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타가 오는 순간들이 있었나..
요즘들어 종종 나 스스로가 지겨워지는 때가 있었다. 출국을 위해 짐 정리를 하는 동안 버리지 않고 잔뜩 쌓아둔 물건들을 버리면서, 미련하게 크게 불필요한 짐들을 애워 싸고 오면서, 그리고 그냥 내가 나인게 지겨워서. 나쁜말로 하면 미련한 나지만 좋은말로 하면 끈기가 있다고 해야겠다.
5년 전 막연하게 미국으로 출국을 생각했었다. 4년 전 미국의 한 회사와 계약을 했고, 그리고 2023년 5월 미 LA에 랜딩을 했다.
출국 전 지난 열흘 정도 오랫만에 부모님과 같이 길게 지낼 일이 있었다. 내 미국행의 목적은 거의 도미였다. 그렇게 도피처로 선택한 미국이었는데, 시작할 때 보다는 시간이 너무나도 흘렀고, 그 초창기의 마음이 조금은 바래져 있었다. 설상 가상으로 비자는 제대로 받았으나 영주 하는데 문제 없는 비자만 받았을 뿐, 여전히 미국에서 이방인인 나는 집을 구하는 것도 뭘 하는 것도 좀처럼 쉽지 않았다. (돈만 있음 해결될 문제들이었는데, 입국 후 언제 일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큰 돈을 쓰기도 주저되었다) 게다가 고용주 관련해서도 뭔가 이벤트가 있는 것 같아서, 오늘 리크루터를 만나 이야기를 할 참이었다. 고로 어떤 것도 정해진 것이 없는 상황이었다. 집도, 절도, 일자리도. (아니 일자리를 구하고 와도 그렇다)
출국장에 들어설 때 까지 미래가 불안하더라도 되돌리고 싶은 마음은 정말 0.1프로도 들지 않았다(0.001프로정도는 들었다고 치자) 다만 부모님과 오래 붙어 있을 시간이 없었는데, 조금은 어른이 된 상태로 오래 같이 있다보니 서로 조심하게 된 점에 이만하면 한국에 살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잠시 했던 것 같다. 울것 같은 순간들이 몇 번 있었지만 울지는 않았다. 지난 순간 내가 부모님을 원망했던 순간들이 나의 치기어림으로 가득했던 것으로 판명이 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넘치는 사랑을 받고 출국을 했다. 물론 친구들에게도 넘치는 응원과 환송을 받았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조금은 들떴는데, 막상 입국 하기 전이 되자 어차피 사람 사는 데라 큰 기대도 두려움도 없긴 했다. 뭐 두려움이 있다면 당연히 주거안정과 고용이었다.
집을 구하면서 크레딧이 없는 나는 직장에서의 레터를 요구당하기도 했고, 수입을 증명할 만한 보증인을 요구당하기도 했다. 죄다 처음이었다. 그리고 나처럼 남의 손 빌리기 싫어하는 사람은 아무리 미국에 친구가 있어도 절대 읍소할 수 없었다. 가뜩이나 월세도 비싼데 이런 상황에서는 배가 되는 돈이 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고 했다. 막상 집을 구하려고 하다보니 다 서바이벌이었다. 하다못해 룸렌트도 크레딧을 요구하기도 했다.
한국을 떠날때만 해도 친구들에게 또 보자며, 10시간만 비행기를 타고 오면돼! 라고 이야기를 했지만, 막상 다시 10시간 비행기를 타보니 죽을맛이었다. 드라마 한 시리즈를 모두 다 볼 수 있을 정도의 시간이었고 잠도 생각보다 잘 오지 않았고 도착하니 머리가 댕댕 울릴정도로 아팠다. 캐나다 왔다 갔다 할 때 어떻게 했지 싶을 정도로 쉽지 않았다. (여러 블로그에서)랜딩 후 입국심사장에서 citizen에 줄 서도 된다고 해서 열심히 줄을 섰건만, 다시 non-citizen으로 가라 그래서 그리로 갔고 거기서도 2시간을 기다려도 입국 심사가 좀처럼 이루어지지 않아 다시 citizen으로 줄을 이동시켜 거의 2시간 만에 입국 심사를 마치고 나왔다. 와 다시 하라면 절대 못할 것 같다. 다행히 입국시 친절한 심사관을 만나서 큰 문제없이 재빠르게 처리 되었다.
