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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비와 호지의 아빠 May 15. 2024

일본이 인도를 서서히 잠식해 가는 방법..(2)

잘 알려지지 않은 해외원조의 세계.. 일본과 인도의 독특한 관계

"일본이 인도를 서서히 잠식해 가는 방법..(1)"https://brunch.co.kr/@hobiehojiedaddy/226에서 이어집니다.




[# 4] 문제적 남자, 아니 문제적 국가 일본...


1944년 4월부터 6월까지 인도 북동부 (현재의 마니푸르주의 주도에 해당하는) 임팔(Imphal) 근방에서는 2차 대전 중 벌어졌던 전투 중 가장 소모적인 전투 중 하나인 임팔 전투가 벌어졌다. 임팔은 인도, 중국, 미얀마(당시 버마) 등의 나라가 접경하는 지역으로서, 인도로 침략하기 위한 전략적 교두보를 확보하려는 일본의 입장에서는 반드시 확보해야하는 땅이었다. 반면, 이렇게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에 이미 대규모 병참기지를 건설해 놓고 있던 영국 주도의 연합군 입장에서는 절대로 빼앗길 수 없는 곳이었다. 3개월간 진행된 전투에서 연합군도 약 1만 2천명이 죽거나 다치는 피해를 입었지만, 일본군은 무려 5만 5천명 가량의 사상자를 기록했다. 결국 일본은 이 전투에서 패하면서 서진(西進)을 멈춰야 했고, 인도 아대륙(亞大陸)을 점령하려 했던 꿈은 접어야만 했다.

2차대전 당시 임팔 전투가 벌어졌던 인도와 미얀마 국경지역

그로부터 정확히 14년이 지난 1958년, 일본 정부는 인도에게 최초의 공적개발원조대출(ODA Loan)을 제공하였다. 규모는 180억엔이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숨겨진 이야기가 있다. 첫째, 인도는 일본의 공적개발원조대출(ODA Loan)을 받은 최초의 수원국이다. 다시 말하자면 일본이 대규모의 원조 대출 제도를 만든 후 콕 집어서 최초로 대출한 나라가 다름 아닌 인도라는 의미이다. 둘째로, 이 원조자금대출은 당시 자왈할랄 네루 총리의 요청에 따라 이루어졌으며 인도의 제2차 경제개발계획의 실행에 쓰여졌다.

1957년 인도를 방문한 기시 노부스케 총리를 자왈할랄 네루 총리가 맞이하고 있다

얼핏 들으면 그냥 흘려들을 만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곰곰이 씹어보면 시사하는 바가 한 두가지가 아니다. 우선,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지만 성장잠재력이 큰 인도라는 나라를 자기들의 첫 번째 유상원조대상국으로 선정한 일본의 안목에 감탄하게 된다. 또한, 특정 건설 프로젝트를 고르지 않고 인도라는 국가 전체의 경제성장계획이라는 큰 그림을 첫 번째 원조 대상 사업으로 선택함으로써 향후 인도가 나아갈 경제성장 방향을 미리 파악하고 이를 자신들의 인도 진출 전략에 활용할 만반의 준비를 한 것이다. 주도면밀한 인도 진입전략이라고 할만 하다. 


마지막으로, 한번 상상회로를 돌려보자. 전쟁에서 패전한지 불과 14년만에 자신들이 군사적으로 점령하려다가 실패한 나라의 경제개발 전략 수립을 위해 막대한 자금을 원조해주던 일본은 그 당시 어떠한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단순히 ‘가난하고 형편이 어려운 인도를 도와야겠다’는 이타적 생각 뿐이었을까? 아니면 ‘군사적으로는 점령하지 못했던 나라를 이제 경제적으로 점령할 수 있는 경제 지도(경제개발 계획)을 손에 얻었구나’라고 쾌재를 불렀을까? 나는 그 당시를 살아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 독자분들의 상상에 맡기겠다.


다만, 1958년 당시 일본 총리는 2차대전중에 상무성 대신을 맡았다가 종전 후 A급 전범 혐의를 받고 3년간 감옥에서 복역하기도 했었던 기시 노부스케 총리였다. 그리고, 기시 노부스케 총리는 이미 2차대전 중 일본의 꼭두각시 국가였던 만주국의 총무청 차장(현대식 직급으로는 내무부 차관이지만 허수아비 장관을 대신해서 사실상 만주국을 통치했다)을 맡아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하고 시행한 경험이 있었다. 인도를 방문한 그를 자와할랄 네루 당시 인도 총리는 극진하게 대접했다. 인도를 방문한 노부스케의 눈에 인도가 제2의 만주국으로 보이지는 않았을까? (^_^;)

A급전범 도조 히데키와 같이 앉아 있는 기시 노부스케




[# 5] 일본은 어떻게 인도를 서서히 잠식해 가는가?


