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햄여나 03
옥토버페스트에서 나온 건 오후 두 시에 가까워질 무렵이었다. 분명히 둘러볼 거 다 둘러봤다고 생각하고, 가벼운 걸음으로 나왔는데 생각해 보니 같이 들리려고 계획한 텐트를 잊어버리고 지나치고 말았다. 바이에른 전통 놀이를 하는 데라면서 알이 가기 전에 미리 알아보고 궁금하니까 꼭 들려보자 했던 곳인데 말이다. 거기 가기로 했는데 까먹었네, 하니까 알은 취해서 몰랐다고 한다. 술에 한 번 취하고, 분위기에 두 번 취해서 어지간히도 취기가 올라있었나 보다.
그렇게 헤실거리면서 뮌헨 시내로 향하는 지하철을 탔다. 다음 목적지는 잉글리시 가르텐, 영국식 정원이었다. 독일 뮌헨 한가운데 있으면서 영국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름이 떡하니 잉글리시 가르텐이라고 붙여졌다. 왜 그럴까 궁금해서 찾아보니 영국의 자연주의 정원 양식을 따라서 지어져서 그렇다고 한다. 그걸 생각하면 참으로 맞는 말이다. 잉글리시 가르텐은 내륙에 위치한 뮌헨 도시 사람들에게 커다란 숲과 연못, 여가와 휴식을 제공하는 장소로 자리매김했으니 말이다.
재미있는 곳이다, 꼭 가고 싶다,라고 생각한 것은 몇 년 전이었다. 내가 즐겨 보는 유튜브의 브이로거가 친구들과 뮌헨 여행을 하며 잉글리시 가르텐에서 수영하는 장면이 나왔다. 다시 그 장면을 떠올려 보자면 그 유튜버는 차가운 물에 뛰어들며 "물이 너무 차가워!"라고 소리쳤고, 흐르는 물에 몸을 맡기며 실려내려가는 와중에 "너무 빨라!"라고 경악했으며, 속도감 있게 흘러가는 풍경과 해파리처럼 함께 흘러가는 사람들을 보며 "멈출 수가 없어! 나 여기서 어떻게 나가냐고!" 하며 소리 질렀다. 영상 속의 사람들은 도심 한가운데의 공원에서 마치 바다에 해수욕을 온 것처럼 돗자리를 피고 비키니를 입으며 일광욕을 즐기고 있고, 둘레를 따라 난 호수에 몸을 맡기며 물길 따라 흘러 가는 사람들, 호수의 입구에서 굉장히 거센 물줄기를 받으며 보드에 올라타는 서퍼들까지. 그 어느 것 하나 도심이나 공원이라는 키워드와 어울리지 않는 광경이 연출되는 것에 큰 호기심과 매력을 느꼈다. 그래서 뮌헨을 간다고 했을 때 내심 기대를 많이 품었던 곳이기도 하다. 물론 맥주병 알을 끼고 가느라 수영을 할 생각은 못했지만 (나중에 물에 직접 들어가 보니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할 정도의 수온이긴 했다) 어쨌든 가서 직접 내 두 눈으로 보고픈 마음이 컸다. 대체 도시에서 어떻게 비키니를, 어떻게 서핑을, 어떻게 유수풀이 가능한지 말이다.
버스에서 내려 얼마 지나지 않아 공원 어귀에 도달했다. 공원을 둘러 진입로를 찾다 보니 보였다, 거센 물살을 맞으며 서핑 보드를 타는 서퍼들의 모습이. 어떤 원리로 물이 저렇게 세차게 나오는지는 모르겠지만 서퍼들은 혼신의 힘을 다해 보드 위에 제 몸을 지탱하고 있었다. 이윽고 물살에 밀려 고꾸라질 때까지 말이다. 그러면 다음 줄에 서 있는 사람이 자연스럽게 자기 보드를 던지고 올라탔다. 그 사람이 쓰러지면 그다음 사람이, 그리고 그다음 사람이. 놀이터에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며 한 명씩 탑승해서 즐기는 놀이 기구 같았다. 흐르는 물을 기준으로 왼편과 오른편에 서퍼들이 줄 지어 서있었는데 좌우를 번갈아 가며 서퍼들은 물 위에 올라탔다. 균형을 잃고 물에 빠진 서퍼도 결국에는 다시 뭍으로 올라와 줄을 서기 때문에 다들 무한으로 돌아가는 굴레에 탑승한 듯 보였다.
