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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경 Nov 17. 2023

인형 아니고 시바견입니다만

 남편은 개를 좋아했다. 진돗개나 허스키와 같이 늑대처럼 생긴 대형견을 선호했고, 시댁에도 진돗개 '무무'가 있었다. 반대로 나는 개가 무서웠다. 특히 대형견은 보는 것조차 힘들었다. 먼 거리에서 점으로만 보여도 심장이 벌렁벌렁거려 다른 길로 돌아서 가야 했다. 그런 내게 남편은 아기 시바견의 사진을 들이밀었다. 생김새는 진돗개와 비슷하지만, 크기는 훨씬 작다며 나를 설득하려고 애썼다. 남편의 개를 키우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과 내 손이 갈 필요 없이, 알아서, 정말 잘 키우겠노라는 다짐에 못 이겨 수락했다.


 "우리 강아지 이름은 뭐로 할까? 털이 검은색이니까 비빅이 어때?"

 "비빅이? 아이스크림 비비빅? 그게 뭐야. 하루는?"


 시바견은 겉으로 보이는 털색에 따라 적시바, 흑시바(블랙탄), 백시바, 고메시바(또는 참깨시바)로 구분된다. 사람의 성별을 고를 수 없듯이 강아지의 털색도 정할 수 없다. 우리가 데려올 아이는 흑시바였다. 아직 만나본 적도 없고, 데려오기로 한 날짜도 한참 남았는데 이름을 정한다고 백분토론을 벌였다. 남편은 강아지가 태어난 계절, 봄이라는 뜻의 일본어 '하루'를 고집했다. 나는 시바견이 일본의 대표 견종이긴 하지만, 일본어로 된 이름은 싫다며 '비빅'이를 주장했다. 아이의 털색을 고려하여 흔하지 않은 이름으로 나름 고심한 결과였다. 개를 키우는 데 있어서 '갑'인 나의 의견을 따라 강아지는 비빅이가 되었다.


 "형이 괴롭혀서요. 일찍 데려갈 수 있나요?"


 우리는 생각했던 날짜보다 무려 10일이나 이른 생후 50일 무렵의 비빅이를 만나게 되었다. 2남 1녀 중 막내였던 비빅이를 그보다 조금 먼저 태어난 형이 괴롭히고 있으니 일찍 데리러 올 수 있냐는 연락이었다. 그래도 두 달은 어미 보호 아래에 있어야 새끼가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던데. 조금 더 있으면 좋으련만, 괴롭힌다니 어쩔 수 없었다. 바로 그 주 주말 데리러 가겠다고 전했다.


 사진으로만 봐온 비빅이의 귀여운 모습과 내가 과연 잘 키울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섞여 설렘 반, 걱정 반으로 차에 올랐다. 비빅이는 다른 흑시바에 비해 흰색 털이 상당히 많았다. 목덜미에는 연유를 뿌린듯한 무늬가 있었고, 가슴엔 불사조(흑시바의 가슴 털은 불사조 모양이 대회 기준으로 이쁜 것이라고 한다) 대신 솜사탕 같은 하얀 털이 뭉쳐있었다. 양쪽 앞발은 흰색 양말이 끼워져 있는 것 같았다. 꼬리의 흰 털은 또 어찌나 깜찍하던지. 남편과 나의 눈에는 그런 점이 비빅이만의 특별한 매력 포인트로 보였다.



 서울에서 대전까지 차로 세 시간 정도를 달린 끝에 드디어 비빅이를 만났다. 이제 막 걷기 시작한 비빅이는 제 몸도 가누지 못해 휘청이며 아장아장 움직였다. 세상에. 새끼 강아지는 지나가며 몇 번 봤지만, 이 아이는 강아지가 아니라 인형이었다. 손바닥만 한 작은 크기에 새까만 눈동자와 검은콩처럼 작은 코, 캉캉 짖는 소리까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팔고 있던, 태엽을 감으면 움직이는 강아지 인형 같았다. 반갑다며 프로펠러처럼 흔들리는 꼬리와 따뜻한 체온이 강아지라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었다. 홀로 걸을 수 있다는 게 신이 났는지 비빅이는 작은 솜방망이 같은 발을 휘적이며 쉬지 않고 돌아다녔다. 그렇게 우리는 가족이 되었다.


 처음 남편의 다짐처럼 내 손이 가지 않을 수는 없었다. 시바견은 대부분 실외 배변을 고집하기 때문에 하루에도 몇 번씩 산책을 나가야 했다. 출근하는 남편이 다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집순이였던 나는 안 하던 운동을 시작했다. 느리게 산책하는 비빅이 덕분에 한 달에도 몇 번 볼까 말까 하는 하늘을 매일 볼 수 있었다. 별거 아니라 생각했는데, 그게 또 나의 하루에 쉼표가 돼주었다. 임신했을 때 같이 있어준 것도 비빅이였다. 호르몬 변화로 낙엽만 떨어져도 눈물이 흐르던 그때. 그럴 때면 말없이 조용히 내 옆으로 다가와 곁에 있어 주었다.


 비빅이를 만난 지 4년째. 내년 3월이면 벌써 5살이다. 이제는 사람으로 치면 대학생인데다 16kg으로 한 덩치 하는 중형견이다. 울림통도 커져서 짖을 땐 늑대 저리 가라지만 아직도 내 눈엔 아장아장 걷던 아기로 보인다. 턱 밑을 긁어주는 것을 가장 좋아하는 비빅이. 비빅이가 기분이 좋아서 ‘헤헷’ 웃어주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다. 나도 하루 종일 기분이 좋다. 뛰어놀다 발톱이 부러져 ‘끼잉’ 울 땐 그렇게 마음이 아플 수 없다. 내가 다친 것도 아닌데 눈물이 절로 난다. 희로애락을 함께하고 있는 비빅이는 이 세상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가족이다. 우리 가족의 장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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