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살' 인프라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인도인들의 일상
[# 1] 몬순과 함께 내려앉은 인프라
2024년 6월 28일, 뉴델리에 사는 45세의 라메쉬 쿠마르(Ramesh Kumar)에게 그다지 특별한 것이 없는 날이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무더위가 때마침 찾아온 장맛비로 인해 한결 누그러진 것은 반가운 일이었지만, 이틀 전부터 북인도 지역에 쏟아진 엄청난 양의 폭우 때문에 그렇지 않아도 배수가 제대로 되지 않는 뉴델리 도로 곳곳이 침수된 것은 택시 운전기사인 그에게는 짜증스러운 일이었다.
코앞으로 다가온 첫째 딸 결혼식 비용 때문에 마음이 심란했던 그는 인디라 간디 국제공항에 손님을 내려주고는 잠시 숨을 돌렸다. 그 순간 그의 자동차 위로 공항 천장에 달려있던 철제 구조물이 떨어졌다. 2남 2녀의 아버지는 미처 피할 틈도 없이 철제구조물에 깔렸고,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숨지고 말았다.
공항 운영사가 3천만 달러를 들여 공항을 리노베이션한 것이 불과 2년 전이었다. 카운터에 직접 갈 필요 없이 보딩패스를 발급받을 수 있는 멋들어진 e-boarding 키오스크도 2021년부터 요란스러운 홍보와 함께 설치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서남아 최고의 공항’이라고 자부하던 이곳에서도 철제빔과 캐노피가 떨어져 내리는 후진적인 안전사고를 막지는 못했다.
이보다 하루 앞선 6월 27일에는 인도 중부의 마디아 프라데시주에 있는 자발푸르(Jabalpur)라는 도시에서 공항의 지붕 구조물이 무너져 내렸다. 장맛비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천장 캐노피가 주차되어 있던 차량을 덮쳤지만, 다행히 사망자는 없었다. 약 5,600만 달러를 들여 공항 전체를 리노베이션하고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직접 완공식에 참석한 것이 불과 3개월 전이었지만, 장맛비가 며칠 내리자 힘없이 천장이 무너져 내린 것이다.
7월 1일에는 우타르 프라데시주의 마투라(Mathura)라는 도시에서 25만 톤 용량의 물탱크가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터지면서 주민 2명이 사망했다. 인근 지역을 촬영한 CCTV에는 조용한 주택가가 문자 그대로 ‘물 폭탄’을 맞아 쑥대밭이 되는 장면이 고스란히 담겼다.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직접 완공식에 참석한 것을 하루 종일 인도 전역에 생방송 하면서 그야말로 삐까뻔쩍하게 문을 열었던 아요디아의 힌두교 사원은 완공 5개월 만에 곳곳에서 물이 줄줄 새고 있다. 인도 현지에서도 이런 행태가 어찌나 어이가 없었는지 ‘라마신이 직접 나서지 않고서는 아요디아의 사원을 수선하지 못할 수준’이라는 탄식이 나오고 있다. 한국은 물론, 많은 해외 주재원들이 모여 사는 뉴델리 인근의 ‘구루가온’ 신도시는 불과 10여 분 동안 내린 장맛비에 웬만한 도로가 모두 물에 잠겼다. 신도시가 조성된 이후 10여 년이 넘게 계속되는 일상이라 이제는 더 이상 뉴스에 나오지도 않는다.
하지만, 지금까지 거론한 사건들은 인도 북동부에 위치한 비하르(Bihar)주에서 벌어진 일들과 비교하면 ‘귀여운 애교’ 수준이다. 비하르주는 인도에서도 가장 가난하고 부정부패가 심한 지역으로 꼽힌다. 6월 말부터 몬순이 시작된 이곳에서 2주 동안 무려 10개의 다리가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쉽게 계산해서 우리나라(10만 km2) 보다 약간 작은 면적(약 9만 4천 km2)을 가진 비하르주에서 하루에 교량이 하나씩 무너졌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편하겠다.
