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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라밍고 Nov 19. 2022

감히 방문 교사를 시작했다.

감히 방문 교사를 하겠다고 선택한 계기는 경력 단절 여성에게 꽤나 허용적이고, 내 아이를 내가 가르치며 함께 성장할 수 있겠다는 판단이 있었다. 세상에 쉬운 일이 있을 리 없다. 상담부터 수업에 이르기까지 매 순간이 고비가 아닐 수 없었다. 


예상치 못한 시기에 첫 상담을 하게 되었다. 비운전자로 버스와 마을버스를 환승하며 도착한 아파트 단지는 내겐 너무 컸다. 버스에서 내려서도 한참을 걸어 도착한 학생의 집에는 고상한 어머님께서 맞아 주셨다. 모의 수업과 간단한 테스트까지 마치고 어머님과의 상담도 무리 없이 진행되었다. 나는 당당하게 입회 신청서까지 받아 들고 돌아왔다. 그리고 일주일 후 지부장님을 통해 전달받은 내용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선생님~ OO 학생 집은 다른 선생님께서 가시기로 했어요. 어머님께서 전화를 주셨는데, 디자인과 나온 선생님께 아이를 맡길 수 없으시대요." 

나를 거절하신 이유는 나의 대학 전공이 본인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했다. 선택은 내가 아닌 상대가 하는 것이니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나의 첫 상담의 결과는 거절이었다. 


내가 두 번째로 방문한 집은 첫 거절을 받은 옆 단지였다. 산 밑에 지어진 아파트로 등산로 같은 계단을 한참 올라 도착할 수 있었다. 다행히 돌아오는 길은 어머님께서 편하게 올 수 있는 길을 알려주셔서 쉽게 돌아올 수 있었다. 이곳이 나의 첫 학생의 집이 되었다. 


여름이었다. 날은 더웠고, 버스를 환승하며 이동하는 언덕은 힘들었다. 맨발로 방문을 하는 것은 실례라고 생각해 늘 덧신을 여러 개 챙겨 다녔다. 교통 상황을 고려하여 여유 있게 시간을 계산하여 이동하다 보면 가끔은 너무 일찍 도착하기도 한다. 약속한 시간보다 30-40분씩 일찍 수업에 들어갈 수 없어 쓸데없이 주변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는 날도 있었다. 50분 수업을 하기 위해 내가 앞뒤로 사용하는 시간은 수업 시간을 초과했다. 


그해 여름은 예고 없이 비가 내리는 날이 많았다. 너무나도 화창한 그날도 마을버스에서 내리는 찰나 폭우가 내렸다. 다행히 가방 안에 우산은 있었다. 주차장을 통해 학생 집으로 이동하는 도중 온통 젖은 신발과 그 안에 있는 나의 발가락들이 생각났다. 불행히도 가방 안에 수건은 없었다. 냅킨 몇 장으로 발을 닦아 보았지만 해결될 리 만무했다. 그때 책 사이에 수 장의 A4용지를 발견하고 빳빳한 종이를 손으로 비벼가며 발을 닦았다. 신발 안에 쑤셔 넣어 젖은 신발도 닦아내고 학생의 집 앞에서 덧신을 신고 들어갈 수 있었다. 


그날은 조금 아주 조금 마음이 울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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