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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희숙 Sep 02. 2021

싹튼 마늘에서 보다

 환한 햇살이 아까워 빨랫감을 들고 세탁기가 있는 다용도실로 갔다.

길목을 지나갈 때마다 지난 가을에 던져둔 마늘 뭉치를 보며 한심해한다. 껍질을 까서 보관해야지 하다가 한 계절을 보냈다. 오늘은 기어이 처리할 생각으로 몇 꼭지 떼어서 들고 나오는데 손에 잡히는 무게가 영 아니다. 이미 늦어버린 걸 직감한다. 언제나 이렇다.

벼르다가 때를 놓쳐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이 되어서야 뒤늦게 후회한다.


지난 가을에 갓 수확한 마늘 반접을 친구에게서 받았다. 굵고 튼실한 꼭지가 50개, 그 때는 꽤나 무겁게 들고 왔는데 지금은 마르고 싹이 나서 무게감이 확 줄어있다. 대부분의 마늘알에서 초록색 싹이 뾰족이 내밀고 있다. 어떤 꼭지는 싹이 자라 껍질 밖으로 새파랗게 삐어져 나오고 있다. 거스를 수 없는 생명의 순환은 때를 놓치지 않는다. 내가 미루며 게으름을 피우는 동안 마늘 꼭지는 하루 하루 생명을 키워왔던 것이다.


  한 꼭지 안에 마늘이 6개 들어있는 품종을 6쪽 마늘이라하여 좋은 마늘로 친다. 6개의 마늘알에 들어있는 마늘핵이 싹이 트고 자라서 한 꼬투리 안에 가득하다. 밖으로 뚫고 나오기 전이라 얼기설기 엮인 새싹의 에너지가 완벽한 하나의 세상을 이루고 있다.

경이로운 아름다움이기도 하다. 팽창되는 에너지가 더 이상 감당이 안되면 얇아진 껍질을 뚫고 삐어져 나와 마늘 줄기가 자라게 된다. 알마늘에 박혀있는 어린 싹이 흙에 몸을 묻고 싶어하는 갈망이 보여 내몸이 갑갑하다. 새싹이 자라 줄기로 크면 마늘알은 점점 노랗게 쪼그라져 없어진다. 그 때까지 마늘이 흙에 묻히지 못하면 몇 줄기 내리던 실뿌리가 마르고 마늘도 말라 죽는다.


사람의 세대 교체와 다를바 없다. 젊은 육체의 어미가 자식을 낳아 품에서 기르고, 자식이 자라는만큼 어미의 몸은 늙어 사그라진다. 무심히 던져져 삼동을 살아낸 마늘 반접의 겨우살이에 생명의 철칙이 그대로 들어있다. 새댁이 갓난 아기를 안고 젖을 먹이는 모습처럼 두 생명의 연결고리이자 세대 교체의 시작이 겹쳐있는 장면이다. 우주의 원리가 시작되는 놀라운 지점이 마늘 한 꼭지에 빼곡이 자라고 있다.


고구마, 감자, 무. 토란, 양파...알뿌리들은 조건만 맞으면 싹을 틔운다. 어쩌면 조건은 별 중요치 않을 수도 있다. 있는 줄도 모르고 잊고 지내다가 눈에 띌 때쯤에는 싹이 나서 뿌리의 살은 없어지고 줄기가 자라고 있다. 뿌리에 저장되어 있는 수분과 영양은 줄기가 자라는데 쓰여 수축되고 대신에 줄기가 자라있다. 그때서야 아까와하며 물에 담가두고 줄기가 자라는 모습을 즐기거나 남은 살을 억지로 발라 먹는 어거지 절약정신은 늘 뒷북이다.


양파도 즉시 까서 냉장고에 보관해두지 않으면 금방 싹이 자라있다. 아까워서 파 대용으로 줄기를 이용하기도 하지만 그 때마다 쌀은 버리고 겨를 챙겨먹는 느낌이라 씁쓰레하다. 내게 이런 경우는 정말 세기도 어려울 정도로 많다. 그 또한 다른 형태의 에너지 낭비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 생략하지 못하는 과정이다. 치유되지 않는 일순위 난치병이다.


시골로 이사왔을 때 처음 몇해 가을은 얼마나 더 풍성하던지, 이웃들이 추수를 하면 농사짓지 않는 나도 곡식들이 탐스러워 이것 저것 사다 쟁여두었다. 시장에서 파는 우리 농산물을 믿을 수 없어 반신반의하다가 눈 앞에서 거두어들이는 이웃들의 땀이 귀하고도 욕심났다.


참깨, 들깨, 흰콩, 검은 콩, 팥, 쌀, 찹쌀...친지들에게 나누어주고 싶고, 믿을 수 있는 식품들을 연결해주고 싶은 과수요까지 더해서 받아두었다.  때로는 요긴하게 나누기도 하고, 치사를 들으며 중간책을 수행하기도 하지만 그러다가 잊어버리면 남은 것은 끝이었다.


여름철은 생명력의 대결같은 계절이란 걸 시골에서 살아보면 알 수 있다. 곡식과 곡식을 주식으로 하는 벌레들의 경쟁이랄지 자연의 법칙이랄지 갈무리 하지 않는 곡식은 속빈 강정이 된다. 곡식을 보관했던 봉지의 바닥에는 벌레똥과 곡식 부스러기로 너저분해지고 곡식에는 구멍이 숭쑹 뚫린다. 뒤늦게사 아까운 맘에 물에 씻어 가려내면 대부분이 물위에 둥둥 뜬다. 그나마 가라앉은 소량이라도 챙겨 먹을 요량으로 시장에서 박상으로 튀겨오면 누린내가 나고 맛이 없어 결국 버리게 된다. 이런 대책없고 실속없는 과욕을 놀이삼아 몇해 동안 즐겼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도 그리 손해란 계산은 안된다.


공기 중에 싹이 터서 자라고 있는 마늘 반접, 뿌리가 실한만큼 싹도 충실해서 보기에도 사랑스럽다. 이웃들은 작년 10월에 마늘을 밭에다 심어 벌써 한뼘이나 자라있다. 갈무리를 게을리하여 먹지도 못하고 빈쭉정이가 되어버린 알 좋던 마늘에게 미안하고, 맘먹고 나누어준 이웃에게는 더 면구스럽다.

지금이라도 흙에 묻으면 풋마늘로 먹을 수는 있을지 그나마라도 잊지 않고 심어봐야겠다.

'마늘 한톨에 가득 미어터지는 생명의 아우성을 지구에 꽂아  봄기지국을 만들어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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