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된 아파트를 부동산에 내놨다. 이제 우리가 이 보금자리를 떠나기까지 딱 1년 남았다.
1년 뒤면 초등학교에 입학할 아이들을 위해 학교와 학원이 가까운 곳으로 가기 위한 결정을 이미 몇 년 전부터 세운 이유였다. 이곳은 쌍둥이를 임신하며 기존에 살던 집보다 넓은 집이 필요하다 생각해서 집을 보자마자 덜컥 계약을 했다. 당시 우리는 나이가 많았지만 경제적인 여유가 없었다. 상황이 이렇기에 얼마안 된 신축 아파트는 우리 가족에게는 언감생심이었다.
느지막이 날이 저무는 시간에 찾아간 부동산은 얼마전에 나온 긴급매물을 소개해줬다. 매매가보다 무려 2천만 원이나 저렴하게 나왔다고 말했다. 집을 구경하기전에 적당한 금액에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이마저도 우리는 대출을 끼고 집을 사야 했다.
낡은 엘리베이터가 덜컹덜컹 13층을 향해 올라갔다. 엘리베이터가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결혼 후첫 집은 3층짜리 다세대 주택이였는데 여름이면 구슬땀을 흘리며 오르락내리락했으니말이다.
딩동딩동!
젊은 부부가 현관문을 열며 우릴 반겼다. 하얀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며 멍멍 짖었다. 작은 복도를 따라 거실에 발을 디딘 순간, 세상에 이럴 수가! 이렇게 넓은 거실에 베란다로 비치는 풍경이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쉬이쉬이 빠른 속도로 지나치는 반짝이는 자동차들, 멀리서 보이는 붉은 가로등이 마음을 끌었다. 시선을 한 곳에 두었을 뿐인데 수많은 풍경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마치 닫혔던 마음이 뻥 뚫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런 곳에서 살 수만 있다면 나날이 행복할 것 같았다. 꿈에 그리던 큰 거실과 세 개의 방. 넓은 안방에는 장롱과 서랍장, 커다란 침대도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넓었다. 화장실도 두 개다. 남편은 장 트러블이 있어서 화장실을 달고 사는데, 아침마다 화장실에서 나오지 않는 남편 때문에 늘 짜증을 냈다. 그러니 우리에게 화장실이 두 개라는 건 축복이었다.
"당장 집을 계약하겠습니다."
부동산 사장님은 이런 집 구하기 힘들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래 맞다. 이런 집을 저렴한 매매가에 구하기란 밤하늘에 별을 따는 일보다 힘들 테다. 우리는 서둘러 계약금을 마련했고 이사날짜를 잡았다.
아아아, 마이크 시험 중. 집에 가구가 얼마 없어서 빈집에 있는 것처럼 목소리가 웅웅 울렸다. 소파를 사고 커튼과 블라인드를 달고, 식탁을 샀다. 조금씩 집이 집다워지는 것 같았다. 내가 가장 먼저 하고 싶었던 것은 조명이었다. 전 주인은 식탁 위에 엔틱 한 자전거 한대가 매달려있는 조명을 달았었다. 나와는 취향이 다른 사람이었다. 하지만 취향은 둘째 치고, 자전거가 워낙 커서, 벌떡 일어섰다가는 머리까지 닿을 것 같았다. 손재주 없는 남편은 주문해 놓은 전구와 드릴로 뚝딱뚝딱 공사를 하기 시작했다. 천장에서 자전거 한 대가 뚝 떨어지더니 이내 따뜻한 전구색 조명으로 변신했다. 평소 갖고 싶었던 식탁과 조명이 함께 만나니 진정 나를 위한 공간이었다. 좋다, 정말 좋다.
아침이면 집은 다용도실부터 시작해서 해가 떴다. 또한 저녁이면 베란다로 시작해서 천천히 작은방으로 해가 저문다. 붉은 노을이 보인다. 나는 이곳 식탁서재에 앉아 풍경을 바라볼 때 가장 행복했다. 봄이 인사한다. 여름이 간다. 가을이 잠깐 왔다가 떠나니 겨울이 찾아왔다. 그리고 또 가을... 내가 좋아하는 가을...
아이들이 태어나고 훌쩍 자라더니 어느새 여섯 살이 되었다. 이곳에서 산지 벌써 6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집은 내가 나이가 든 만큼 나이를 먹었다. 우리 가족을 다정하게 보듬어준 우리 집. 이제 우리는 조금씩 떠날 날을 앞두고 있다.
부동산이에요. 집을 보러 가려고 하는데, 댁에 계신가요?
아, 어쩌죠. 청소를 안 해서 다음번에 보셔야 할 것 같아요.
언젠가는 또 다른 이가 이곳에서 살게 될 거라 생각했지만,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 나는 조금씩 우리 집을 떠날 준비를 하는 중이다. 회사일과 육아로 바쁘다는 핑계로 집안일에 소홀했다. 주말인 오늘은 다용도실부터 청소를 시작했다. 다용도실에는 오래된 통돌이 세탁기, 아이들 옷을 돌돌돌 뽀송하게 말려준 의류 건조기, 시골 부모님께서 농사지으신 쌀이 있다. 나는 하루에도 수십 번 다용도실을 들락날락한다. 밥을 하기 위해, 빨래를 하기 위해 쥐구멍 드나들듯 다용도실을 찾았다. 겨울에는 서늘한 공간이라 과일이나 야채를 냉장고처럼 이용했던 곳이다. 하얀 벽 구석에는 작은 곰팡이가 생겨 락스로 닦았고, 밥을 한다며 쌀을 건져 올릴 때 바닥에 떨어진 쌀알까지 걸레로 닦아냈다. 건조기에 쌓인 먼지를 닦고, 통돌이 세탁기 얼굴을 닦았다.
나는 아침마다 다용도실 창문을 열고 아침해를 바라보았다. 눈 내리는 날이면 가장 먼저 다용도실에 들어가서 하얀 눈을 바라보았다. 놀이터 앞에 쌓인 눈도 , 이른 새벽 쌓인 눈을 치우는 경비아저씨도 바라볼 수 있었다. 아저씨가 참 힘들겠구나! 도와드려야 할까 고민했던 것도 다용도실 창문을 바라볼 때 들었던 생각이다. 다용도실은 단순한 공간이 아닌 내게 추억을 주었고 마음을 다독여주었다.
아이들이 쌀을 갖고 장난칠까 봐 다용도실 문을 굳게 잠근다. 이곳은 엄마와 아빠만이 출입할 수 있는 유일한 곳. 건조기가 힘차게 돌돌돌 돌아갈 때 꽃을 닮은 섬유유연제 냄새가 코끝을 적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