우리나라에서는 얼마 전에 ‘순살 아파트’가 엄청난 사회적 문제가 되었다. 하지만, 인도에서는 집을 나서는 순간 각종 ‘순살 인프라’가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을 느끼며 살아야 한다. 왜 이리도 인도의 인프라는 엉망진창인 것일까? 이것은 누구의 책임일까? 그 해답을 알아보려면 인프라 건설 계약이 어떻게 체결되고 진행되는지를 간단하게나마 살펴봐야 한다.
[# 2] 무조건 싼 값만 찾는 인프라 계약
인도 정부의 인프라 계약은 크게 세 가지 방법을 통해 낙찰자가 결정된다.
첫 번째 방법은 가장 낮은 비용을 써내는 회사가 계약을 따내는 ‘저가 낙찰 방식’이다. 영어로는 Lowest Bidder system 또는 Cost-based selection(CBS)이라고 불린다. 두 번째는 오로지 기술평가만으로 낙찰기업을 선정하는 방식이다. 회사의 기존 공사 실적, 기술력 등을 평가하게 되는데 Quality-based selection(QBS)이라고 불린다. 마지막으로는 기업체가 써낸 가격과 각종 정성적 평가를 종합하여 평가하는 방식인데, 우리말로는 ‘적격 낙찰 방식’, 영어로는 Quality cum Cost-Based Selection (QCBS)이라고 불린다. 이러한 선정 방식이 어떠한 취약점을 갖고 있을지는 쉽게 예측할 수 있다.
저가 낙찰 방식의 경우, 기술력이 부족한 기업이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을 써내는, 이른바 ‘덤핑(dumping)’ 수주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기술력만 평가해서 낙찰 기업을 선정하자니 지나치게 높은 가격을 써낸 기업이 계약을 수주할 위험성이 존재한다. 마지막으로 가격과 기술력을 동시에 평가하는 방식이 가장 합리적이기는 하겠으나, 기술 평가와 가격 평가를 어떤 비중으로 섞을지, 기술평가 항목에 어떠한 내용을 포함할지 등 이 또한 특정 기업에 유리하게 결정될 위험이 있다.
인도를 포함한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크고 복잡한 계약의 경우, 가격과 기술력을 같이 평가하는 적격 낙찰 방식을 사용하고, 계약 내용이 단순하거나 기술적 차이가 크지 않은 경우 저가 낙찰 방식을 사용한다. 그렇다면, 인도에서 저가 낙찰 방식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보자.
2022년 10월 말, 인도 구자라트의 모르비(Morbi)에서 다리가 무너지면서 140명이 목숨을 잃은 끔찍한 사고가 있었다. 1880년대에 만들어진 보행자 전용 교량이 약 6개월에 걸친 보수공사 끝에 시민들에게 공개된 지 불과 일주일 만에 붕괴gks 것이다. 1회 수용 인원인 125명을 훨씬 초과한 500여 명이 교량에 올라선 것이 가장 큰 사고 원인이었다. 하지만, 사고 이후 밝혀진 여러 가지 정황들은 인도인들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우선 교량 보수 공사를 맡았던 기업은 교량이나 도로와는 전혀 상관없는 벽걸이 시계를 생산하는 기업이었다. 뻐꾸기시계와 전등을 만들던 회사가 2008년에 무려 15년 만기 교량 보수계약 공사를 따낼 수 있었던 것은 ‘저가 입찰방식’으로 계약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계약 당시, 이 기업이 교량 건설은 고사하고 교량 보수와 관련한 경험이나 실적이 있었는지 여부는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경험과 기술이 없는 기업이 자그마치 15년이나 되는 장기 계약을 따내다 보니 비용 절감에만 혈안이 될 수밖에 없었다. 새롭게 교량의 바닥재를 교체하면서 교량의 케이블과 볼트가 늘어나는 하중을 견딜 수 있는지조차 검토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량 완공식에 참석한 업체의 고위 관계자는 ‘앞으로 10년 정도는 보수 공사가 필요 없을 정도로 잘 고쳤으니 걱정 말고 즐기세요(people can enjoy care-free adventure)’라며 자신만만하게 발언했다.
