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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설홍 Mar 24. 2023

이제 달려볼까 하는데, 너흰 날고 있었구나.

부러움과 열등감과 그걸 뛰어넘을 정도로 너무 멋있는 나의 친구들

출국 준비로 부산한 날들이 계속 되었다. 

글도 시간과 여유가 있을때나 쓴다고 3월 초중순은 정말 집에서 체류한 시간이 거의 없을 정도로 매일 바깥에 있었다. 할건 너무나도 많고, 나는 항상 돈때문에 전전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중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너무나도 좋아서 아니 어쩌면 미움받기가 싫어서, 어쩌면 모두에게 인정받고 싶어서 떠난다는 명목으로 그닥 연락도 잘 닿지도 않았던 친구들을 마치 결혼이라도 하는 것 마냥 만나고 있었다.


언젠가, 나랑 결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 분께 들은 칭찬이 있는데

"선생님은 혼자 힘으로 그걸 다 하셨잖아요. 그게 더 서사가 있어요."라는 서사를 부여한다는 의미의 이상한 칭찬이었다. 


여즉껏, 혼자서 뭐 열심히 해보겠단 생각으로 해 본적이 없기도 하고, 뭘 잘할거라 생각도 한 적도 없고, 내 인생은 실패와 성공의 중간이 아닌 실패와 좌절의 그 어느께 즈음 있다고 생각하며 살았긴 했었다. 어쩌다 내가 목표로 한 일들을 죽을동 살동해서 하나 둘 이루게 되었고, 이제야 목표를 어떻게 설정하고 달성하고 살아가야 하는지를 깨달아가던 참이었다. 


나름대로 목표한 것들을 이룬 자부심에 사실 나 스스로가 대견해보이기도 했고, 멋있어 보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내가 할수 있는 일은 누구나 다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남사스러워 그렇게까지 대단하게 봐주진 않아도 될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나같은 애가 할 수 있는 일은 누구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나와 비슷한 길을 가려는 사람들에게는 자신감을 심어주고 있었다. 


삶을 살아가다 보면 -얼마 살지는 않았지만- 가치를 두는 것들에 따라 궤적이 달라지곤 한다. 누구는 그게 물질적인 것일수도 누구는 그게 명예로운 것일 수도 누구는 그게 개인적인 것일수도 있다. 나는 철저하게 개인의 행복이 우선이었다. 명예를 얻고 싶은 마음도 없고, 물질이야 늘상 많이 얻고 싶지만 가진게 워낙에 없다보니 그냥 입에 풀칠하고 살면서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사람들을 만나고, 맛있는 것을 먹고, 소중한 사람들과 무언가를 함께하고 그리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그들이 힘을 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데서 큰 보람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태초에 내가 걸어온 길들에 대해 잘난척을 할 생각일랑은 전혀 없었고, 포장이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껍데기만 갖고 살고 싶지는 않아서 어딜가나 진정성 있는 스스로에 대하여 팔자라 힘들다고 생각하면서도, 그게 뭐 어때서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나의 어머니는 그런 점에서 나와 가치관이 많이 달랐다. 어릴 때 부터 '그런 애들이랑은 놀지 말라'는 소리를 심심찮게 들었다. 나는 어릴 때에도 그 말은 이해할 수 없었다. 도대체 '그런 애들'의 기준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내가 항상 예쁘게 차려 입고 다녔으면 했고, 남들 앞에서 트로피처럼 선보일 수 있는 딸이었음 했을 것이다. 어릴 때는 그게 너무나도 싫고 족쇄같았고, 성인이 되어서도 여러차례 마찰이 있었다. 지금 내가 출국을 꿈꾸는 이유도 순전히 자유로운 새가 되고 싶어서지 업적을 이루어 떠납니다가 아니기 때문이다. 


