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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비와 호지의 아빠 Oct 28. 2023

뭣이 중헌디... 도대체 뭣이 중헌디?

인도의 여성정치인 할당제를 바라보며…

[# 1] 연방의회와 주의회의 1/3을 여성에게 할당하다.


2023년 9월. 여성에 대한 의석 할당제가 인도 정치권에서 논의되기 시작한 지 27년 만에 관련법이 통과되었다. 이제 여성의 목소리가 인도의 정치에 반영될 수 있는 기회가 커졌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있지만 아직 멀었다는 부정적 평가도 만만치 않다. 이번에 통과된 여성 의석 할당제에는 무슨 내용이 담겨 있을까?


인도는 28개의 주와 8개의 연방직할지로 이루어진 거대 국가로서 뉴델리에는 연방 하원(Lok Sabha)과 연방 상원(Rajya Sabha)이 있고 각각의 주(state)와 연방직할지(Union Territory)에는 주의회(State Assemply)가 구성되어 있으며, 마을 단위의 자치의회(통상 판차야트 panchayat라고 불림)까지 갖춘 지방자치제를 시행 중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기초자치단체라 할 수 있는 판차야트 의석 33%에 대한 여성할당제는 1993년 개헌을 통해 최초로 도입되었고 이후 추가 개헌을 통해 20개 주에서 최대 50%를 여성에 할당하고 있다. 이번에 법제화된 여성할당제는 각주의 주의회 및 연방하원를 대상으로 한다. 이로써 인도 시민들이 직선으로 뽑는 모든 선출직 공무원에는 여성이 의무적으로 할당되게 되었다.


[# 2] 그렇다면 여성할당제법에 문제점은 없나?


이번에 통과된 여성할당제법에는 두 가지의 문제점이 숨어있다. 첫째, 이 법이 도대체 언제부터 시행될 것인지가 정해지지 않았다. 연방하원의원을 뽑는 다음번 인도 총선은 고작 6개월 후인 2024년 4월에 시행되는데 이법은 적용되지는 않는다. 즉, 이들의 5년 임기가 끝나는 2029년까지 연방의회에는 할당제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집권 인도인민당(BJP)의 당수이자 인도 총리인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2024년 연방하원 선거에 자발적으로 1/3을 여성으로 공천하겠다고 약속했다. 그 약속이 지켜질지는 역시 두고 봐야 할 것이다.


왜 법이 통과되었는데도 불구하고 곧바로 시행되지 않을까? 디테일 속에 숨어있는 두 번째 악마는 바로 ‘인구센서스’의 문제이다. 인도는 매 10년마다 인구센서스를 실시하고 센서스 이후에 실시하는 총선 및 주의회 선거는 센서스를 기반으로 재정비한 선거구를 대상으로 실시된다. 동서남북이 각각 3,000km나 되는 드넓고 가난한 땅에서 인구센서스를 하다 보니 평균 2년은 족히 걸린다. 가장 최근 센서스가 2011년이었으니 원래는 2021년에 실시했어야 하나 코로나로 인해 무기 연기되었다.


대놓고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집권당에게는 다행이었다. 어차피 모디 정권 집권 이후 일자리도 크게 늘지 않았고 일반 국민들의 삶도 크게 좋아지지도 않았는데, 센서스를 통해 이러한 사실들이 밝혀져 봤자 득표에 도움이 될 게 없기 때문이다. 2021년에 실시되었어야 할 센서스를 ‘2024년 총선이 끝나는 대로 곧 실시하겠다’고 인도 정부는 공약하고 있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어차피 센서스 결과가 여당에 불리할 테니 일찍 서두를 필요가 있겠는가?


자, 센서스 결과가 나오면 문제가 다 해결될까? 그렇지 않다. 과거 사례를 살펴봤을 때 센서스 결과를 기반으로 선거구를 획정하는 데에도 최소 몇 년은 걸렸다. 각 정당의 사활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에 타협에 많은 시간이 걸리게 된다. 이를 이해하려면 인도 정치에서의 주요한 대립관계를 아주 간략하게나마 언급해야 한다.


