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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비와 호지의 아빠 Aug 01. 2024

이 양반도 죽었고... 저 양반도 죽었어...

핸드폰에 저장된 연락처를 정리하는 가장 명백한 이유...

휴일 저녁... 휴대폰이 울린다.


시골에 살고 계신 아버지 번호가 뜬다. 연로하신 아버지에게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 아닐지 걱정스러워 얼른 전화를 받아보니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의 목소리이다. 4년 좀 넘게 써오던 어머니 핸드폰이 '펄펄 끓어오르면서 먹통이 되어버려' 아버지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단다.


시골에서 단 둘이 살고 계시는 아버지와 어머니...


두 분이 워낙에 연세가 많다 보니 두 분에게서 전화가 걸려올 때마다 긴장하게 된다. 혹시라도 갑자기 낙상이라도 하신 건 아닌지, 편찮은 곳이라도 있는 건 아닌지, 물건이라도 잃어버리신 건 아닌지... 두 분이 다치거나 편찮으신 게 아니고 기계 덩어리가 속을 썩이고 있다니 조금은 안심이 된다.


"내일 한번 통신사 대리점 가보세요. 월요일이니까 대리점 문 열거예요"




월요일 오후... 휴대폰이 울린다.


익숙한 어머니 핸드폰 번호가 뜬다.  


"통신사 대리점에 다녀오셨어요? 핸드폰은 복구하셨어요?"

"에휴... 복구 못 했다. 결국 핸드폰 새로 샀다."


'펄펄 끓어올랐던' 핸드폰은 결국 요단강을 건너간 모양이다. 연락처는 물론이고 보관해 놓은 사진을 모두 날아가버리는 바람에 어머니는 꽤 섭섭하신 목소리였다. 혹시 몰라 2020년까지 썼던 옛날 핸드폰을 대리점에 들고 갔는데, 그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던 연락처와 사진을 신규 개통한 핸드폰으로 옮기는 데 성공한 게 그나마 위안이었다.


"너무 섭섭해 마세요. 이번 주말에 시골에 잠깐 내려갈게요. 그때 봬요."




토요일 오전... 아내, 그리고 필자의 둘째 딸 호지와 함께 시골집에 도착했다. 첫째 딸 호비는 아르바이트가 있어 동행하지 못했다.


점심을 먹고 자리에서 일어서려는데 어머니가 새로 산 핸드폰을 들고 오신다.


"핸드폰에서 연락처 삭제하는 방법 좀 알려다오. 4년 전에 쓰던 핸드폰에서 연락처를 옮겨 놓다 보니 죽은 사람도 많고 반신불수 되서 전화 못 받는 사람도 많어."


연락처에 등록된 사람들 지우는 방법을 찬찬히 알려드렸더니 'ㄱ'자로 시작하는 명단부터 삭제를 시작하신다.


"이 양반은 죽었고..."

"이 양반도 천당 갔고..."

"이 양반은... 풍 맞아서 말도 못 하니.... 지워버리고..."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니 짠하고 서글프다. 'ㄱ'자와 'ㄴ'자만 정리하는데 한참 걸린다. 수십 명의 연락처가 순식간에 지워졌다. 4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그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병들어 이젠 더 이상 전화통화를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코로나 때문에 갑작스레 세상 떠난 어르신들이 적지 않을 거다. 연락처에 있던 어르신들이 하나둘씩 없어지면서 어머니와 아버지도 조금씩 더 외로워지셨을 것이다.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아이고, 허리야.. 'ㄷ' 부터는 좀 있다가 정리해야겠다."

"또 뭐 필요한 거 있으면 말씀하세요."

"호비랑 호지(필자의 두 딸) 사진 좀 보내다구. 손주 얼굴 보고 싶을 때마다 핸드폰에 저장된 사진 꺼내보는 게 낙이었는데 사진이 다 없어졌어..."

"네... 제 핸드폰에 있는 사진 찾아서 카톡방에 올려드릴게요..."




월요일 오후...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사무실로 돌아와 커피를 마시다가 사진을 보내달라던 어머니 말씀이 문득 떠올랐다. 내 핸드폰을 뒤져서 손주 사진을 몇 장 카톡방에 올려드렸다.


"한꺼번에 찾기가 힘들어서 몇 장 먼저 보내드립니다... 생각날 때마다 몇 장씩 보내드릴 테니 카톡방 확인 해보세요."


점심시간마다 내 핸드폰 속에 저장된 호비와 호지의 사진을 몇 장 골라 어머니께 보내드리는 게 새로운 일과가 되었다. 덕분에 나도 즐거운 추억에 빠질 수 있고, 어머니도 잃어버린 사진과 추억을 다시 찾게 되어 꽤나 기분이 좋으신 모양이다.


"어머니. 오늘은 호비의 고등학교 졸업 사진 몇 장 보내드립니다... 첫째 손주 많이 이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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