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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장주인장 Dec 19. 2024

뭐 필요한 거 없수?

제4화 잘 살고 있으시죠?

플랫폼에 저가로 올린 영향인지 한라산 동호회팀 이후로도 간간히 예약이 잡혔다.

공과금도 안 될 저가이지만 그나마 다행인 셈이었다.


그러던 어느 이른 아침, 

한 통의 전화가 왔다.


             " 여보세요?"

             "... 저..."

             " (?) 누구세요?"            

             "... 무수암산장이죠?"


어린 여자의 목소리다.


            " 네, 맞는데요."

            " 저... 지금 가도 되나요?" 

            " 네?"


        '이건 또 뭔 말인가!?

         체크 인이 보통 3시, 빨라도 2시인데 아침에 오겠다고?'


이런 식으로 자꾸 끌려다니면 안 된다는 판단에 나름 단호하게 얘기했다.


           "오후 3시부터 입실입니다.

            그리고 지금 청소 중입니다."

           "... 짐이..."

           " 그럼 짐만 놔두고 가시면 청소 끝낼게요."

           " 지금 공항인데... 픽업되나요?"


     '뭐어 피,픽어~~~ㅂ!!

     또 또! 이런 손님이, 아~ 왜 자꾸 이러는 거야!!'


너무 황당한 나머지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 차 렌터 안 하세요?"  

         "... 네. "

         " 우리 집은 중산간이라 차 없으면 힘들어요."

         "... 운전 면허증이."


으음, 그건 나도 없으니 뭐...


         " 그럼 택시 타고 들어오세요, 만 오천 원정도 나올 겁니다."


만 오천 원이란 말에 흠칫 놀란 말투다.


        " 만 오천 원이 나요...?!"


통화를 듣던 남편, 청소 도구를 내려놓으며 공항에 데리러 간다고

전하란다.


       '청소 하기 싫으니까 도망갈 핑계를 덥석 무는구먼.'


순간 짜증이 확 올라왔지만 일단 릴랙스 릴랙스.


      " 남자 사장님 데리러 갑니다, 기다리세요."

      "... 네, 감사합니다."


어휴~ 시작도 하기 전에 이 정도면 별나도 아주 아주~ 별나겠어! 




1 시간 즈음 뒤, 

남편의 승합차가 언덕 위를 올라오고 있다.


이번은 또 얼마나 진상을 부리려나...하는 찰나,

차 뒷문이 열리며 손님인 그녀들이 내리는데 

순간 뇌가 정지된 느낌, 앞선 나의 생각들이 미안해질 만큼 충격을 받았다.


70년대, 막 서울에 상경한 시골 아가씨 같은 행색의 허름한 옷과 낡은 크록스 신발. 

그리고 캐리어.

낯선 곳에서의 긴장인지, 여행에 대한 긴장인지 시선도 마주치지 못하는 모습.

생각지 못한 그녀들의 모습에 얼른 인사도 건네지 못하고 그녀들을 바라보았다.

얼마 전 세월호와 연동돼서 더욱 그런가... 왠지 더 짠하고 맘이 아프다.


바로 중문으로 간단다.

남편은 숙소 근처에는 대중교통이 노선이 없으니 지선버스를 탈 수 있는 

평화로 버스 정류장까지 태워주며

도착 전 미리 전화하면 맞춰서 데리러 가겠다고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밤이 되었다.

곧 막차도 끊길 시간인데 그녀들에게서는 전화가 오지 않았다.

자식 키우는 입장에 슬슬 걱정이 되고, 안 되겠다 싶어 그녀들에게 전화를 했다.


         "... 지금 무수천이고 조금 있다 내리면 된대요."

         " 네?!"


'헉! 무수천이면 이미 윗동네를 지나쳐 가버린 건데!?'


       "거기서 빨리 내려요! 데리러 갈 테니."

       "다음 정거장이라고 안내 방송이 나와요"

       "네에?"


       '뭐지...??' 


잠시 후 남편이 버스 정류장에서 그녀들을 픽업해 왔다.


       " 무수천이면 지나쳐 간 건데 어떻게 된 거예요?"

       " 우도 갔다가 왔어요"

       " 우도요? 아니 중문 간다고 하지 않았어요?" 

       "... 네, 중문 갔다가 우도 갔어요."

       " 예엣?"


 아무리 한라산에서 공을 차면 바다라지만 중문과 우도는 제주 끝과 끝이고 

 여행을 조금이라도 해봤다면 코스를 그렇게 짜지 않았을 텐데.


        "힘들지 않았어요?"

       "... 아니 괜찮았어요."


그리고 편의점 마크가 찍혀 있는 비닐봉지를 들고 객실로 들어가는 그녀들.

그녀들의 손에 들린 하얀 봉지에 투영돼 보이는 삼각김밥과 우유, 그리고 소량의 과자.

왜 이리 맘이 아프지...?


다음날 아침 애월 해안도로까지 태워주고

저녁에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면 전화 달라고 했다.


그리고 저녁에 들어오는 그녀들의 손에 어김없이 편의점 마크가 찍혀 있는 비닐봉지.


그리고 잠시 뒤,

어제보다는 조금은 긴장이 풀린 모습으로 수줍게 오더니 

미소와 함께 픽업해 주셔서 감사하다,며 비닐봉지를 내미는데

편의점에서 샀는지 4등분으로 나눠 포장된 작은 수박이었다.


아이들 키우는 엄마 마음이라 그런지 왠지 이 수박은

'더 맛나게 먹어야 되겠다'는 생각으로 정말 맛있게 먹었다.


그녀들은 다음날 아침에 퇴실,

버스 정류장까지 태워주고

몇 시 비행기로 가냐고 물었더니 막 비행기로 올라간단다.


2박 3일, 첫 비행기 타고 와서 막 비행기로 가는 그녀들.

알뜰하게 모은 돈으로 제주 여행을 온 듯하였다.

언제든 오고 싶으면 올 수 있는 여행이 아니었던 듯 하니 맘이 더 짠하다.


그리고 며칠 뒤 그녀들과 비슷한 또래의 여대생 두 명이 입실하였다.

먼저 다가와 생기발랄하게 얘기도 하고 차 렌트해서 신나게 여행하는 모습에 

더욱 그녀들이 생각이 났던 기억이...



어디선가 잘 살고 있으시죠?

이름, 나이, 사는 곳 그 어떤 것도 모르지만 늘 궁금합니다. 


훗날, 제주 여행이 소중한 기억으로 자리하길 바라요~


* 에고 쓰면서 왜 눈물이 나지...?  분명 잘 살고 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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