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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설홍 May 20. 2023

랜딩 10일 차 : 차가운 이 도시에서

LA가 차가운 도시였나. 게티 빌라와 센터 후기를 곁들인.

입국을 하고 나서 며칠간은 크게 들뜨지도 크게 즐겁지도 않았다. 그냥 살아야 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 처럼 장소만 바뀌었을 뿐 아등바등하는 나 자신의 모습은 크게 다를게 없었다.


랜딩 5일차. 입주하기로 한 집에서 퇴짜를 받았다. 표면상의 이유는 입주 신청서 작성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것이지만, 내포된 의미는 나를 세입자로 받고 싶지 않았던 한국인 룸메의 갑질이라고 해야겠다. 당일 입주를 저녁에 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한국에서 딴지 얼마 안되는 면허증으로 차도 렌트했었고, 숙소 체크아웃은 오전 11시에 했어야 했다. 불과 4일 전 집을 보러갔을 때만 해도 들어오라며 반기던 주인으로 추정되는 중년의 한국인 여성은 2-3일동안 불필요한 문자를 계속 보내시더니, 결국에는 내 태도가 그다지 마음에 안들었는지 입주 당일 오전 7시, 다른 집을 찾아보라 통보했다. 


이민을 가면 한국인을 제일 조심하라는 말을 나는 믿지 않았다. 물론 교회는 안갈 생각이었다. 캐나다에 있을 때만 해도 한인들이 크게 나에게 위협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되려 한국인 커뮤니티 안에서 조금 더 안정적인 느낌을 받기도 했었다. 랜딩 5일차. 지독한 한국인을 만나서 집도 절도 없어진 나는 그길로 산타모니카 비치로 향했다. 운전도 서툴러서 가는 내내 살얼음판이었다. 교통법규를 유투브를 보고 겨우 독학해서 바스라진 몸과 마음과 짐을 싣고는 그렇게 홀로 지도에서만 보던 산타모니카 해변으로 향했다. 길을 몇 번을 잘못들고, 끼어들기를 못해서 어느 음식점이 있는 곳에 주차를 겨우 했다. 허름한 도넛가게에 들어가니 아시아계 중년여성이 나를 맞이했다. 내 표정이 워낙 암울해 보였는지, 잘 지내냐고 물었다. 나는 오늘 오전에 갑작스럽게 룸렌트 주인에게 거부당한 사연을 말했다. 집도 절도 없이 친구도 가족도 없이 천사들의 도시라 불리는 로스앤젤레스에 혼자왔다고 하니 캄보디아에서 이민온 자신은 그래도 가족이 있었는데 혹시 괜찮으면 친구를 소개해줄까 물었다. 한국인 여성이고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 분이라고 했다. 나를 쫓아낸 집주인이 교회와 상당히 연관이 깊었기 때문에, 정중하게 사양했다. 그치만 그 덕에 나는 따뜻한 커피와 도넛 그리고 위로의 말을 얻었다. 위태로워 보이는 이 동양 여자애는 어떻게든 차를 이끌고 구름낀 산타모니카 해변을 향했다.


