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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설홍 Aug 12. 2024

익숙하지 않은 일들은 늘

자아성찰과 자기반성 그 어딘가에서

간호사로 환자를 케어하다 보면 때때로 윤리적 딜레마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 과거, 경험이 별로 없던 시절에는 환자가 안좋을 때 내가 가장 바쁘고 힘들었던 것 같다. 최선을 다해 간호를 해서 다음턴에 좀 더 스테이블한 상태로 넘기게 되더라도, 내 듀티동안 일어난 일들은 나를 너무나도 힘들게 했기 때문에 진이 빠져 집에가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환자가 조금만 덜 아파했음 하는 마음보다는 얼른 좋아져서 내 일이 줄어들었으면 하는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


그러다 보면 간혹 나도 힘들고 환자도 힘든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나를 무척이나 힘들게 했던 환자가 첫 임종을 맞이했을 때 나는 마음이 매우 불편했고 가슴이 아팠다. 하필이면 왜 내가 담당일 때 돌아가시는지, 하필이면 왜 그동안 당신을 위해서 했던 것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 처럼 만들게 하는지. 그렇게 가슴이 아파서 한동안 우울해 했던 것 같다. 병원 근무를 하면서 임종을 보는게 너무나도 힘들어서 잠시 벗어나 있기도 했고, 다시 임상에 돌아왔을 때는 가시기 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케어를 해 드릴 수 있는 것이야 말로 그들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족과 환자를 위한 일이라고 마음을 고쳐 먹으면서, 조금 더 열심히 돌봐드릴 수 있었던 것 같다.


지금도 이름이 떠오르는 몇몇의 환자들은 나와는 그리 만날 인연이었음에 잊지않고 지내려고 하고 있다.


간혹 병원에서 오래 근무한 동료들은, 임종 전 여러가지 치료를 하면서 힘들어 하는 환자들을 보며 자신들은 가망이 없으면 그냥 보내드리는게 낫겠다고 일찌감치 마음을 먹었다고 했다. 나는 그래도 해 볼만큼 해 보는게 어떻겠냐고 하는 말에 되려 충격을 먹은 간호사 동료도 있었다. 생명의 소중함과 앞으로의 삶의 질 중에 무엇보다도 생명의 소중함이 우선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었다.


미국에 와서 근무를 하다보니, 병원마다 다른지는 모르겠지만 이 곳의 의사들은 생각보다 빠르게 환자들을 포기하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 정정하자 포기라기 보다는, 앞으로의 삶의 질을 봤을 때 환자가 이 비싼 의료비를 내면서 감당할 여생의 질이 좋지 않다면, 치료를 잠정적으로 중단하고 호스피스로 가거나 DNR(심폐소생술 등을 하지 않는 것)을 하는 것이 더 이득이라고 판단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경우, 보호자와 케이스매니저 소셜워커와 함께 환자/보호자와 상담을 해서 연명치료중단을 결정한다. 


언제나 가족의 뜻이 우선이겠지만, 가망이 없는 환자들을 보는 것 만큼 힘들고 지치는 것도 없다. 그런데 그 와중에 최선을 다함에도 불구하고 결과에 따라 내가 죄인이 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면 나도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다. 과거 연세가 많은 교수님들과 일할 때가 있었는데, 이런 일들을 수없이 겪은 그들은 도대체 어떻게 멘탈관리를 하시는지 궁금할 따름이었다. 


생각해 보니, 병원에서 일하는 동안 환자가 좋아지는 것을 보는 것이 훨씬 많다는 것을 느꼈다. 이런 점에 대해서 나름 감사하게 생각하지만, 안좋아지는 것을 보는 것은 늘 익숙하지 않다. 이런 익숙하지 않음은 미국에 와서 얼마 전 나름 처음으로 겪었던 것 같은데, 영어로 그런 감정을 전하는 것은 모국어인 한국어로 전하는 것보다 더 힘들었던 것 같다. 또한, 가족들이 준비가 되지 않은데다가 그들 또한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들이면 그 과정은 더더욱 힘든 것 같다. 그들도 나에게 표현할 수 있는 것에 한계가 있고, 나 역시 그러하다 보니 이게 맞는건지 아닌건지도 모른 채 끝난 일과에 오프 내내 마음이 안 좋을 수 밖에 없었다.


과거 내가 어떠했던, 내가 조금 힘들더라도 그들을 간호하는 동안 조금 더 귀를 기울여야겠다 다시 생각했다. 내가 겪는 수많은 순간들 중 환자가 안좋은 순간이나, 그들과 함께 하는 순간도 찰나에 며칠일테니 너무 힘들어하지 말고 그 시간동안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는것이 앞으로의 나의 감정에도 소중한 가족들에게도 더 낫겠다 다시 다짐했다. 어쩌면 이번 일을 계기로 조금 더 성숙한 경력있는 간호사가 되기를, 그리고 평생을 싫어했어도 이곳에 와서야 말로 진정한 이 일의 의미를 찾게되는 것 만큼 더욱 더 온 마음을 다해 임하기를 스스로에게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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