심사를 끝나고 바로 짐을 풀어 진통제 부터 먹었다. 꽤나 무거운 짐을 매고(그러나 이민이라기엔 너무 단촐했다, 백팩1, 큰 캐리어1, 작은캐리어 1이다) 리프트 탑승 셔틀버스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10시간의 비행동안 쪽잠을 잔 나의 몸 컨디션으로는 한인택시를 부를까 했는데, 리프트가 훨씬 저렴했다. (팁을주더라도). 리프트를 타고 오는 동안 로드뷰로 맨날 보던 야자수 나무가 가득한 길을 달리는게 새삼 낯설지는 않았다. 리프트 기사 니콜라스는 몇 주 전에는 아주 커다란 태풍이 덮쳤다고 이야기 해 주었고, 다운타운의 전망좋은 바도 설명해 주었다. 거리를 보고 걷는 동안 내가 다시 여길 왔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 전 캐나다에 있었을 때 그 길들을 다시 걷는 느낌이라(물론 노숙자가 굉장히 많고 조금 더 야생 같긴했다) 크게 낯설지 않아 되려 맘이 편안했다.
그렇게 편하게 숙소로 도착했고, 다행히 숙소 사장님이 조기 체크인을 허락해 주셔서 일찌감치 체크인을 할 수 있었다. 점심먹을 시간이라 짐만 두고 그대로 나갔다. 시차 때문에 거의 구름에 뜬 상태로 걸어 다녔고 거의 반수면 상태로 다녔던 것 같다. 잠을 자고 싶었지만 편히 잘 수는 없었고 오후에 아파트 헌팅을 가기로 해서, 시간을 맞추기엔 조금 빠듯했다. 아파트를 보고 이것저것 했어야 했지만 머리가 도무지 돌아가지 않아 집에 돌아와 잠을 자기로 했다. 그와중에 중간에 스타벅스에서 커피도 먹고, 한인 몰의 식당에 가서 밥도 먹었다. 한인 타운을 거의 1시간 넘게 좌로 우로 걸어다녔던 것 같다. 겁도없지 아주 용감했다.
근처 KFC에서 뭐라도 사와서 먹으려고 두고는 그대로 잠이 들었다. 멋드러지게 쓰고 싶은 말들이 많고 남기고 싶은 일기도 많았고 알아봐야 할 것도 많았지만 잠이 먼저 였다. 다행히 민박실이 개인실이라 너무 좋았고, 그래도 1시간에 1번씩 잠을 깼던 것 같다. 깰 때 마다 본가에서 부모님의 사랑을 가득 받았던 게 생각나 문득 외로워졌었다. 앞으로 있을 일들 때문에 걱정이 되어서 다시 그 첩첩산중을 걸어갈 생각을 하니 또 그 길을 선택한 내가 지겨워졌다. 다행히 포기하고 싶은 맘은 들지 않았는데 해야지 뭐 어쩌겠어 하면서 이전이랑 달라서 힘에 부치는 느낌이었다. 시차 때문에 새벽같이 잠에서 깼다. 예전에 캐나다에 도착해서도 그랬던 것 같다. 근데 이 기분이 그렇게 나쁘진 않다. 일찍 일어난 만큼 어제 못한 많은 일들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랜딩은 잘 했고, 이제 앞으로 있을 첩첩 산중은 시간이 지나고 걸어가다 보면 해결될 일이다. 나는 가끔 빨리 안되거나 남들과 비슷하게 안되면 조급해하고 불안해 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럴 필요 없다. 조금씩 천천히 차근차근 눈 앞에 닥친 일들을 해결해 가며 걸어가면 될 일이다. 다행히 도와주시는 좋은 분들이 많고 응원해 주시는 분들도 많으니, 천천히 잘 걸어봐야겠다. 랜딩 1일차 후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