출국을 하고자 마음을 먹는데 큰 영향을 끼친 친구가 있었다. 멋있는 친구였다. 너도 해봐 라고 한 말이 내겐 목표가 되었고, 그렇게 떠날 수 있게 되었다. 그 친구는 자신의 경험으로 책도 내고, 현재도 여전히 미래를 위해 달려가는 멋진 친구였다. 이 친구를 포함해 대학 시절 같은 동아리에 몸담았던 친구들이 함께한 단톡방이 있었다. 오랫만에 안부를 묻는 한 친구의 인사에 다들 근황을 이야기 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좋은 대학에서 박사를 하고 있었고, 누군가는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직업에 종사하며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었다. 나도 드디어 출국을 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리고 그게 지난 10년간 중 가장 큰 목표였고 내가 이루었던 일이기 때문에 나는 스스로가 조금은 자랑스러웠다. 


그래서 나는 이제 좀 달려볼까 하고 기지개를 펴고 있었다. 그러나 이미 책을 낸 그친구는 사업을 하고 있었고, 박사를 하는 친구도 정말 내가 쳐다보지도 못할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으며, 자신이 원하는 직업에 종사하는 친구는 동아리 후배들을 위해 기부를 했다며 후배들에게 힘을 주자며 아주 안정적으로 성공한 선배가 할 수 있는 멋진 말을 남겨놨다. 


삼십대 중반의 단톡방의 대화는 그러했다. 커리어가 엄청나진 친구들은 정말 티를 안내고 조용히 자신들의 필드에서 날아다니고 있었다. 난 이제 달려볼까 했는데, 그들은 정말로 날아다니고 있었다. 


삶의 가치가 다른 나에게도 그들의 모습은 너무나도 부러웠고, 갑작스런 낙차를 느끼게 해 주었다. 나의 친구들은 너무나도 멋있는 친구들이 많았고, 돈 좀 아끼겠다고 궁상맞은 짓을 가짓껏 떨던 나는 나하나 먹고 살기도 힘들어 후배들의 후원계좌 따위는 연락해 볼 생각도 못한 채 채팅방에 뜨는 1이라는 숫자를 지워주는데에만 큰 역할을 했다. 


사람은 원래 비교를 하면 초라해지고 삶의 만족도가 떨어진다고 했다. 비교 대상은 과거의 나여야만 하는데, 이렇게 훌쩍 커져버린 친구들 사이에서는 비교란걸 할 수 조차 없다. 작아진채로 있는 나에게 돌파구일 줄 알았던 출국이 어쩌면 이곳에서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게 똑같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말 안통하고 외로운 곳에서의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고독한 싸움이 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언젠가'라는 생각은 그들이 이미 훌쩍 뛰어넘어버린 순간들이었다.


얼마전에 만난 나보다 한참 어린 친구가 이야기 한게 생각났다. 자신의 옹졸함에 치가 떨릴 정도로 싫다고 했다. 어찌 자신은 이렇게 못나기만 했는지, 좀처럼 너그러워지지 않는 자신에게 곧잘 화가난다 그랬다. 내가 봤을 땐 삐걱이는 단톡방의 대화였는데, 누군가의 말에 의해 참 잘맞는 우리가 되었다.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나이가 들어갈 수록 인상이 얼굴에 드러난다는데, 좋은 옷도 예쁜 가방도 없는 나는 항상 머리를 질끈 묶고 출퇴근을 한다. 요즘 따라 주름도 늘고 고생살이 가득 보이는 얼굴에 점점 더 슬퍼진다. 어쩌면 엄마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좋은 옷을 입고, 있어보이게(?) 하고 다녀야 그런 인생을 살 수도 있다는 말을.. 진정 내 속이 비어 있어도 그런 껍데기라면 여전히 인정받는 세상인 걸까.


난 잘 모르겠다. 그냥 이제는 뛸힘이 점점 사라지는데, 날고 있는 그들을 보면서 스스로의 한계를 정하고 사는 수밖에 없는지. 중요한건 꺽이지 않는 마음이라고 하는데, 자주 꺽일 것 같다. 


에이, 그냥 쪼대로 살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나 좋은거 나에게 좋은거 해 주고 살자. 에이 뭐 날거나 뛸 필요 있나. 그냥 뒤로 걷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하고 앉아있기도 하는거지. 10년 전도 지금도 변하지 않는 삶의 모토대로 살자. 있는 그대로. 나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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