절망스러웠다. 해가 쨍쩅하다던 이곳의 날씨는 그날따라 을씨년 스러웠다. 내 키보다 훨씬 커 보이는 파도들이 내게로 밀려왔다. 해변의 모습은 동해의 그것과 다를게 없어 보였다. 우우웅하며 지구가 돌아가며 파도가 몰아치는 소리가 들렸다. 빌어먹을 세상. 빌어먹을 사람. 어쩐지 또 너무 일이 잘 풀린다 생각했다. 랜딩 다음날 바로 은행을 갔고, 소셜까지 만들었다니. 나는 순탄하면 안되는 인생을 사나보다 싶었다. 고작 이것갖고 뭐라고 싶겠지만, 아무도 없이 이곳에 온 나는 결국 무엇 때문에 이리로 왔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도미라고 했다. 친구들에게 도망간다고 했는데, 도망쳐 온 곳이 하필 낭떠러지 같았다. 아니 낭떠러지에 겨우 솟아난 나무를 잡고 댕강댕강 매달려 있는 느낌이었다. 도대체 무얼 하고 있는지 모르겠었다. 서늘한 공기에 고독함이 물밀듯 몰려왔다. 어떤말로 위로해도 도무지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화가났나. 아니다 허탈했다. 아. 인생을 이렇게 사시는 분들도 있구나. 그간 자신들이 받아왔던 이름모를 한국인 룸메들의 횡포를 조심하겠다는 핑계로 집도 절도 없는 사정을 아는 분들이 이렇게 행동하시기도 하는구나. 천벌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저주했다. 아니, 결국엔 사람을 믿은 내 잘못이다. 사람에 대한 기대를 한 내 잘못이다. 그래도 내가 무슨 엄청난 잘못을 하지 않은 이상 입주 당일 취소 통보는 드넓은 땅덩이에 떨어진나에게 너무 가혹한 시련이었다. 좋게 좋게 마무리 했지만, 부디 평생 스스로가 가둬 둔 감옥에서 사셨음 좋겠다. 


이제 어찌해야 하나 몰르겠었다. 어렵게 어렵게 도미토리를 하나 구했다. 차는 어떻게든 몰고 가 보자 하고 그렇게 도미토리에 도착했다. 사정을 어찌저찌 들은 사장님이 개인실로 옮겨주었다. 고마운 분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사람이 더 많다고 믿고 살고 싶게 해 주셨다. 구멍난 마음이 며칠을 갔다. 머리를 감으면 한움큼 머리카락이 빠졌다. 이걸 도대체 무슨감정이라 해야하는지 알 수가 없어서 일기를 쓰지도 못했다. 울화도조금 섞였고, 서러움도 섞였고, 회한과 절망과 그러니까 내 삶을 색칠하는 다채로운 색감이 모두 빠진 채 회색빛이 가득했다. 


억지로 억지로 여행을 다녔다. 해결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었다. 소셜넘버는 만들어지는데 한참이 걸리고, 은행 카드도 여러번 주소를 바꾸는 바람에 행방이 없어졌다. 기다리는 동안 내가 할 수 있는게 여행밖에 없었다. 회색빛의 자아를 가지고 이곳 저곳을 다녔다. 어떤 것도 색깔이 채워지지 않았다. 천사들의 도시는 내게 너무 차가웠다. 해가 드는 날이 많아서 좋았지만 아침은 대부분 흐렸다. 그 흐린 아침은 꽤나 을씨년스러웠다. 시애틀에 있는 친구가 이참에 그냥 시애틀로 와서 정착하라고 했다. 벤쿠버 날씨도 싫어했는데, 시애틀 날씨라고 좋을까. 그래도 좀 덜 고생하도록 친구들이 있는 곳에서 정착하지 왜 집도 절도 없는데서 혼자 고생을 하냐며 안쓰러운 잔소릴 해주었다. 고마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주변엔 이리도 좋은 사람들이 많아서. 


억지로 억지로 여행을 다닌다고 해봤자 맨날 갔던 길을 또 잘못드는 일 투성이었다. 산타모니카를 갔다 베니스를 갔다 거기가 거긴줄을 이틀을 나눠 가보고 알았다. 그러다 오늘은 게티 빌라와 센터를 다녀오기로 했다. 거기도 또 산타모니카 근처다. 삼사일째 그 주변만 맴돌았다. 물론 길을 잘못들어서 같은 길을 여러번 오가기도 했다. 이젠 다운타운보다 산타모니카가 더 익숙할 지경이었다. 역시나 흐린 날 게티 빌라에 가서 그 웅장함과 엄청나게 정갈하게 꾸며진 빌라의 모습에 감탄을 했다. 마치 유럽에 온것 같았다. 투어를 신청했다. 콜렉션 투어를 통해 장폴게티의 콜렉션과 이 빌라에서 중요한 포인트 몇 군데를 알게 되었다. 


