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지르자!" 휴가를 나흘 앞두고 남편이 내 앞으로 휴대폰을 들이밀었다. 냉장뿐만 아니라 냉동까지 가능한 35만 원짜리 캠핑용 냉장고였다. "너무 비싼 거 아냐?" 미간에 주름을 잡으며 말해보지만, 더운 날씨에 음식을 상하지 않게 보관하기 위해서는 없으면 안 될 것 같았다. 결국, 지름신이 우리 집에 강림했다.
남편과 나, 38개월 아이 그리고 강아지까지 3인 1견인 우리 가족은 이번 여름휴가를 캠핑으로 정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차와 텐트를 연결하여 지내는 반(半)차박이었다. 여행을 너무 늦게 계획해서 지낼 곳이 있을지 걱정했지만, 우연히 알게 된 오토캠핑장은 웬일인지 자리가 넉넉하게 남아있었다. 자리 대여비도 1박에 4만 원이었다. 성수기인데도 그 가격이라니! 힘들게 친 텐트가 아깝다는 핑계로 2박을 예약했다. 그리고 당일, 우리는 새로 산 냉장고와 음식, 물놀이 용품과 옷가지를 차 트렁크 한가득 싣고 강원도 횡성의 캠핑장으로 떠났다.
캠핑장은 깨끗하고, 넓었다. 바로 아래 계곡이 있어서 물놀이하기도 좋았다. 먼저 텐트를 치기로 했다. 이번이 인생 2회차 캠핑이었던 나와 남편은 아직 인사를 주고받은 지 얼마 안 된 텐트에게 낯을 가렸다. 손놀림이 서툴러 이리저리 고쳐가며 설치할 수밖에 없었다. 여름은 여름인 건가. 커다란 나무 그늘 아래에 텐트를 치는데도 뜨거웠다. 한 시간이 조금 지났을까, 드디어 끝이 보였다. 텐트와 차를 연결하고는 남편과 손바닥을 '짝'하고 마주쳤다.
앉아서 쉬고 싶었지만, 허리춤에 아기 상어 튜브를 끼고 기다리고 있는 아이를 위해 물놀이 용품을 챙겨 계곡으로 향했다. 계곡이 처음인 아이와 강아지는 그저 즐거운 듯 보였다. "우와" 아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계곡 여기저기를 살폈다. 겁도 없이 처음 보는 다슬기를 손으로 건져 올리며 "이게 뭐야"를 외쳤다. 허리까지 올라오는 물의 높이도, 튜브도 처음이면서 어찌나 신나 하던지. 앞으로 나아가겠다고 첨벙첨벙 발차기하는 모습까지 보니 기가 막혔다. 강아지는 새로운 장소의 흙, 풀, 나무 냄새를 맡으며 탐색하느라 정신없었다. '킁킁' 벌렁거리는 콧구멍과 야무지게 흔들리는 꼬리가 그의 마음을 대변했다.
아이는 한참을 놀았는데도 쉴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남편은 선수 교체 타이밍을 보며 나에게 소리 없는 호각을 불어댔다. 강아지가 물을 싫어해서 나는 물 밖으로 나와있던 참이었다. 세모나진 남편의 눈을 부러 피하며, 휴대폰으로 '여름 캠핑'을 검색했다. 다른 사람들은 캠핑에서 뭐 하는지 궁금했다. 물놀이가 끝나고 아이와 놀 거리도 찾아야 했다. 검색 결과는 의외였다. '즐거웠다' '재미있었다'가 아니라 '더운데 괜찮을까요?' '역시 안 가는 게 답'. 가고 싶지만 후일로 미루겠다는 내용이 많았다.
"우쒸, 벌써 왔는데 어쩌라고!"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우리는 초보 캠핑러답게 그냥 무작정, 호기롭게 떠났다. 더워서 힘들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지만 버틸만했다. 아니, 오히려 만족스러웠다. 날씨가 도왔다. 태풍 '카눈'이 올라오고 있어 바람이 많이 불었고 날도 흐렸다. 피난처도 있었다. 너무 더울 땐 전기차 안으로 대피했다. 차 안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에어컨 바람, 냉동실에서 꺼내 먹는 아이스크림과 얼음을 넣은 아메리카노는 불볕더위도 잊게 해 주었다.
저녁은 또 얼마나 맛있던지. 고급 이자카야 저리 가라 할 정도였다. 메뉴는 낙곱새와 오코노미야키. "오랜만에 떠나는 여행인데 설거지로 시간 낭비할 수 없지" 남편의 배려에 냄비에 넣고 조리하면 완성되는 밀키트로 준비했다. 아이를 위한 오코노미야키는 예상치 못한 난관이 있었다. 당연히 밀키트 안에 있는 줄 알았던 식용유가 없었다. 따로 준비하라는 설명서만 덩그러니 보였다. '그냥 부쳐야 하나, 어쩌지' 고민하던 차에 비상식량 짜파게티가 보였다. 아이가 손가락으로 따봉을 보여주며 맛있게 먹어 준 오코노미야키는 짜파게티의 올리브유로 완성되었다. 낙곱새는 평소에 먹던 음식점에서 포장한 거였는데, 맛이 사뭇 새삼스러웠다. "이렇게 맛있었나?" 남편과 나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허기짐과 캠핑장의 분위기가 맛에 더해졌으리라.
캠핑장의 밤은 더욱 매력적이었다. 까만 하늘에 촘촘하게 박힌 별과 냉장고 안에 넣어두어 손이 시릴 정도로 차가운 캔맥주가 함께했던 밤. 그날의 밤은 낭만이었다. "캬아" 소리를 연발하며 남편과 나는 진정한 캠핑을 맛보았다. 후일로 미뤘다면 미처 알지 못했을 여름의 맛이었다. 우리가 있던 자리에 '카눈'이 곧 쳐들어올 것이라는 이야기에 하루 일찍 떠나야 했다. 아쉬운 마음에 아직 집에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다음 캠핑 장소를 찾았다. 다음에는 텐트 치기 신기록을 세우자는 각오를 내보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