일본은 현재 인도에게 최대 공여국이고인도도 일본에게 최대 원조 수원국이다. 10년이 넘게 매년 평균 30억 달러(최근 10년 평균 3,446억엔)에 달하는 막대한 규모의 원조를 주고받다보니 양국은 서로가 서로에게 제 1위의 국가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까지 제공된 인도에 대한 일본의 원조 누적액은 얼마나 될까? 1958년 이후 2022년까지의 원조 규모 단순 합계는 무려 7조엔(우리나라 돈으로 80조원이다!!!)에 달한다. 원조자금 대출이 아닌 소규모 기술협력과 교육제공과 같은 무상원조는 포함하지도 않은 금액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유상원조기관인 대외경제협력기금(EDCF)은 1987년 설립 이후 2023년까지의 총 원조액(인도에 대한 지원액이 아니라 전 세계에 대한 지원액)이 14조원이 안 된다. 우리나라의 전체 유상원조 금액이 일본이 인도라는 한 나라에 지원한 금액의 20%도 되지 않는다.


인도에 대한 일본의 원조가 어떤 특징을 가졌는지 하나씩 자세히 뜯어보자. 우선교통분야를 포함한 인프라에 대한 집중을 발견할 수 있다. FY21/22의 경우 전체 지원의 무려 68%가 교통 분야에 지원되었으며, 나머지 분야도 대부분 사회간접자본 시설 및 보건 분야 등에 집중되었다. 한마디로 인도 사람들이 땅 파서 도로 깔고, 항만과 공항을 짓고, 지하철 건설하는데 엄청난 돈을 지원해줬다는 이야기이다. 인도 교통 분야에 대한 일본의 지원 중 랜드마크 사업을 꼽으라면 단연코 델리 지하철 건설공사에 대한 지원이라고 하겠다. 1997년 2월 델리 MRT (Delhi Mass Rapid Transport System) 사업 제 1단계 관련 대출약정서(Loan Agreement)가 체결되면서 양국간 지하철 관련 협력이 본격 시작된 이래 2022년 말까지 무려 8,251억엔이 지원되면서 총 연장 415km의 지하철망을 구성하는데 일본이 막대한 기여를 했다.


이외에도 모디 총리의 정치적 고향인 구자라트의 최대 도시 아메다바드의 지하철, 인도 제조업의 메카인 첸나이(Chennai) 지하철, 구자라트주의 아메다바드와 인도 금융업의 중심지인 뭄바이를 연결하는 고속철, 델리와 뭄바이를 연결하는 화물전용철도(Western Dedicated Freight Corridor) 등등 일본이 지원하여 만들어진 인도의 교통 인프라는 수없이 많다. 

1983년 이후 일본 원조로 지어진 인도 주요 도시의 지하철이 이렇게나 많다

결론적으로, 총 1조 7천억엔 규모의 공적개발원조대출(ODA Loan)이 70여개의 교통관련 프로젝트에 지원되었고, 2개의 무상원조(Grant), 24건의 기술지원(Technical Cooperation)이 지원되면서 인도내 총 6개 대도시(델리, 첸나이, 아메다바드, 뭄바이, 콜카타, 벵갈루루)에 약 550km의 지하철망을 건설했으며, 주요 고속철과 화물전용 철도 건설 및 다수의 주(state)에 4차선 고속도로를 건설하는 등 교통분야에서 일본의 존재감은 가히 ‘넘사벽급’이라 하겠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중국과 전략적 경쟁을 한다는 입장에서는 한배에 타고 있는 인도와 일본의 이해관계가 잘 맞아떨어지는 사업에도 일본의 지원이 상당 규모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인도 북동부에 위치한 트리푸라(Tripura)주의 208번 고속도로 건설이라던지 메갈라야(Meghalaya)州와 아쌈(Assam)州를 연결하는 Dhubri-Phulbari 교량 건설에도 일본 원조 자금이 투입되었다. 이들 지역은 인도에서도 소득 수준이 비교적 낮고 중국 및 방글라데시와 접경한 전략적 요충지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취임 직후인 2014년 동방정책(Act East Policy)을 발표하면서 이 지역 개발에 적극 나섰다. 


하지만, 인도에서 항상 부족한 게 무엇이겠는가? 바로 재원 아니겠는가? 재원 부족으로 난감해진 인도 정부를 돕기 위해 일본이 원조자금을 잔뜩 싸들고 나타났다. 중국 및 방글라데시와의 접경지역에 정책 관심을 집중하겠다는 인도 정부의 발표에 중국이라는 공통의 적을 견제하고자 하는 일본이 기꺼이 동참한 것이다. 인도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아도 오랫동안 인도의 경제 성장의 동반자 역할을 해왔던 일본이 다시 한번 나서주니 얼마나 고마웠을지 쉽게 상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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