문제는 이러한 저가 낙찰 방식이 인도의 각종 인프라 계약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된다는 것이다. 규모가 큰 대형 프로젝트가 아닌 주정부가 발주하는 소규모 도로나 교량 또는 건물 공사에서는 대부분 이 방식으로 낙찰 기업을 결정한다. 그러다 보니 인프라 건설이나 보수 경험이 없는 기업이 일단 수주하고 보자는 심산으로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을 써내서 낙찰받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인도 정부도 이러한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2021년 10월, 기술력과 가격을 동시에 고려하는 적격 낙찰 방식을 제한적으로나마 도입하겠다고 밝혔지만,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저가 낙찰 방식이 압도적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 3} 공사 전 단계에 걸친, 뿌리 깊은 부정부패
계약을 따낸 이후, 설계와 시공 단계에서도 문제점이 산재해 있다. 2022년 6월에 개통한 프라가티 메단(Pragati Maidan) 터널을 예로 들어보자.
뉴델리의 중심부를 순환하는 순환도로와 44번 고속도로를 연결하는 약 1.3km 길이의 터널로, 약 1억 달러에 달하는 엄청난 공사비가 소요되었다. 완공식에는 모디 총리가 직접 참석해 ‘이렇게 짧은 시간에 터널을 완공한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며 축사까지 했지만, 완공된 지 채 2년도 지나지 않아 비만 내렸다 하면 터널이 아닌 하수도로 변하고 있다.
터널 공사의 설계와 시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질조사, 그리고 이를 기초로 한 방수 공사와 배수 시스템이다. 하지만, 도대체 얼마나 엉성하게 공사를 한 것인지 누수와 균열이 수십 군데 발견되었고, 하수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거나 아예 없어서 비만 내리면 몇 주가 넘게 터널 전체가 물속에 잠겨 있기도 했다. 한마디로 총체적인 부실시공이었다.
2023년 6월에는 비하르주의 바갈푸르(Bhagalpur)라는 도시에서 건설 중인 대형 현수교의 주탑이 3개나 무너져 내렸다. 이 교량의 다른 주탑 3개가 무너져 내린 지 겨우 14개월이 지난 상황이었다. 원인은 부실시공과 질 낮은 건축자재의 무분별한 사용 때문이었다. 공사비만 무려 2억 달러가량 들어간 이 교량은 2020년에 완공 예정이었으나 한없이 완공이 늦어지고 있다.
한 번 사기를 당하면 사기꾼이 나쁜 놈이지만, 똑같은 사기를 두 번 당하면 피해자가 바보(이거나 사기꾼과 공범)인 법이다. 공사를 시행하는 비하르 주정부에 따가운 의심의 눈초리가 쏠리고 있다.
그럼 공사가 마무리된 후, 감리와 정기적인 시설 점검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을까?
2019년 3월, 뭄바이 기차역으로 연결되는 보행자 전용 교량의 일부가 붕괴하면서 6명이 사망하고 30여 명이 중경상을 입는 사고가 있었다. 사고 6개월 전에 있었던 시설점검에서 ‘상태 양호’ 판정을 받은 교량이었다. 추후 조사에서 제대로 된 시설 점검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 밝혀졌고 관련자들이 체포되었다. 이처럼 인명 피해가 발생하고 나서 밝혀진 사례를 제외하고도 감리와 시설 점검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숨겨진 사례는 무수히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인명 사고가 터지면, 인도 정부의 행동 양식은 정해져 있다. 하위 직급 공무원 한두 명을 체포하고,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려서 엄정한 조사를 하겠다고 발표한다. 하지만, 책임 있는 고위 직급에 대한 책임 추궁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진상조사 역시 이루어지지 않거나 몇 년이 지나고 나서 아무도 읽지 않을 보고서를 발표하는 것으로 끝이다. 최초 설계부터 완공 후 감리에 이르기까지, 공사의 전 단계에서 뿌리 깊게 부정부패가 스며들어 있다 보니 정부와 공무원들도 제대로 손을 쓰기가 어렵다.