서퍼 존이 끝나면 수영복 차림의 사람들이 흐르는 물에 제 몸을 맡기고 흘러가는 유수풀이 나왔다. 캐리비안 베이의 유수풀이라고 하기에는 유속이 과하게 빨라 보였지만 그것이야말로 잉글리시 가르텐의 묘미일 수 있겠다. 손을 담가 보았다. 으, 차가워, 대체 여기서 몸을 어떻게 담그고 있지, 혹한 훈련이라고 할 정도의 시림이었다. 아침에는 분명 쌀쌀했는데 대낮이 되니까 햇볕이 쨍쨍해 30도를 웃돌았다. 기분 좋은 더위였다. 새파랗게 튀는 물방울과 터지는 웃음소리가 한데 뒤섞여 청량한 풍경을 자아내고 있었다. 그러니 돌아다니며 땀을 좀 흘리기도 했는 데다 소리 지르며 유수풀에서 덤벙거리고 노는 사람들을 보니 무작정 뛰어들고 싶은 마음이 솟구쳤다. 여기서 수영할 생각은 진작 접었어서 아쉽게 침만 꼴깍 넘기고 있을 때였다. 알이 발이라도 담그겠다면서 좁게 난 흙길을 따라 내려갔다. 어라, 어라라라. 주르륵, 미끄러졌다. 흙에 물기가 다져 있었던 건지 그 길 따라 시원하게 입수했다. 신발, 양말, 바지 밑단이 모조리 젖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기분이라도 내보자, 알은 하반신을 포기한 모양이다. 나는 알의 선입수를 보고 더 만반의 채비를 했다. 건조한 흙 위에 신발과 양말을 벗고, 입고 있던 얇은 바지를 돌돌돌 올려 허벅지까지 올렸다. 한 발짝씩 신중하게 내디뎌 물속으로 들어갔다. 첩첩산중의 계곡 물처럼 맑고 시원했는 데다 유수풀에서 한 자락 떨어져 나온 물줄기여서 들어오는 사람들도 없었다. 신선이 된 것만 같았다.
통상적인 수영을 할 수는 없더라도 수영에 근접하게나마 갈 수는 있을 것이다. 아무래도 유사 수영을 위해서라면 최대 면적을 물에 적셔야 한다. 이른바, 사족영법이다. 두 팔과 두 다리, 즉 사족을 이용해 수영하는 것이다. 이미 물속에 담근 두 다리, 거기에다 몸을 둥글게 말아 두 팔을 넣는다. 깊이 넣을수록 차가움의 감도는 높아지고, 그만큼 상쾌함의 지수는 올라가니 팔꿈치가 넘는 수위로 팔을 넣을 것을 권장한다. 마무리는 머리통, 그렇다, 머리까지 집어넣어야 완성이다. 물론 머리카락이 젖으면 후처치가 곤란하므로 최대한 얼굴 위주로 입수하면 된다. 모든 영법은 기술이다. 대망의 정점은 이제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다. 두 팔과 두 다리를 리드미컬하게 게 움직이고, 머리로 능수능란하게 방향을 제어하며 이동한다. 밖에서 보면 꽤나 괴상망측한 형태가 완성되고, 해양 괴생명체로 인식될 오해의 소지가 다분하다. 하지만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다. 시원하고, 재미있는 데다가 모든 피로가 단번에 사라진다. 궁극적으로는 잉글리시 가르텐에서 옷을 적시지 않고 수영할 수 있는 최적의 방안이니 이곳에 방문하고 수영복이 없어 수영을 포기할 기로에 서 있는 분들에게 강력히 추천하는 바다.
사족영법을 개운하게 마치고 다시 뭍으로 나와 양말과 신발을 신고 더 깊숙한 안쪽으로 들어가 보았다. 오솔길을 걸어가는데 경찰이 순찰을 다니는 장면을 보았다. 제복을 입은 경찰은 드넓은 이곳을 순찰하기 위해 말에 올라타 있었는데 긴 다리를 휘적이며 꼿꼿이 걸어가는 말들이 어찌나 듬직하던지, 그렇게 잘생긴 말은 세상 처음 봤다. 풀숲 너머로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잉글리시 가르텐 안에는 여러 곳의 비어 가르텐이 있다. 야외 간이 호프집으로 보면 된다. 우리가 슬쩍 둘러본 곳은 중국 탑이었는데 중국의 도자기 탑을 본떠 만들었다는 얘기가 있다. 중국 탑의 2층에서 악단이 경쾌한 곡조를 연주하고 있고, 그 아랫사람들이 큼직한 규모의 비어 가르텐에서 맥주와 안주를 먹고 있었다. 과연 여유가 호화롭게 넘치는 주말 오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