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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멋스럽게 만들어주는 사람

자폐아와 함께하는 나날

by 식이타임

“안녕하세요 선생님, 우리 이준이 잘 부탁합니다.”


새 학기 첫날, 도움반 선생님께서 한 아이를 데려오셨다. 학급 명렬표 특이사항에 특수학생이 한 명 있었는데 바로 이준이었다. 새 학년이 되어 반이 바뀌다 보니 스스로 반을 찾아올 수 없었고 도움반 선생님께서 안내를 도와주신 것이다.


이준이는 자폐아다. 다른 사람과 사회적, 언어적으로 상호작용이 힘들다. 다른 선생님들이 특수학생을 맡는 경우는 본 적 있지만 내가 직접 장애가 있는 학생을 담당하게 된 건 처음이었다. 막연히 ‘언젠가는 만날 수 있겠구나.’하며 생각했던 상황이 내게도 찾아온 것이다.


작년 담임선생님을 찾아가 이준이의 상태를 물어보기라도 할걸 그랬나? 시도 때도 없어 교실을 돌아다니며 소리를 지르는 이준이를 보고 있자니 당황스러운 표정을 숨길 수 없었다. “이준이 자리에 앉아야지!”라는 말이 허공에 떠다녔다. 바닥을 기어 다니거나 교실 앞으로 뛰쳐나오는 행동들이 반복되었다.


“3주는 새 학기 적응기간이에요. 2학년 1반에 소속감을 갖게 하기 위한 시간이죠.”


특수교사 선생님께서 찾아와 말씀해 주셨다. 다른 아이들도 이준이와 같은 반 친구라는 것을 인식하기 위해서서 꼭 필요한 시간이라고. 이준이를 데리고 수업하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의사소통도 잘 되지 않는데 복잡한 수업을 따라올 리 없었다.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 이준이를 보고 있자니 ‘과연 이렇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이준이를 위한 것일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뭐라도 할 수 있는 일을 해보고자 아이들이 하교하면 인터넷과 책을 찾아 자폐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100명 중 2~3명은 자폐를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도 본인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심한 짜증을 낸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단순한 일도 수많은 반복을 통해 배우며 환경이 바뀌었을 때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한다. 짜증을 내며 돌아다니는 이준이의 행동이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다.


자폐에 대해 알아가다 보니 조금씩 마음의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수업을 따라오지 못하는 것에 안타까워하기보다는 기본생활습관을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신경을 썼다. 알림장을 꺼내고 적는 것, 빗자루로 바닥을 청소하는 법, 급식실에 갈 때 줄을 서는 위치를 알려줬다.


이준이는 알림장을 쓰며 ‘국어’를 쓰는데 ‘구’까지 적고 내 얼굴을 쳐다본다. 받침이 무엇인지 묻는 것이다. “기역이야. 기역.”하며 알려주면 ‘국어’라는 단어를 써낸다. 받침이 있는 글자마다 반복적인 연습이 필요했다. 며칠이 지나자 이준이는 더 이상 ‘국어‘를 쓰며 내 얼굴을 쳐다보지 않았다. 이렇게 사소한 성공이 하나 둘 쌓이니 묘한 쾌감이 느껴졌다.


하교 후엔 이준이를 교문까지 데려다준다. “안녕히 계세요. 해야지!" 마지못해 하는 인사지만 손바닥을 보여주면 자동으로 하이파이브를 한다. 이준이와 제법 가까워진 걸까?


유난히 아이들이 말을 듣지 않는 날이었다. 참다못해 엄한 목소리로 혼을 내니 이준이가 큰 목소리로 “선생님, 화났어?”라고 묻는다. 아이들도 나도 꺄르륵 웃음이 나왔다. 선생님에게 전혀 관심 없는 줄 알았는데 내가 화난 것도 알아채다니.


이준이에게 많은 시간을 할애하느라 하루하루가 참 빠르게 흘러간다. 그럼에도 녀석을 만나 감사하다.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 가능성을 이끌어내는 일이, 해낼 때까지 기다려주는 내 모습이, 나도 누군가에게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라는 사실이 나를 참 멋스럽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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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