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은 납월(臘月)이래요
비가 온다. 오랫만이다.
겨울 가뭄이 심했기에 나도 세상 만물도 반갑다.
비가 오면 하고 싶은 일들이 많아서 정하기 어렵다.
그냥 방에서 비멍하기로 한다.
올해는 납매가 11월말에 봉오리들을 졸망졸망 매달고 방금 필듯한 채비였다.
12월에 몇송이가 벌어지고는 정지상태로 오종종 추위를 견디는 것 같았다.
겨울에 피는 꽃이라해도 계속 영하의 날씨는 좀 곤란한듯 보였다.
밤새 비가 왔기에 아침 뜰은 사뭇 생기가 돈다.
반건시처럼 쪼글하던 납매봉오리가 오동통 윤기가 흐른다.
볼록볼록해진 노랑주머니가 멀리서 봐도 커진 것을 알 수 있다.
추위보다 목이 말랐던게다.
겨울에 나무는 얼어서 죽기보다 말라죽는 경우가 더 많다고 들었다.
참 예쁘게도 온다.
오랜 갈증에 벌컥벌컥 마시면 사래들까봐 조용조용 종일 내린다.
안 보는 사이에 비가 그칠까 눈을 뗄 수가 없다.
두어시간 뒤 납매나무의 노랑이 부피가 커져있다.
어머나! 꽃봉오리가 단체로 궐기를 시작했다.
우리 그 동안 목이 말라 입다물고 있었노라고. 감사하다고.
자연은 사람이 알 수 없는 신비의 세계다.
단지 갈증이 헤결되어 꽃이 핀 것 같지않다.
빗물, 그 속에 수많은 기능과 시그널이 있을 것이다.
수도물이나 우물물로는 대체될 수 없는 저들만의 교신, 그 끝에 봄이 오겠지.
납매는 설중매라 부르는 매화보다 두달쯤 일찍 핀다.
설중매는 겨울의 끝자락 2월에 피지만 납매는 음력 12월에 핀다.
음력 12월을 납월이라한다.
일년을 잘 지낸 제사를 올리는 달이란 뜻이라고 한다.
납월에 피는 꽃 납매, 꽃으로 겨울을 견딘다.
올해는 한달쯤 먼저 11월말부터 삼동을 꼬박 피어있다.
수년전 한겨울 천리포수목원에 갔다가 향기에 반해 묘목을 사왔다.
서해안 겨울 바람에 실려오는 은은한 향기의 정체를 찾아보니 처음보는 꽃이었다.
수세가 제법 큰 교목이 여러 그루 있었지만 꽃이 크지 않아 눈에 띄지 않았다.
너른 정원을 그득 채운 향기는 어느 계절 어느 꽃보다 홀로 빛났다.
'백설이 만건곤할 제 독야청청하리라' .
존재감이 돋보인다.
어이하여 이런 고난의 이름을 가졌는지,
엄동에 빛나는 고귀한 꽃과 향을 널리 칭송하고 싶다.
차로 마시기도 황송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