첫째, 인도는 부유하지만 인구가 적고 종교적 색채가 옅은 남부 인도가 열심히 돈 벌어서 세금을 많이 내면 가난한데 인구가 많고 종교적 색채가 짙은 북부 인도가 그 세금을 받아서 생활하는 구조이다. 가난하지만 인구가 많은 북부인도가 많은 의석수를 바탕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할수록 세금은 많이 내면서 정치적 목소리를 낼 수 없는 남부 인도가 빡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둘째, 인도에서는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사회하층민인 ‘지정카스트와 지정부족(Scheduled Caste & Scheduled Tribes)’을 보호하기 위해서 이들에게 대학교 입학이나 공직 입문 등에 있어서 할당제를 통한 특혜를 주고 있다. 그러다 보니 ‘지정카스트와 지정부족’의 바로 위에 존재하는 ‘기타후진카스트(Other Backward Caste)’는 상대적으로 소외당하고 있다고 항상 호소한다. 마치 우리나라의 ‘차상위계층’이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이는 것과 비슷하다. 부유하고 교육 수준이 높은 상위카스트(Upper Caste)에게도 치이고 법률적 보호를 받는 하층민들에게 치이는 샌드위치 신세인 ‘기타후진카스트’의 불만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인구센서스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 보자. 2011년(당시 인구 12억 명) 이후 거의 12년 동안 인구가 2억 명 증가한 인도 사회가 얼마나 변했을지 안 봐도 뻔하다. 남부 인도에서는 인구가 더 줄어들었을 테고, 가난한 북부 인도의 인구는 더 늘었을 것이다. ‘기타후진카스트’의 불만은 더욱더 높아졌을 것이다. 이렇게 인도의 인구 및 사회 구조가 엄청나게 바뀌었는데, (과거의 기득권에 기반하고 있는 의원들이) 바뀌어버린 정치/사회 지형을 순순히 인정하고 신속하게 선거구를 바꾸는 일이 가능할까?


독자분들이 예상하는 그대로이다. 여성할당법을 시행하고 싶어도 선거구가 획정되지 않아서 시행하지 못하는 사태가 불 보듯 뻔하게 예상된다. 연방하원의 경우 2029년에 실시 가능할지도 확실하지 않은 상황이니 그 이전에 실시될 각 주의 주의회 선거에서 이 법이 시행될 가능성은 요원하다. 이러한 이유로, 모디 총리가 여성할당제법이 ‘여성의 정치참여를 촉진할 것“이라며 환영의 뜻을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야당에서는 ’ 시행시기를 명확히 하지 않음으로써 수많은 인도 여성에게 희망고문을 하고 있다‘고 비난한 것이다.


실제로 제1야당인 의회당(Congress Party)의 유력 정치인인 소니아 간디도 “(법이 시행되려면) 도대체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나요? 2년? 4년? 아니면 8년?”이라고 일갈하기도 했다. 일부의 정치 평론가들이기는 하지만, 점점 높아져가는 여성유권자들의 투표율을 의식한 집권 BJP가 여성들에게 인기를 끌어보려고 실시한 포퓰리스트 정책에 불과하다는 인색한 평가를 내놓고 있다.


[# 3] 정치적인 기적이 발생한다 하더라도...


혹시라도 기적 같은 정치적 타협이 이루어져서 선거구가 후다닥 정해지고, 이 법이 매우 빠르게 시행된다 하더라도 과연 1/3에 달하는 여성 정치인이 여성의 뜻을 제대로 대변할 것인가? 우선 현재 인도 연방 하원의 여성 의원비율은 약 15% 수준이고, 일반 시민들의 민생과 좀 더 연관된 주의회는 이보다 조금 낮은 10% 수준이다. 그런데, 이러한 인도의 정치 구조가 여성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할 수 있는 구조일까? 여성과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어려운 인도 정치의 참담한 부패상은 나중에 별도의 글에서 이야기하자.


대신 오늘은 부패 정치인이 감옥에 갈 경우 그의 아내나 어머니가 대신 출마하여 남편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는 인도 정치의 독특한 관행만 짧게 언급하고 넘어가야 할거 같다. 이러한 관행이 특히 주의회와 판차야트 수준에서 얼마나 오래되었고 광범위하게 이루어지는지 인도인들은 그리 놀라지도 않는다. 현실이 이러한데, 여성 정치인들이 과연 여성과 억압받는 계층을 대변할 거라고 예상할 수 있을까? 아니면 자신의 남편이 그동안 대변해 왔던 출신 가문, 카스트, 출신 지역 그리고 이와 관련된 추잡한 이권을 대변할까?


