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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비와 호지의 아빠 Aug 19. 2023

우린 제법 잘 살아왔어요...

현실에 탄탄히 뿌리내리고 30년을 살아낸 인생의 전우들에게 바치는 글

오랜만에 한국으로 건강검진 휴가를 가면서 한 동안 만나지 못했던 대학교 동창들을 만나는 기쁨을 누렸다. 한국으로 가기 전에 카톡으로 정한 약속 장소는 전과 부침개를 전문으로 하는 강남의 조용한 식당이었다. 


휴가 중인 내가 가장 먼저 도착했으리라 예상하고 문을 열고 들어가니 나보다 먼저 도착해 있던 P가 앉아 있었다. 내가 한국을 떠난 게 2020년이고, 그 이후로 보지 못했으니 거의 4년 만에 만나는 셈이었다. 태평양을 한강 건너듯 넘어 다니며 한국과 미국 모두에서 이름만 대면 '허걱'하고 놀랄만한 회사에서 멋진 커리어를 쌓아오던 P는 미친 듯이 바쁘고 정신없는 S사 임원직에서 얼마 전에 제 발로 걸어 나왔다. 친구들 모두 그 좋은 회사를 떠나는 P의 결정을 의아하게 생각했지만 작은 스타트업 기업에서 새로운 둥지를 튼 그의 활기찬 모습은 30년 전에 내가 P를 처음 만났을 때와 하나도 달라진 게 없었다. 


4년 동안 만나지 못한 우리였지만 근황을 묻는 몇 마디 질문이 끝나자마자 우리들은 서로를 처음 만났던 1991년의 동아리방에 모여 앉은 20대 초반의 대학 신입생으로 돌아가 있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미국으로 이민 간 P는 상당히 오랜 기간 미국에 거주했고, 그 이후로 매우 성공적인 커리어를 개척해 왔다. 하지만 오랫동안 미국에 거주했던 그 친구를 나는 물론이고 대학 동기들은 자주 만날 수 없었다. 내가 기억하고 있던 대학생 P는 꽤 엉뚱하고 한편으로는 살짝 냉소적이었는데 30년의 세월이 지난 P는 너무나도 의젓하고 존경할만한 '인생 선배'가 되어 있었다. 대화 중간중간에 살짝살짝 묻어나는 전라도 사투리마저 촌스럽기보다는 P의 인간적인 매력을 돋보이게 만들었다. 요즘에는 자신과 같이 IT나 컴퓨터 분야에 뛰어들고자 하는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여러 가지 조언을 주는 멘토 활동에 열성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나니 감탄이 절로 나왔다. 




조금 지나니 N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대학 동기들 중에서 가장 먼저 시집가서 이제는 장성한 자녀를 2명이나 둔 N은 언제나처럼 수줍게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우리들을 만날 때마다 언제나 '나는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것 없어. 그저 기도만 열심히 할 뿐이야'라고 말하지만 그녀와 잠시라도 이야기를 나눠보면 수줍고 조용한 그녀의 가슴속에 흔들리지 않는 신앙심이 얼마나 튼튼하게 뿌리내리고 있는지 쉽게 알아챌 수 있다. 30년 전에도 그녀는 항상 착하고 친절했는데 30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그녀의 아름다운 품성 위에 신실한 신앙심이라는 왕관까지 자리잡았다.  


한두 마디 안부인사를 나누는데 K와 L이 차례차례 문을 열고 들어왔다. 4년 만에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각자의 생활에서도 많은 일이 있었다. 대학 때 내 눈에는 조용하고 약간은 까칠하게 보였던 K는 언젠가부터 골프에 입문하여 이제는 주위 사람들이 인정하는 실력자로 변모해 있었다. 졸업한 후에 가끔 만날 때마다 항상 속 깊은 생각으로 나를 감탄하게 만들었는데 그날도 '결혼은 인생에서 가장 친한 친구를 찾는 일'이라는 멋진 말로 우리 모두를 다시 한번 감탄하게 만들었다. 




질병과 노환으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린 경우도 많았고 가까운 사람이 힘겹게 투병생활을 이어가는 경우도 많았다. 인도에 살고 있던 나에게도 지난 4년은 힘든 시기였는데, 살고 있는 곳이 어디인지 상관없이 그 시간은 누구에게나 힘들고 괴로웠나 보다. 30년 전에도 그리고 30년이 지난 지금도 항상 쾌활하고 다변이었던 L은 가까운 사람의 치매 투병 이야기를 하다가 낮은 목소리로 한마디를 내려놓았다.


