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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주인님을 찾아서...- 개집사, 냥집사

언어로 세상 엿보기

by 콜랑

수입보다 지출이 많고, 근로 수입보다 재태크 수입이 많고,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이 많아질 것 같고, 청년보다 노인이 많고, 학생보다 학교가 많고, 가구수보다 주택이 많고, 치운 것보다 버리는 게 많고, 생각할 시간보다 당장 해야 할 일이 많고, ...


다른 지역은 모르겠고(뭐 별 다르지 않을 거라 믿으면서) 한국 땅에서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을까? 배보다 배꼽이 더 크면, 주객이 전도되면, 그러면 어떻게 되지?


내가 사는 게 나를 위해서 사는 게 아닌 것 같으면 인간은 어떻게 될까?


내가 다른 사람의 종이 되어서 사는 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배울 만큼 배웠지만 시대 및 부모와의 연이 그다지 좋지 않아서 요모양 요꼴로 삶을 버텨내고 있지만 인간 평등이라는 거부할 수 없는 가치를 공유하면서 살아가는 나로서는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다른 사람의 종이 되는 거다. 비록 현실의 사회적 지위는 종과 크게 다를 바 없으나 정신만은 꼿꼿하게 저항하며 버텨낸다.


그토록 강하고 고귀한 내 주체성이 의외의 곳에서 무너지기 시작한다. 스스로가 '집사'가 되기를, 댕댕이, 길냥이들을 주인으로 모시기를 자청하면서.


약 30여년 전, 아파트에서 강아지를 키우는 일을 상상하기 어렵던 시절임에도 아파트에서 강아지 3마리와 함께 자란 나로서는 강아지 앞에서 무너지는 자존심을 논할 자격이 없다. 그래도 적어도 나와 댕댕이는 동급이면 동급이지 내가 모시고 산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다.


'집사(執事, butler)'라니!? 뭐, 어찌 보면 관리직의 일종이긴 하니 그렇게 자존심이 상할 일은 아닌지도 모르겠으나 특정인을 위해 존재하는 계급이 아니던가? 존귀한 인물의 집사라면 모를까 댕댕이나 길냥이의 집사라...


사실, 지금 내가 댕댕이를 다시 입양하게 된다면 그 누구보다 빠르게 댕댕이 집사가 될 게 뻔하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멍집사, 냥집사 등의 집사들이 등장하고 당연한 듯이 회자되는 사회를 살고 있다는 게 그리 즐거운 일만은 아닌 것 같다. 배보다 배꼽이 크고, 주객(主客)이 아니, 주종(主從)이 전도된 것 같아서. (극단적인 해석임을 알지만 언어 현실만 보자면) 종이 되어버린 주인이 나의 인격, 인간성, 주체성, 뭐 그런 것들이었을 것 같아서.


그러면서도 내 주인 삼을 만한 놈 어디 없나 싶어서 빈번히 강아지 분양 정보를 검색하는 건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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