유명 정치평론가인 프라샨트 키쇼르(Prashant Kishor)는 부정부패가 만연한 비하르에서의 교량 붕괴를 놓고 “100루피짜리 공사에서 뇌물로 40루피가 빠져나가면 어떻게 제대로 된 다리가 건설되겠냐?”는 냉소적인 논평을 내놓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제대로 된 공사와 유지보수를 기대한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에 가깝다. 거의 코미디에 가까울 정도로 복잡한 관리·감독의 문제도 심각하다. 2024년 몬순 기간 기록적인 폭우를 쏟아부을 것으로 예상되자 델리고등법원은 델리 주정부에 ‘약 3,700km에 달하는 델리 지역 내 22개의 하수도망을 선제적으로 정비하라’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델리 주정부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음… 22개 중에서 3개만 저희 정부 소관입니다. 나머지 19개는 8개 다른 기관이 관할해요.”
델리 고등법원은 하수도 관리·감독을 하나의 부처로 통합하는 방안을 권고하기에 이르렀다. 델리 주정부가 고등법원의 권고안을 받아들일지 여부는 알 길이 없다.
토목 및 건설업계의 뿌리 깊은 부정부패를 단번에 척결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또한, 내가 여기에다 이러쿵저러쿵 글을 써봤자 인도 정부가 이 글을 읽고 자신들의 업무 수행 방식을 바꿀 리도 만무하다. 하지만, 부정부패와 싸우기 위한 몇 가지 방법을 감히 조언하고자 한다.
첫 번째. 최저가 낙찰 방식에 대한 지나친 의존에서 하루빨리 벗어나 정성적 요소와 가격을 동시에 고려하는 ‘적격 낙찰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두 번째. 집 앞의 하수구가 넘치고, 도로가 움푹 패이고, 고가도로가 무너져도 도대체 어느 기관이 해당 인프라를 관리하는지 알아내는 것이 인도에서는 너무나도 어렵다. 여러 개의 위원회와 자문위원회는 관리·감독을 돕기보다는 담당 공무원들의 책임을 분산시켜서 결국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 환경만을 만들어낸다. 그러다 보니 ‘책임 행정’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이를 고치기 위해서는 델리 고등법원이 권고한 대로 복잡한 관리·감독 체계를 단순화하고 일원화해야 한다.
세 번째. 능력 있고 청렴한 엔지니어들이 돈을 벌기 위해 중동이나 선진국으로 떠나는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일류 기술자는 모두 중동으로 돈 벌러 떠나고 이류, 삼류 기술자들만 인도에 남아 일을 하다 보니, 엔지니어링 업체들은 제대로 공사가 되지 않는다고 불평하곤 한다. 실력 있는 기술자들이 인도를 떠나지 않을 다양한 인센티브도 필요하다.
인도 정부의 공식 데이터에 따르면, 2018년부터 2022년 사이 인도에서 총 약 8,756명이 건물 붕괴 사고로 사망했다. 이 중에서 주택 붕괴로 사망한 사람이 5,988명으로 절대다수를 차지한다. 앞서 ‘인도에서는 집을 나서면, ’순살 인프라‘를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인도에서는 집 안에서나 집 밖에서나 모두 조심해야 한다’고 수정해야 할 거 같다. 이것이 기후변화로 급증한 폭우 속에서 힘겹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인도의 슬픈 자화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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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일부 편집을 거쳐 딴지일보에도 게재되었습니다.
https://www.ddanzi.com/ddanziNews/815621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