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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설홍 Feb 23. 2023

요즘 세대의 사랑

틱톡처럼일까 홍상수감독 영화처럼일까.

한참 어린 친구들과 일할 기회가 생겼다. 조카뻘인 친구들과 일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얼마 전 소개팅을 한 녀석이 내도록 귀에 입을 걸고 다니고 있었다. 맨날 인상만 쓰고 있어서 인상파인줄 알았는데 웃상이었다. 소개를 시켜준 녀석이 옆에서 거드름을 피웠다. 


"이제 여자친구 생기면 벚꽃도 보러가고 맛있는 것도 먹으러 가면 되겠네."

"여자친구 없어. 아직."


씨익 웃던 녀석은 금새 딴청을 피우기 시작했다.그러나 그 행동이 너무나도 자연스럽지 않아서 자연스레 눈길이 갔다.


몇 주전이었나.그 인상파 녀석이 가족 행사에 꽃다발을 준비해야 한다면서 동료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일할 때 말고는 좀처럼 웃거나 자신의 이야기를 자주 하는 아이는 아니었는데, 그날따라 신이나서 떠들면서 '케이크는 동생이 맞추기로 했어요. 걘 여자친구가 있어서 정기적으로 이벤트 케익을 만드는 곳을 알거든요. 나는 그런거 없어서 잘 모르지만' 씨익 하고 웃는 모습에 귀까지 빨개진 모습이 귀여웠다.


문득 궁금해졌다. 요즘 녀석들은 어떻게 연애를 하는지. 

"여자친구 없어. 아직"하고 쑥쓰러워 하는 그 모습이 10년도 더 지난 오래 전 대학을 다닐 때 내 동기들이 소개팅을 하고 나서 말했던 모습이랑 겹쳐져서 한참 전이 떠올랐다.


우리 때는,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나에게 사랑을 한다는 것의 의미는 흔히 말하는 홍상수 감독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노란장판 감성이었다. 메이트의 음악으로 사랑을 배우고, 귀여니의 소설로 로맨스를 꿈꾸던 소위 말하던 라떼는, 내 모든걸 바쳐 불구덩이에 뛰어들어 만신창이가 되어 갈기갈기 찢겨야 사랑이라고 믿었다. 그러니까 나는 매 사랑이 힘들었고, 매 사랑이 다 첫사랑이라 문제였다.


"선생님은 남자를 볼 때 어떤 걸 주로 보세요?"

"글쎄.."

나를 지나쳤던 연인들이 몇몇 떠올랐다. 생각해 봤는데, 딱히 본 적이 없었다. 이걸 알아차린 것은 최근이었다. 나는 매번 잘 고르고 골라서 세기의 사랑을 했다고 믿었지만, 내 사랑은 항상 별게 아니었다. 그러니까 나를 좋아하면 그다지 따지지 않고 만났다. 


"연애는 주로 어떤사람이랑 했어요?"

"그냥, 이런저런 사람. 별별 사람 다 만났지, 하다못해 백수에 빚쟁이까지"

이정도는 말해야. 이녀석도 더이상은 안물을 것 같았다. 어느정도는 사실이었고.. 백수와 빚쟁이가 같은 인물이라 그렇지만.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요즘 친구들도 홍상수 감독의 영화같은 사랑을 할까. 아니면, 정말 깔끔하게 앱으로 만나서 연애 몇번 하고 헤어지는 유투브 드라마 같은 사랑을 할까. 누군가를 좋아하기 시작하는 마음은 어떻게 시작이 될까. 옛날 그 감성을 이 친구들은 알까. 알면 어떻게 생각을 할까. 촌스러울까. 


문득 '여자친구 없어. 아직'이라고 한 녀석은, 말은 이렇게 해 놓고 그녀의 소셜을 탐방한다거나 혹은 종일 오지않는 문자를 기다리지는 않을까. 불현듯 온 문자에 속으로는 내심 뛸뜻이 기뻐하면서 겉으로는 아닌 척을 할까. 홍상수 감독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들처럼 목적이 있으나 빙글빙글빙글 돌고돌아서 그 끝에 도달하게 될까. 아님 친구처럼 계속해서 연락을 주고 받으면서 '아직 사귀는 건 아니야'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원하는 것들을 당당하게 요구하고 서로 주고 받을까. 만약 그렇다면 그 레퍼런스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오래전 영화를 더 자주 보는 이들은 더 홍상수 감독의 영화같은 사랑을 할까?


한 녀석이 동네술집에서 알바하는 친구가 너무 귀여워 구애 공세 끝에 만났다가 헤어진 이야기를 하면서 사족을 덧붙였다. 이제 그 아픔을 딛고 선생님을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어요 라고. 전혀 진지하지 않은 익살맞은 모습에 웃으면서 미친, 선넘네 라고 이야기를 했다.


나는 나이가 들더라도 재지않고 이런 친구들과 연애를 할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을 했다. 그때만 해도 나는 20대였으니까. 그런데 30대를 훌쩍 넘기고 나서 보니, 그 어린 친구들이 하는 행동이 마냥 귀엽기만 하다. 내가 사회생활을 어엿하게 할 때, 그 친구들은 이제 콧물을 떼고 운동장을 뛰어 다녔을 것이다. 문득 교복입은 친구들을 좋아하는 아재들이 정신나간것 같다는 생각도 퍼뜩 들었다. 나중에 내가 그렇게 말해서 상처를 받았단 그 진중하지 않은 친구에겐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그치만  나는 선생이고 너는 학생.. 응? 여튼 고맙다 덕분에 근무가 재미있었어. 


봄이다. 

연애를 하려는지 다들 꿈틀꿈틀이다. 수강신청도 하고 개강도 할거고 다들 머리도 자르고, 펌도 하고, 염색도 하기 시작했다. 개강준비를 하는 설레임은 좀 다양할건데 덕분에 그 감정까지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고마웠다. 다음주면 파릇파릇한 친구들과 작별을 하게 될 것 같다. 그네들의 사랑이 어떤 형태이든, 그네들 스스로가 다치지 않도록 행복한 사랑만 하기를 바라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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