"기억이라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를 이번 기회에 깨달았어. 기억을 잃으면 그 순간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이랄까 인간으로서의 의미를 잃어버리는 거 같아."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얼마 전에 둘째 딸 호지와 함께 읽었던 카즈오 이시구로의 '나를 보내지 마(Never Let Me Go)'가 퍼뜩 떠올랐다. 그 소설의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주제 또한 그것이었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살과 피가 아니라 바로 그 인간의 경험과 추억이다'... 머릿속 한편으로는 아직도 건강과 총기를 잃지 않으신 양가 부모님 네 분이 스쳐 지나갔다. 그저 건강하게, 자식의 이름과 얼굴을 잊지 않고 살아계신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당과 가장 가까운 곳에 사무실이 위치한 Y는 회사일을 마무리하고 가장 늦게 합류했다. 남자들도 버티기 힘든 대기업에서 50대가 되도록 실력을 인정받아 승승장구하고 있는 그녀는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함박웃음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막걸리가 2병째 돌았다. 따뜻한 전과 함께 곁들이니 그 맛과 향이 더 진해졌다. Y가 추천한 식당이었는데 메뉴 하나하나가 나무랄데가 없었다. 지난 4년 동안의 일을 이야기하던 Y는 자신이 잘 알고 있던 후배이자 동료 한 명이 얼마 전에 어이없는 범죄를 저지르고 감옥에 갔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모르는 사람이었지만 L은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아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테이블에 모여 앉은 우리들을 한번 휘익 둘러보더니 한마디를 했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제법 잘 살아온 거 같아. 허황된 생각도 안 하고 현실에 굳게 뿌리내리고 세월을 잘 견뎌온 거 같아..."




30년 전 우리들이 대학교 교정에서 처음 만났을 때 그 누구도 30년 후의 우리 모습이 어떨지 상상하지 못했다. 다행히도 우리들은 30년이라는 세월의 시험을 무사히 견디고 '제법 잘' 살아내는 데 성공했다.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것이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경험과 기억이라는 소중한 교훈을 믿는 철학자이자, 후배에게 귀한 교훈을 남겨주고자 노력하는 멋진 멘토가 되었다. 온갖 유혹이 넘쳐나는 30년의 직장생활에서도 우리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구분할 수 있는 혜안을 갖게 되었으며, 결혼이 얼마나 멋지고 즐거운 '우정 여행'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신앙이 우리에게 주는 보이지 않지만 강한 힘을 믿고 의지하게 되었으며, 3개 대륙 4개 나라를 떠도는 부평초 같은 삶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잡을 수 있었다. 돌이켜보니 감사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다.


나처럼 여러 나라를 떠돌며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대개의 경우 은퇴하게 되면 젊은 시절의 친구들로부터 잊혀진 존재가 되기 십상이다. 나 역시 내 주위에서 나와 비슷한 업종에 종사하던 인생 선배들이 퇴직 후 한국으로 돌아가 적적한 인생 2막을 보내는 것을 제법 많이 보았다. 그 때문에 나는 한국에 들어가게 되면 꼭 시간을 내서 젊어서 사귄 친구들에게 만남을 청한다. 사회생활이 바쁘다 보니 절반도 자리에 나오지 못하지만 내가 어떠한 이해관계도 없이 만나는 거의 유일한 모임을 포기할 수 없다. 


그날 밤 우리는 제법 늦은 시간에 자리에서 일어섰다. 내가 1년에 한 번 한국에 들어올 때마다 그 덕분에 만나게 된다며 친구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내년을 기약했다.(ㅎㅎ) 그 일 년이 지나가는 동안 우리는 또다시 집에서, 사회에서, 교회에서, 친한 사람들과의 모임에서 기쁨과 슬픔과 아쉬움과 분노와 행복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슬픈 일에 슬퍼하고 우리를 분노케 하는 것에 분노해야 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나는 한 가지만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그런 모든 일들이 우리를 좀 더 강하고 단단하고 흔들리지 않는 사람으로 만들어주면 좋겠다. 일 년 후에 우리가 다시 만나서 "우리 지난 일 년간 제법 멋지게 잘 산거 같아. 감옥 간 사람도 없고 말이야.(^_^;)"라는 이야기를 다시 나눌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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