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납적인 탐구를 좋아하는 나에겐 전혀 와닿지 않는...
예전에 벤쿠버에 살 때, 그 언저리 즈음 나와 같이 친밀하게 지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일을 하기 까지 과정을 음미하기 보다는 최대한 단축해서 빠른 시일내에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을 효율적이라고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니까, 시간 낭비 하지말고"
"(그렇게 행동한들)그게 무슨 시간 낭비야"
앞만보고 내달리다가 쉼표를 찾아 떠난 나의 마음을 다분히 조급해지게 만드는 말들이었고 좋은 조언이었고 충고였다.
아무래도 나보다 먼저 앞길을 걸어가 본 몇 살 더 많은 언니들이 하는 이야기였고, 그 언니들이 겪어보니, 아끼는 동생에게는 돌아가는 일들을 하는 고생을 만들어 주고 싶지 않아서 그런 이야기들을 즐겨 했을 수도 있다.
그렇게 치면, 나는 시간낭비를 꽤나 즐기는 사람이다.
인생을 살다가 이길로 빠졌다가, 저길로 빠졌다가 그러다 다시 엎고 뒹구르다 아직까지도 그렇게 뒹굴고 있다. 내가 미국행을 결심한 것이 돌이켜 보니 자그마치 2017년이었다. 어느정도 대장정의 마무리가 되어가려는 지금은 2023년, 꼬박 5년이 걸린 것이었다.
그때의 당찬 포부와 달리, 나는 벌써 삼십대 중반을 넘어가고 있었고, 패기는 조금 더 희미해져 갔다. 시간이 지나면 마음도 바뀌는데, 꺽이지 않고 (미국으로)도망가겠다는 마음을 먹은 이후 그것만 보고 살아왔다.
가서 뭐하냐고 물으면, 내가 일평생 싫어했던 간호사라는 직업으로 먹고 살겠지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언젠가 내가 이 일을 계속 하면서 무언가를 쓴다면 책 제목은 "간호사가 제일 되기 싫었어요"로 정해야겠다고 치기어리게 정했다.
혹시나 못가게 되면 챙피하라고 여기저기 소문도 냈다. 그렇게 남들이 5년이란 시간이 지나면서, 나라는 사람이 여전히 한국에 머물고 있는걸 알게 되고, 간다더니 안가네 하는 순간 두둥 탁! 하고 저는 드디어 떠납니다!! 하고 멋드러지게 사라져 주려고 했다.
그런 셈으로 치면 나는 꽤나 많은 시간을 낭비한 셈이다. 2015년 벤쿠버에서 귀국해서 다음 워킹홀리데이를 하려고 비자를 받아놓고는 잠깐 돈 벌어 나가겠다고 병원엘 들어갔다. 2-3개월 근무하니 곧죽어도 못하겠어서 그만두고 나왔다가 한 동네 레스토랑에서 알바나 하면서 지냈었다. 알바를 하면서 출국자금을 모으고자 했는데, 부모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틀뒤 바로 병원엘 취업해, 낮에는 상담간호사 밤에는 레스토랑 알바생으로 투잡을 한 기왕력(?)이 있다. 그렇게 한 세달을 근무했고, 뉴질랜드 항공권도 끊어놨고, 비자도 다 받아놨는데 아뿔싸. 막상 가려니까 레스토랑 일이 너무너무 적성에 맞는거였다. 맛있는 식사를 하러 온 사람들, 활기찬 직원들 그리고 음식이 잘못나오면 죄송합니다 하고 조금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해 주면 되는 그런 다른 사람의 삶과 죽음에 대해 관여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 그런 세상에서 나는 마음껏 동료들과 어울렸고, 앞으로도 이 일을 계속 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나게 했다. 일하는 레스토랑에 대해 자부심이 있었고, 새로운 메뉴가 나오면 프로모션을 어떻게 할까, 새로운 행사가 들어오면 마케팅을 어떻게 할까 생각하는 것도 너무너무 재미있었다. 이 모든 것을 버리고 뉴질랜드를 갈것인가 말것인가에 대해 깊이 고민을 하던 찰나, 당시 대만인이었던 매니저가 나를 데리고 가서 진중하게 상담을 해 주었다. 당시 20대 후반, 머리도 클만큼 큰 친구가 저는 늘 떠나고 싶었어요. 부모님이 이 일을 싫어할까봐 겁이나요. 이 일을 계속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하는 울먹임을 진심으로 들어주면서, 매니저는 내게 부모님을 모시고 식당엘 한번 오라고 이야기를 해 줬고, 이곳에서 너가 즐겁게 일하는 모습을 본다면, 네 부모님도 너를 진정으로 이해해 줄것이라는 지금생각해도 눈물나는 감동적인 상담을 해 주었다.
