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정말로 하잘 것 없는 것들에 마음을 담는다. 버려야 할 것과 버리지 말아야 할 것을 구별하지 못하고, 한번 인연이 된 것들은 거의 끌어안고 살아서 집안이 얼추 쓰레기장 수준이다.
옷가지나 일용품은 물론이거니와 빈 병, 일회용 용기, 빈 박스, 비닐주머니, 종이가방...
버리지 못할 이유 또한 다양하다. 크기가 적당해서, 디자인이 예뻐서, 견고해서, 그냥 아까와서...
심지어 보잘것없는 꽃을 달고 뽑힌 잡초까지 단번에 버리지 못해 따로 챙기느라 일이 맥이 끊기고 더디다. 나뭇가지를 자르다가도 마구 버리는 일이 없다. 휘어진 곡선이 멋스러워서, 예쁜 열매가 아까와서, 쪽 곧은 가지가 어딘가에 쓰일 것 같아서...
이렇게 여러 가지를 어지럽게 모아 두고도 정작 필요할 때는 있는 줄도 모르거나 못 찾아서 쓸 수 없는 일이 허다하다.
이웃집 친구조차 마당을 정리할 때 뽑은 꽃이나 자른 가지를 버리지 않고 먼저 물어온다. 얼마 전에도 빨간 열매가 탐스러운 남천 가지를 일부러 길게 잘라 묶어 두고 연락을 했다. 며칠 후에 한 달 동안 집을 비울 계획이 있음에도 탐도 나고 마음이 고마워서 받아다가 물통에 꽂아두었다.
이삼일 뒤 작은 차실을 새로 마련한 지인의 첫 차모임에 다녀올 일이 생겼다. 오픈 선물로 미리 준비해둔 다반과 함께 그 남천 가지를 안고 갔다. 화원에서 산 어느 화려한 꽃보다 자연스럽고 멋스럽다며 친구가 활짝 반긴다.
이렇게 가끔 요긴하게 쓰일 때는 과감하게 버리지 못해 있어 왔던 수고로움이 보상을 받는 듯하여 스스로 뿌듯하다. 비록 생명이 없는 물체라 하더라도 목적과 형체를 가지고 세상에 존재하게 된 모든 것들에 대한 경외심이 아닌가 싶다. 존재했던 시간과 물량의 가치를 가볍게 여기지 못하는 대책 없는 애물 정신이다.
작년에는 뜰 가득 허브 종류를 심었다. 애플민트, 스피아민트, 페퍼민트, 오데코롱 민트, 민트류와 라벤더, 로즈메리, 레몬 타임, 딜, 바질. 레몬밤... 계통도 없는 잡초가 하도 많이 올라와서 생명력이 강한 허브류가 잡초를 이길 것이란 궁여지책이었다. 내심 향기도 즐기고 방문하는 지인들에게 무성히 자란 허브를 한아름씩 선물로 안겨줄 생각도 있엇다. 요리에 응용하거나 입욕제로 써도 좋고 그냥 듬뿍 꽂아두어도 싱싱한 푸른 잎과 향을 즐길 수 있을 테니까.
여름 내내 자라는 줄기를 맘껏 인심을 쓰고도 짬짬이 웃자란 가지를 잘라 말렸다. 아무리 잘 마른 잎이라도 습한 장마철이 지나면 색도 바래고 곰팡이도 피어 볼성 사납게 변한다. 그때조차도 달랑 내다 버리지 못하고 따로 보관해둔다. 가족이나 지인들이 모이는 특별한 날에 향이 나는 연기를 피우는 이벤트를 하고 싶어서이다. 여름밤 뭉근한 모깃불을 피워놓고 평상에 누워 은하수를 쳐다보던 풍경을 재현하고 싶어서이다.
지난 추석에 가족들이 모여 바비큐를 하고 남은 불에 후줄근해진 마른 꽃과 허브 묶음을 딸이 다 걷어다가 태웠다. 민트, 로즈메리, 딜, 양귀비,.. 차례로 가져다 태울 때마다 고유의 향이 번져나간다. 아로마 세러피가 따로 없다. 딸은 온갖 허브의 향을 연기와 함께 연출하더니 마지막으로 생무화과 잎을 꺾어다 태운다. 자기가 좋아하는 무화과 잎의 향이 궁금해서였다. 의외로 생잎에서 향이 강하게 났다. 매력적인 무화과잎의 향을 처음 알게 되었다.
다 마르지 않은 풀은 불길이 보이게 활활 타지는 않는다. 서서히 뭉긋하게 열을 받아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바람이 없는 날 연기는 낮게 깔리기 시작하면서 온 집에 연기를 바르는 듯하다. 상큼한 풀향기가 배어있는 연기조차 아깝다. 옷이나 머리카락 사이에 밴 향이 아까와서 옷을 말아두거나 머리를 감고 싶지 않게 된다.
해마다 졸업여행을 오는 서울의 유치원에서 올해도 연락이 왔다. 대문 앞 엄나무 밑에 말라있는 국화꽃 줄기를 아까와 베지 못하다가 이들이 온다는 날에 맞추어 잘라서 말려두었다. 일전에 뽑아두었던 풀과 함께 국화꽃 대궁이도 태웠다. 낮에 앞집 할아버지 텃밭에서 일부러 가져다 둔 마른 들깨줄기도 한단 태운다. 강한 들깨 향이 났다. 아이들에게 코에 섞여있는 여러 냄새를 가려서 가르쳐줄 수가 없어 안타깝다.
쌀쌀한 밤공기에도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연기놀이가 신기한지 모두들 둘러 서있다. 한두명은 할아버지집에서 보았다고는 하나 다른 친구들은 모두 생소하여 질문이 많다. 낮에 선생님을 따라 유적지를 돌아다닌 아이들은 하품을 하며 들어가고 남은 연기를 마저 태운다.
한 때 윤구병의 ‘잡초는 없다’ 란 책에 열광했었던 적이 있다. 흔히 가장 하찮은 존재의 대명사로 '잡초'를 쓴다. 그러나 잡초는 없다, 우리가 그 가치를 모를 뿐...
쓸모없고 귀찮은 존재로 취급받다가 뽑혀서야 아낌을 받으며 태워지는 잡초, 향기와 연기로 소멸이 승화된다. 흔적 없이 깨끗하게 돌아가는 마지막 의식을 치른 것 같아 개운하고도 경건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