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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이 Sep 26. 2024

우리는 서로를 더 후벼파는 것을 멈추기로 했다.

나는 동생이랑 어렸을 때 싸운 기억이 많이 없다. 사이가 정말 좋았다. 그렇게 우리는 성인이 되었고 7년 동안 따로 살다가 다시 같이 살게 되었다. 여러 가지가 맞지 않을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배려와 양보의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아프면서 나는 동생이 미웠던 것 같다. 동생의 상처를 인지하면서도 결국 부모님께서 동생을 철부지로 키워서 내 눈에 동생은 마냥 생각이 없어 보였고 그럴 때마다 다르게 키워서 다르게 자랐다는 게 너무 화가 났고 생각이 없어 보이는 부분들에 대해 지적질을 했다. 그렇게 우리는 정말 많이 싸우기 시작했다. 싸우고 몇 달씩 단 한마디를 하지 않았다. 성격상 나는 또 그게 불편해서 내가 먼저 손을 뻗으면 사이가 다시 좋아지는 것 같았으나 며칠 후 다시 싸웠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입을 닫았다. 무한 반복이었다.


동생은 자살시도 소동을 일으키는 언니가 무섭고 갑자기 화를 내는 언니가 밉지 않았을까?


모든 것에는 총량의 법칙이 있다고 하지 않는가. 어렸을 때 안 싸운 걸 이제 와서 다 꼬박꼬박 적립하듯 싸우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동생이 예전처럼 나를 언니라고 아니 곁에 있는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 주지 않는 것 같았다. 나를 싫어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상처 있는 가정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두기로 한 시점에서 동생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봤을 때 나는 동생을 미워했지 싫어한 적이 없었다. 그래도 이유 없이 이쁘고 이쁜 게 동생이었다. 말과 행동은 그러지 못했지만 말이다. 동생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그리고 이번엔 동생이 먼저 다가왔다. 그리고 진지하게 이야기했다.


떨어져서 사는 게 좋을 것 같아. 떨어져 살면서 다른 자매들처럼 약속 잡아 밥도 먹고 놀러도 다니고 하고 싶어. 언니랑 그런 게 하고 싶어 이제.


미운 게 싫은 게 아니듯 동생도 나와 같이 나를 누구보다 많이 좋아한다는 게 느껴졌고 우리가 많이 싸우는 이유에 대해서도 많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는 게 느껴졌다.


그래서 동생의 상처에 대해 더 이상 스스로를 자책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야 내가 그 친구에게 내 자책으로 얼룩진 잣대를 들이밀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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