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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식이타임 Jan 03. 2023

오래 기억에 남는 것

 바삐 흘러가는 시간 속에 허덕이던 겨울, 이 날은 여유가 생겨 학교에서 머지않은 책방에 도착했다. 책만 구경하고 가려했으나 주인장이 건네는 메뉴판이 눈에 들어왔다. 글씨가 빼곡한 종이를 뒤적이다 커피를 주문해 자리에 앉았다.


 밖을 바라보니 이곳은 어릴 적 내가 살던 동네와 꼭 닮아 있었다. 곳곳에 걸린 주택정비사업 현수막, 벽에 금이 간 이층짜리 주택들, 그 사이로 빼곡히 주차된 차량들, 햇빛이 닿지 않아 고집스럽게 얼어버린 눈. 지금도 가끔 그곳에서 펼쳐지는 꿈을 꾸곤 한다.


 그러다 좀처럼 말을 듣지 않던 아이가 떠올랐다. 내 이야기는 담을 공간이 부족해 보이던 녀석이 옆 반 선생님에겐 ‘우리 선생님 고생이 많다’며 월급을 올려달라고 했다고 한다. 저마다 온전히 미워할 수 없게 만드는 요령 하나쯤은 가지고 사는 것 같다.


 시간이 흐를수록 마음처럼 되지 않았던 일들이 오래 기억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어릴 적 그 동네가 그랬고 문득 생각나는 일이 그렇고 아마 그 아이도 마찬가지 일 것 같다. 나는 오래 기억에 남는 것들과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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