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리다가 자신의 친구인 페라리스, 바티모와 대담한 기록을 엮은 책이다. 소실되었다가 데리다 전기 작가에 의해 겨우 발견되었다고 하는데, 흥미롭다. 대담자인 페라리스는 가브리엘 마르쿠스와 함께 신실재론(새로운 실재론)을 이끄는 철학자고, 바티모도 유명한 철학자인 것 같지만 나는 잘 모른다.
대담은 총 여섯 번 이루어졌다. 바티모는 마지막 대담 때만 참가한다. 대담은 페라리스가 간략히 묻고 데리다가 길게 답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주로 화두가 된 건 데리다의 주요한 철학적 테마인 보편과 특수가 관계 맞는 방식과 그 관계항들의 다양한 변주 양상(증언, 비밀, 철학과 문학 등)이었다.
그 변주 중 <비밀의 취향>의 독자가 가장 주의를 기울여야 할 건 어쩌면 '비밀', 그리고 그 연장선에서 '우정'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 이유는 '비밀의 취향'이라는, 책의 제목 때문이다. 왜 그런지 책을 조금 살펴보자.
"제가 모든 것을 언술할 수 있었다고 해도 어떤 잔여가 있습니다. 그 잔여는 저의 대체 불가능한 독특성이고, 그게 무엇이 됐든 제가 감추려고 하는 것과 무관하게 비밀인 그런 것입니다." 106p
"모든 타자가 전적으로 다르다는 데 동의하고 거기서 출발할 때 생기는 차이는 기껏해야 쟁의가 - 따라서 전쟁과 논쟁들이 - 가능하다는 것, 나아가 불가피해진다는 것 정도뿐이죠." 110p
"저는 그 유사성으로 인해 비밀이 아닌 것보다는 비밀을 선호하게 됐습니다. 공적인 발화, 전시, 현상성보다 비밀을 더 좋아하게 됐죠. 제겐 비밀의 취향이 있습니다." 111p
이 미묘한 구절은, 역자에 따르면 이런 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우정에는 확고하고 필연적인 토대가 없다는 진리를 뻔히 알지라도 발설하지 않는 것이" 우정의 윤리이다. "솔직함에는 '비밀의 취향'으로서의 우정과 본질적으로 대척하는 면이 있는 것이다." 즉, 이 책은 그 무엇보다 '비밀의 취향'을 지닌 데리다가 그 취향을 발휘한 생생한 기록으로서 가치를 갖는 셈이다.
나를 지금까지 줄곧 괴롭혀 온 '인생의 화두' 같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우정'일 것이다. 나에게는 태생적으로 깊은 관계를 맺기 어려워하는 면이 있는 것 같다. 아니, 어쩌면 '얕은 관계'를 맺기 어려워하는 면이 있는 것일까? 데리다라면 이 '면'을 '취향'이라 불렀을 것이다. 그에게 '비밀의 취향'이 있다면, 나에게는 '깊이에의 취향' 같은 것이 있는 것일까? 어쩌면 '깊이'는 '비밀'의 공간적인 은유로서 작동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도달하기 어려운, 아주 깊숙한 곳에 위치한 내밀한 무언가. 결단력 있는 탐험가만이 발견할 수 있는 '비밀'. 데리다가 말하는 '비밀'은 심지어 밝힐 수조차 없는 아주 은폐된 것이라는 점에서, 무한히 초월적인 깊이, 원근법적 상징형식의 소실점 너머에 있는 무언가로서 '비밀'은 '깊이를 넘어선 깊이', 즉 깊이 그 자체다. 아니, 깊이보다 깊-이 들어간, 지하 1층 아래의 지하 n(2, 3, ... x)층이다. 한마디로 이런 것이다. 아마 나는, 그리고 '비밀의 취향'을 가진 이 모두, 데리다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조금 늦은 감은 있지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데리다에 관심 있다면, 그의 독특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비망록, 자서전, 대담집, 그리고 무엇보다 취향의 기록인 이 책을 읽지 않을 이유가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그의 친우가 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