베수비오 화산폭발로 이후 발굴 작업에서 발견하게 된 파피리 빌라를 그대로 옮겨놨다고 했다. 로마 시대와 똑같이 복원을 했으며, 여기서 그리스 작품의 로마 카피본인 헤라클레스 조각상과 여러가지 색으로 된 대리석 바닥이 있는 방이 이 빌딩의 메인 공간이었다. 헤라클레스 조각상은 어느 영국의 부호에게서 2차대전 시기 즈음에 장폴게티가 구매한 것이라고 했다. 이후 고대 로마시대에 쓰던 도자기들을 볼 수 있었는데, 꽤나 과학적인 단계에 따라 모양이 나뉘는 것이 신기했다. Dinos라 불리는 와인 저장고이자 도자기는 겉에는 전쟁장면을 안쪽에는 배들을 새겨놓아 와인이 찰랑거릴 때 마치 물 위에 배가 떠 있는 듯한 모습을 연상케 한다고 했다. 고대 로마 부자들이 그들의 놀이를 이렇게 즐겼음을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그때의 식물을 그대로 재현한 정원의 모습, 호른 모양의 술잔까지. 술잔을 어떻게 마실 지 두려워 말라 그랬다, 로마의 귀족들은 옆에서 시중들이 그 술을 먹여줬다고 했다. 설명을 듣던 노부부들이 그게 자신들이 매일 하는 일이라고 하며 웃음을 자아냈다. 그 수집품들은 가히 너무 고가에다가 정말 놀랄만한 수준으로 잘 보존되어 있었다. 


이후 가든투어도 했는데, 가든 투어시에는 많은 사람들이 거의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었다. 파피루스도 실제로 보게 되었다. 그리고 허브 가든도 역시 당시 사용되었던 모종으로만 심어서 꾸몄다고 했다. 최대한 파피리 빌라와 동일하게 복원하고자 트위스트된 줄기를 가진 나무도 있었다. 이후 메인 정원에서 어떻게 로마의 사람들이 즐기고 놀았는지 알려주었다. 명백하게 많은 시종들을 써야만 했으며, 지금도 거의 매일매일 수십명의 사람들이 가드닝을 하고 있다고 했다. 가이드는 그 정원에서 빌라에 이르기까지 동상들이 있는데, 그 동상들은 고대 유명 철학인들과 선구자들을 본따서 만들었다고 했다. 당시 기분을 느끼고 싶으면 동상들을 지나가면서 가족들이랑 이야길 하거나 통화를 해보라고 했다. 각 동상들이 무언가를 알려줄 거라고. 고대 로마 사람들도 이곳에 삼삼오오 모여서 정치, 예술, 문화 등을 논의했다고 했다. 그리고 이 공간을 지나면서 어떻게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을지, 어떻게 사람들을 더 나은 사람들로 만들 수 있는지 고민하라며 유머도 던졌다. 가만히 앉아서 고대 사람들이 느꼈던 그 감정을 명상하며 느껴보라고 했다. 어떻게 나 스스로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수 있을지.. 그 말이 참 와닿았다.


