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토버페스트

알햄여나 02

by 이해린

블로그에서 토막 글을 읽어가며 대강 공터에 텐트 치고 테이블 깔아두고 맥주 마시는 거겠거니 싶었다. 음, 그러니까 공터는 공터였다. 하지만 그 빈 공간이란 것이 놀라울만치 광활했다. 입장 게이트를 지나쳐 안으로 들어왔는데 놀이공원 부지인지 곳곳에 놀이기구가 운행되고 있고, 거대한 텐트에는 양조장이 통채로 들어가 있었다.

아침 9시, 이른 시간이었는데도 안에 사람들이 긴 협탁에 앉아 간식을 먹고 있었다. 아무도 맥주를 마시고 있지 않아서 의문이던 차였다.

“오늘 행사 첫 날이어서 12시에 첫 맥주 통을 열어. 그게 축제 전통이야. 그치만 일찍 온 건 잘한거야. 그때 쯤 되면 아마 앉을 자리가 하나도 안 나오니까.“

옆 나라 스위스에서 왔다는 아저씨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왔다. 작년 맥주 맛을 못 잊었다고. 오로지 맥주를 위해 국경을 건넜다는 게 대단해 보였지만 대강 그런 사람들이 많으니 이 곳 분위기가 열띤 것이 아닐까 싶었다. 우리 테이블을 담당한 서버가 자꾸만 와서 음료나 간식을 시킬 건지 물었다. 삼고초려 당한 나머지 10억만원짜리 레몬콜라와 마차 바퀴마한 프레첼을 시켰다. 프레첼을 우물우물 먹고, 수다 떨다가, 주변 기웃거리다 보니 테이블이 속속들이 차고 있었다. 오전 11시를 넘어가는 시각, 어느 샌가부터 주변이 괜히 소란스럽더니 둘러보니 모든 테이블이 빈 자리가 없을 정도로 빼곡히 사람들로 가득 찼다. 스웨덴에서 온 세 친구들, 바르셀로나에서 왔다는 커플까지. 우리 테이블도 만석이었다.

트럼펫과 드럼 소리가 경쾌하게 울린다. 드디어 맥주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길게 늘어선 줄은 이 곳 양조장의 서버들이었다. 이들이 하는 일은 미리 담당하는 테이블의 주문을 받고 주문대로 가서 맥주를 받아오는 것이었다. 물론 말처럼 쉬운 건 아니다. 열 두개의 맥주잔을 컵 쌓기해서 오는 모습을 멀리서보면 높은 맥주 산에 서버는 가려지고 정말 맥주 잔에 발이 달려 오는 것만 같다. 내 커피 하나 들고 가는 것만 해도 계단 턱에 걸려 자빠지고 얼음 하나씩 공중에 날아가는 상상이 무릎 반사처럼 들던데, 저 사람들 머릿 속에도 맥주 잔 엎어지는 상상이 차있을까. 내주는 맥주 잔은 족히 일리터였다. 맥저 한 잔보다는 맥주 한 끼라는 말이 더 어울릴 정도의 대단한 양이었다. 손도 크고 통도 큰 게르만족이로구나, 감탄하며 알과 나는 홀짝홀짝 사이 좋게 한 모금씩 나눠 마셨다. 둘이 열심히 번갈아 마시는데도 끝날 기미는 보이지 않고, 바닥이 드러나기도 전에 취기가 조금씩 오르기 시작했다.

열두시를 넘어가는 시각, 다른 곳을 둘러보자 싶어 테이블을 떠났다. 텐트 바깥에 줄 선 사람들을 보니 아침에 바지런을 떤 보람이 있었다. 먹고 마시며 배를 두둑히 채웠으니 다른 텐트를 구경해보자. 쨍쨍한 한 낮의 햇살이 아침의 서늘한 기운을 데우고 있는데다 맥주의 기운으로 몸에 열이 나기 시작했는지 사람들의 옷차림은 한 겹씩 가벼워지고 있었다. 정오대낮에 맥주 잔과 캔을 들고 분주히 오가는 사람들의 둥글둥글한 얼굴과 표정, 재잘거리는 말소리와 바쁘게 오가는 발걸음. 사람들 모두가 그야말로 너무나 신이 나버린거다. 먹거리와 마실 거리, 즐길 거리다 다 모인 이 곳이다. 이 모든 게 좋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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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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