여성할당제법이 통과되었다는 신문기사 밑에 달려있던 인도 현지인들의 댓글 중 몇 개를 훑어보니 역시나 냉소적인 댓글이 자주 눈에 보였다. ‘여성보다는 자신이 속한 정당을 움직이는 상위 카스트의 이해관계를 따라가게 될 것이다’, ‘교육받은 중산층 여성들의 이해관계만 대변하고 ’기타후진카스트(OBC)‘ 등의 서민 여성은 외면받을 것이다.’, ‘남편이 감옥에 간 여성정치인이 우대를 받는 거냐?’ 등등... ㅎㅎㅎ


1950년대 인도의 하원에서 약 5%에 불과하던 여성의원 비율이 70년이 지난 지금은 15% 수준까지 올라왔다. 그래봤자 전 세계 190개 나라 중 여성의원 비율은 141위 수준이다. 참고로 우리나라도 121위로 그리 높지는 않다. 이번에 신설된 여성할당제법은 시행 이후 15년 후에 폐지되는 일몰조항도 담고 있다. 과연 15년이 지나면 인도의 정치 현실은 얼마나 바뀌어 있을까? 그리고 인도에서의 여성정치인들은 얼마나 여성의 목소리를 진실되게 정치 프로세스에 담아낼 수 있을까? 그러려면 15년 동안 많은 변화가 잰걸음으로 일어나야 할 것이다.


[# 4] 여성 정치인 숫자보다 더 근본적이고 중요한 문제들...


연방 하원과 각 주의회에 여성 의원이 33%가 할당되게 되었다는 뉴스는 인도는 물론 해외에서도 많은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이런 뉴스를 접하면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솔직한 질문은 ‘인도에서 여성의 지위와 관련해서 가장 시급한 문제가 여성의 정치 참여를 확대하는 문제인가?’였다. 인도에서의 여성의 지위를 높이는데 여성정치인의 숫자를 늘리는 것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더욱더 중요하고 근본적인 것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예를 들어, 아직도 시골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여아 낙태,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 전근대적이다 못해 비인간적이기까지 한 결혼지참금 문제 등 태산처럼 산적한 문제들 말이다.


여기까지 읽고 나서 혹시라도 인도를 사랑하시는 분들 중에 “어이. 글 쓰신 양반.. 거 좀 너무한 거 아니요? 당신 지금 인도에 대해서 너무 편협한 시각을 가진 거 같아”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다. 그런 분들을 위해서 통계 수치 딱 하나만 더 보여드리고 글을 마무리하겠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우리말이 있지 않나.. 이 통계 수치 하나면 인도에서의 여성의 지위에 대한 토론은 종결이다. 게임 셋!!, GG..이다.


세계은행의 최근 통계에 따르면 인도의 여성경제활동참여율은 2022년 기준 24%에 미치지 못하는데 이는 190개가 넘는 전 세계 국가 중 꼴찌에서 11번째 순위이다. 인도보다 순위가 낮은 10개의 나라들은 약속이나 한 듯 모두 이슬람 국가이며 오랜 내전에 시달린 국가(예멘, 이라크, 시리아, 소말리아)들 뿐이다. 즉, 인도 여성의 경제활동참여율은 비이슬람권 국가 중에서 세계 꼴찌이다...  최하위권 언저리도 아니고 그냥 인도 혼자서 단독으로 꼴찌이다.


사회학에 대한 지식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들은 금방 안다. 여성의 경제활동참여율이 여성의 사회지위와 얼마나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지 말이다. 쉽게 말해서.... 뭐라도 수중에 가진 돈이 있어야 목소리를 내지 않겠나? 가진 돈도 없고 변변한 직업도 없는 사람이 아무리 목청을 높인 들 누가 들어주기나 하겠나? 이런 현실은 세계 어디서나 똑같다.


여성 정치인 숫자가 늘어나는 것도 좋고, 연방 하원과 주의회에 여성의원이 늘어나는 것도 다 좋다. 나쁠게 뭐가 있겠나? 하지만, 인도에서 여성의 지위를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그러한 것들보다 더 근본적이고 중요한 것들이 있는데, 그에 대해서는 제대로 토론하지 않고 자신이 속한 정당의 이익을 위해서 목에 핏대를 올려가며 소리 지르는 인도 여당과 야당 소속 여성 정치인들이 요 며칠 TV 화면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뭣이 중헌디, 도대체 뭣이 중헌디!!’라는 생각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다. 이들 여성정치인을 보면서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여아낙태와 여아 살해, 여성의 보건과 안전을 보장할 제도와 인프라의 부재, 낮은 경제활동참여율 등의 더 근본적인 문제를 떠올린 사람이 나 혼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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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일부 수정을 거쳐 딴지일보에도 게재되었습니다. https://www.ddanzi.com/ddanziNews/785702240#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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