투어를 마치고 정원을 돌며 사진을 찍었다. 너무 예뻐서 마냥 좋기만한 빌라였다. 다들 예쁘고 멋지게 차려입고 인생샷을 찍으로 온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입장료가 무료였다. 그리고 만약 오늘자를 동일하게 게티센터도 예약을 하고 이 예약증을 인포에 보여주면, 게티센터의 주차는 무료가 된다. 서둘러서 게티센터로 향했다. 30분 걸려 갈 거리를 헤메고 헤메 1시간이나 걸려 도착했다. 5시 반에 문을 닫는데 4시 반에 겨우 도착을 했다. 부랴부랴 박물관엘 올라갔다. 엄청나게 컸다. 무려 동서남북으로 건물들이 나뉘어져있었다. 조각들과 페인트 위주로 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냥 와 좋다였는데, 점점 갈수록 장폴게티라는 사람에게 너무 고마웠다. 아니 도대체 무슨 아량으로 이렇게 좋은 작품들을 무료로 보게 해 주는지 너무 고마운 마음이었다. 그리고 어느 종교적인 그림에서는 나도 모르게 경이로움과 같이 눈물이 나왔다. 그냥 힘든게 다 잊혀지게 하는 그런 그림들이었다. 시간만 있었으면 더 한참을 머무르고 싶은 작품들이 많았다. 문 닫기 한시간 전에 와서 재빨리 보고 센터를 나왔다. 이곳도 조경이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어마무시한 엘에이의 풍경이 게티센터에서 한눈에 담겼다. 인터넷도 터지지 않는 이 곳에서 산세와 도로와 도심의 빌딩들을 보면서 참 차갑다고 생각했다.


트램을 타고 내려갈까 하다가 걸어내려가기로 했다. 오른편에 보이는 커다란 산세와 도로들이 여전히 차갑게 느껴졌다. 흐려서 그런지 여전히 내 눈엔 회색이었다. 도대체 무엇때문에 엘에이에 정착을 하려고 왔던가 나는. 따뜻한 날씨, 따뜻한 사람들을 기대하고 왔던게 아닌가. 그런 나에게 요 열흘간은 너무나도 차가운 도시 엘에이였다. 콧잔등이 서늘해졌다. 초장부터 너무나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행복하고 싶어서 왔는데 아니 한국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왔는데, 매일매일이 도장깨기다. 캐나다랑 비슷해서 크게 어려울 일이 없을 줄 알았건만, 한국에 몇년 체류하다 와서 그런지 느린 행정은 여전히 낯설기만 하고, 유색인종으로 어딜가나 Where are you from?이라는 물음을 당하는 이곳이 쓰디쓰게도 차게 느껴진다. 여기가 달콤하고 따뜻한 도시였나. 그림속에서 혹은 영화나 드라마에서만 보던 그런 장면 같아서 바스스 재처럼 무너진다. 원체 인생은 독고다이인것을, 세상이 그렇게 나에게 따뜻했던 적이 있었나 싶었던 듯, 그렇게 살다가 보면 볕도 들고 바람도 불고 그런 것을. 그냥 포기하지 말아야겠다 생각을 했다. 지나가는 과정이라 생각을 했다. 충격에 밤에도 잠을 여러번 설치지만, 시간이라는것이 결국에는 다 해결을 해 줄 것이라고. 그리고 뭐, 어쩌면 애초에 이런일을 겪은게 액땜을 했다 생각을 하면 더할나위 없이 좋을테고. 도대체 내가 두려워 하는 것이 뭔진 모르겠지만, 여전히 좋은 친구들을 믿어보자고, 여전히 좋은 가족을 믿어보자고, 그리고 나를 한번 더 믿어보자고 다짐을 했다. 


다른 곳에서랑 다르게 아무도 없는 이곳에서 겪은 일이라 몇 배로 더 크게 느껴지겠지만, 결국엔 내가 기다리고 참는게, 그리고 다른이들을 기꺼이 돕고 감사함을 표현하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을 했다. 주차장에 도착하니 비로소 엘에이가 조금 따뜻했나 싶다. 수많은 좋은 작품들을 무료로 보여준 장폴게티에 대해 생각을 하며, 그 역시 이 작품들이 누군가에겐 어떤 동기나 계기가 되었으면 해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을 했다. 서늘한 엘에이 바람을 맞으며, 어제보다 오늘 조금 더 따뜻한 엘에이에서 조금씩 뿌리를 내려가겠다고, 마른 바람과 거친 모래가 게 중 여럿을 솎아 낼 지라도, 기꺼이 나를 믿고 앞으로 가 보겠다고. 이 순간을 잊지 말고, 부디 베풀겠다고. 그렇게 다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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