프로그램들은 연애 시장의 법칙을 거의 그대로 따른다. 따라서 그 시장에서 수요가 없는 이들이 나타나는 것도 이상할 일이 아니다. 이를 비유하자면 불용재, 데드스톡(Dead Stock), 혹은 이월 상품 같은 사람들, 즉 모태솔로다. 여러 연애 프로그램에서 모솔이 출연한 사례가 있었지만, 사회적 맥락과 연출 특성을 고려하더라도 대부분의 경우 모솔 출연자는 희화화의 언저리에서 소비되도록 프레임이 짜였다. 서툴고 어리숙한 그들의 언행은 ‘웃음 코드’로 희석돼 소셜미디어에 박제되었고, 조롱의 대상이 되기 쉬웠다.


연애 프로그램에서 모솔은 현실보다 연애나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유독 열등하거나 부족한 존재로 부각됐으며, 연애 시장의 수요자로부터 당연하게 기피되는 인물로 인식되는 환경이 조성되는 데 그쳤다. 이는 연애 시장의 법칙 안에서 제작되는 연애 프로그램이 지닌 근본적 한계이자 문제였다. 연애 경험 유무로 인간의 가치를 평가하는 사회적 편견을 강화했고, 단순한 재미를 넘어 사회적 낙인을 재생산하는 창구로 작동했다.


넷플릭스의 '모태솔로지만 연애는 하고 싶어' 시놉시스를 처음 봤을 때도 비슷한 생각이 들었다. 예고편을 보면서 든 첫인상은 “외적인 요인만으로는 왜 이들이 모태솔로였는지 알 수 없다”였다. 그러나 제작진은 기존 연애 프로그램과 달리, 출연자들에게 사전에 패션과 헤어스타일 같은 외적 요소에 대한 코칭을 제공했을 뿐 아니라, 화법·자신감 등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높여주고, 성장 배경과 경험에 기반한 심리·정신적 특성을 고려해 상담사와 멘토를 배치했다. 패널들도 직접 출연자들을 코칭하며 연애 팁을 공유하고 모솔 탈출을 돕는 등 안팎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출연자들은 모두 모태솔로였지만, 회차가 거듭될수록 드러난 연애 미경험의 이유는 다양했다. 연애할 사회적 기회 자체가 부족했거나, 내성적인 성격, 지나치게 높은 자기 기준, 학업과 커리어에 몰두한 생활, 혹은 가정환경과 트라우마 등 다양한 원인이 존재했다. 이는 우리가 흔히 ‘모솔인 이유’라고 통상적으로 들어왔던 단편적인 설명과는 상당히 달랐다.


게다가 출연자들이 어느 동네에 사는지, 집안이 얼마나 부유한지는 언급되지 않았고, 그들도 자랑하지 않았다. 외모가 좋다고 스포트라이트되지 않았고, 데이트 장소는 필요 이상으로 화려하지 않았고, 다른 출연자들의 감정과 프로그램의 분위기를 휘두르는지는 중요한 편집점이 아니었다.


프로그램을 보면서 나는 두 가지를 깨달았다. 첫째, 예고편을 보며 나 또한 루키즘(외모지상주의)에 기반해 출연자와 모태솔로에 대해 선입견을 가졌다는 사실. 둘째, 모솔의 이유를 연애 시장의 일반적 원칙에만 맞춰 합리화하는 것은 잘못된 접근이라는 사실이다.


마지막 에피소드까지 봤을 때 '모태솔로지만 연애는 하고 싶어' 출연자들은 어색한 모습을 조금 보여줬지만, 그 어떤 연애 프로그램에서 봤던 것보다 (서툴지만) 자신의 마음에 솔직했고, (뚝딱거리지만) 감정을 잘 다스렸고, 다른 사람을 섬세하게 배려하며 동시에 연대했고, 모솔을 향한 사회의 지탄이 있음을 잘 알면서도 자신들의 모습을 투명하게 드러냈고 동시에 당당한 태도를 보였고 배움과 노력 의지도 확고했다. 특히 다른 연애 프로그램에서 흔히 보이는 ‘선택받지 못할 상황에서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최종 선택을 포기하는 관행’은 이 프로그램에서는 거의 볼 수 없었다. 이들은 선택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더라도 스스로 선택하며 프로그램을 마무리했다.


결국 깨달았다. 우리가 당연하게 믿어온 ‘모솔=능력 부족·경험·감성 부재’라는 공식을 뒤집어야 한다는 것을. 어쩌면 거꾸로일지도 모른다. 모솔이 무언가 부족한 게 아니라 모솔이 아닌 이들이 무언가를 잃어간 것이 아닐까. 다시 말해, 연애를 반복해온 대다수 사람들이야말로 그 과정에서 순수함과 솔직함을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연애 시장의 고정관념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끊임없이 포장하고 계산하며 진짜 마음을 감추고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모태솔로지만 연애는 하고 싶어'는 이런 뒤집힌 현실을 정면으로 비추며 시청자들에게 묻는다.


기존 연애 프로그램이 화려한 외모 경쟁과 물질적 과시로 사랑을 소비했다면, '모태솔로지만 연애는 하고 싶어'는 그 껍데기를 걷어내고 관계의 본질을 보여줬다. 이곳에서 사랑은 시장 속 상품이 아니라, 사람 속 성장과 연대의 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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