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팔자를 봤을 땐,이 나이때 즈음이면 인생이 좀 나아질거라 했는데
출국을 앞두로 건강검진을 했다.
살면서 크게 아픈 적도 없었고, 병원에서 일을 하다보니, 왠만한 통증이나 아픔 혹은 알 수 없는 증상들에 대해서는 객관적으로 생각하고 잘 넘겼다. 출국 전 건강검진은 굳이 받지 않으려고 했었다. 그런데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가기 전엔 무조건 해 봐야 한다며 성화였다. 혹시나 해서 가장 빨리 검사가 되는 병원으로 가장 저렴한 가격을 들여서 숙제를 해 치운 것 마냥 해 치웠다.
무탈할거라 생각했다.
위내시경에서 이상이 있어 위용종절제술을 했다고 했다. 내시경실과 검진센터 경력이 있었던 간호사로써, 나에게 행해진 용종절제술의 의미는 크게 와닿지 않았다. 영상을 보면서 단순 증식성 용종 정도로 생각을 했으나, 절제술(?)을 했다고 하며 위산분비억제제 주사까지 맞고 가라 그러고, 심지어 꽤나 비싼 약제들도 처방해 주었다. 조금 과하다고 생각했다. 보통은 조직검사로 용종을 제거하고, 집에가서 괜찮으면 식이를 시작했던 것 같은데 무슨 이런 난리를.. 그리고 집에가서 깨달았다. 환자들이 늘상 호소하던 '위에 뭐가 매달린 것 처럼 아파요'라는 증상이 뭔지 적나라하게 느끼게 되었으니까.
검진 당일은 내시경하고 새벽부터 잠도 못자서 거의 비몽사몽이라 귓등으로 듣고 넘겼던 부분이었다. 정신을 차리자 마자 부랴부랴 약처방을 받았고 한 삼일 정도 불편한 생활을 했다. 아픈게 한움큼 가시니 불현듯 같은 날 초음파 검사실에서의 상황이 생각이 났다.
검사를 하시던 분이 유방초음파에 대해 의사의 설명을 들어야 하겠다며 외과의사를 보러가라고 했었다. 그러나 대기시간은 30분 이상이고, 새벽부터 잠도 못잤던 나는 너무 힘든 나머지 그냥 집에가겠다고 했다. 스스로의 건강에 대해 이렇게 무지할 수 있는지, 지금 생각해도 스스로에게 화가나고 기가찰 노릇이다. 도대체 뭘 믿고 그렇게 스스로의 몸에 대해 자신했는지.
그래도 별일 아닐거라 생각을 했다.
평일엔 바빠서 병원 갈 시간이 없었고, 검사 결과가 나오려면 한참이고, 토요일이 되자마자 부리나케 검진센터에 영상 CD를 찾으러 갔었다. 그리고는 운전면허 학원을 다녀오느라, 친구를 만나느라 영상을 제대로 켜 보지도 못했다.
설마 무슨일이야 있겠어, 그냥 주기적으로 추적관찰 할 일이겠지 라고 생각하고 주일 아침 집에서 영상 CD를 실행했다.
모르면 괜찮을 텐데, 아필 알아서 문제였다. 유방초음파에서의 결절의 모양이 심상치 않았다.
그날, 검진을 받은 그날, 검사를 하시던 분이 주기적으로 봐야할 수준의 혹이었다면 굳이 의사를 보라 그랬었을까. 굳이 초음파를 예전에도 받아본 적이 있냐고 질문을 했을까. 검진 후 유방에 뭐가 있는 것 같다는 말에 자신이 아는 병원들을 마구 소개해 주던 동료들의 말을 듣고 미리 예약이라도 했었어야 했다.
출국을 한달 앞두고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살면서, 인생이 순탄하다고 생각한 적이 거의 없었다. 내 인생은 늘 롤러코스터 같아서 문제였다. 기쁜일이 있어도 맘껏 기뻐하지 못했었다. 언제나 정반합처럼 기쁜일 뒤에는 엄청나게 속상한 일들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쁜일이 있을 때에도 그만큼 더 가슴아픈 일이 있을까봐 되려 그 기분을 만끽하지 못했다.
올해가 되었을 때, 처음으로 내게도 좋은일이 가득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연초에 했던 대사관 인터뷰도 너무 순탄했고, 전셋집도 빨리 정리가 되었고, 비행기 티켓도 원하던 시기에 적절한 가격으로 잘 예매를 했다. 게다가 검진일도 정말 빨리 잡혀서 이제 내 인생도 뭐가 되려나보다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럴수가 있는지. 오래 전 잠깐 일했던 요양병원의 간호부장이 자신도 미국을 가려고 다 준비를 했는데 갑상선 암이 생겨 가지 못하고 여기 있다고 했었다. 그분이 불현듯 떠올랐다. 아 진짜 너무하다. 인생은 가끔 뒷통수도 앞통수도 흐드러지게 친다는데, 이건 뒷통수 정도가 아니라 세상을 무너뜨리는 수준이다.
나는 도망치고 싶었다.
그래서 미국행을 꿈꿨었다. 거기가면 그래도 숨통은 트이겠지, 거기가면 적어도 내가 하고 싶은일은 찾을 수 있겠지. 그런데 도망도 못가게 한다 심지어 이런 고약한 짓을 하면서. 도대체 내가 뭘 어떻게 얼만큼 잘못해서 이러는지 정말로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너무하다.
진짜 뭣같은 인생이다.
그동안 혼자힘으로 어떻게든 돈을 모아보겠다고, 꾹참고 삼교대 하고, 나이트 전담하고,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일해가고, 모욕적인 회사에서도 버텨보겠다고 아등바등하며 살아온 내가 너무나도 불쌍하다. 도대체 내가 뭘 위해서 그렇게 일했던 걸까. 정말 이 한몸 건사하지도 못할거면서. 그렇게 스트레스 받으면서 일을 해서 이런 일이 생겼나. 도대체 어디서 부터 잘못이 되었나. 평생을 마음편하게 살아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인생이 이러나.
짐정리를 하면서 10년전의 물건들까지 보게 된 적이 있었다. 물건을 좀처럼 버리지 않는 내가 이민 준비로 일생일대의 물건들을 버리며 다시태어나는 느낌도 받았었다. 우스개 소리로 신변정리 한다 생각했는데, 정말 이런 정리가 될 줄이야 어떻게 인생이 이러나 정말.
고작 초음파 영상과 촬영 사진만 보고 이럴 필요는 없겠다고 생각하다가도, 조직검사는 불가피한 일임에 여러가지 감정이 떠오른다.
난 잘 모르겠다.
이런 상황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정말 빌어먹게도 남들 아픈거만 보다가 내가 아플 때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 지를 모르겠다. 왜 그날 당일날 바로 조직검사를 하진 않았는지, 왜 그 CD 복사를 굳이 주말까지 미루게 되었는지. 그렇게 될 일이었다고 하기에 나는 너무나도 무지하다. 어떻게 간호사가 그러냐 진짜. 어떻게 이렇게 멍청할 수가 있는지 진짜. 어쩐 지 요 몇개월간 살이 빠진다고 좋아했다. 안색이 예전보다 안좋아도, 피곤해서 그러려니, 나이가 들어가서 그러려니 하고 넘겼었다. 어떻게 간호사가 그래 진짜.
빌어먹을 인생이다 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