그 면담 이후 나는 한국에 체류하기로 결정을 했고, 고맙게도 알바생 신분에서 정직원이 되어 조금 더 열심히 힘을 내서 일을 하게 되었다. 점장님은 두어달 뒤 자신의 나라로 떠났고, 나는 다른 한국인 매니저와 상무님 밑에서 일을 하게 되었는데, 당시 일을 하는게 너무 신이나서 열심히 했더니 2개월만에 초고속 승진도 시켜주었다. (물론 자리만 올라가고, 급여는 조금 안습이었다). 그렇게 재밌게 일을 하는 것도 잠시, 너무 모든것을 쏟아서 했나, 맘처럼 되지 않는 알바친구들과 맘처럼 되지 않는 부장님과 맘처럼 되지 않는 이런 저런 것들에 슬슬 마음이 이지러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살길을 찾아 떠난 곳이 다시 병원이었다. 좋아하는 일을 싫어하게 되는 것은 괴로웠다. 그러나 싫어하던 일을 싫어하면서 한 적은 있으니, 얼마나 쉬운 선택이었나.
이리 저리 돌아 다시 병원으로 왔고, 그렇게 돌아 결국 미국행을 선택하게 된다. 당시 내게 왜 미국을 가려고 했냐고 묻는다면, 도망간다고 이야기를 했다(지금도 그렇다). 그런 의미에서 여간 시간낭비를 한게 아닐 수 없다.
김중혁 작가를 좋아한다. 그가 쓴 수필집 '뭐라도 되겠지'를 오늘 하루만에 후루룩 다 읽었다. 어쩌면, 그가 생각하는 삶을 대하는 방식이 내가 따라가고 싶은 방식이라 너무 위로가 되어서 그럴 수도 있겠다. 시간낭비 하면 어떻냐는 한 구절은 마음속에 깊은 울림을 줬다. 낭비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아니었다는 말로. 일생을 소설을 쓰는데만 낭비를 했는데, 알고보니 그게 낭비가 아니고 다 자산이 되어 돌아왔다는 이야기도. 결국 나는 레스토랑이건, 병원 내에서도 이런 저런 부서를 거치면서 왔지만, 지금의 내가 가진 커리어가 싫지 않다. 다시 돌아가서도 똑같이 이렇게 할래? 라고 이야기 한다면, 나는 기꺼이, 응당 시간낭비를 하고 살리라고 이야기 하고 싶을 것이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서 정말 귀납적으로 삶의 이해도가 높아졌고, 남들보다 더 재밌는 삶을 살아왔다고 자부할 수 있다. 지금 앞으로 내가 하고자 하는 일들도 어떤 낭비가 될 수도 있겠지만, 후에 조금은 후회할지도 모르지만, 까짓것 일단 해보자. 세계여행을 수도 없이 하는 것 처럼, 인생의 다양한 경험을 재밌게 하고 왔다고 태어나 삶을 항상 여행하는 마음으로 살아왔다고 말이다.
나는 점점 나이가 들 것이고, 체력도 예전같진 않을 테지만, 할수 있는 힘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다면, 무언가를 바꾸는 터닝포인트를 만드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시간낭비가 아니라, 어쩌면 인생 공부라고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