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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콜랑 Apr 29. 2024

"싸다고 고객들이 안 사는 거죠"

- 맥락은 통사 논리를 압도한다

재생구간 51초부터 부정 한정의 실수 사례가 나온다.


정확한 발화는 "싸다고 고객들이 사지는 않는다는 거죠"일 것이다. 일상에서는 이런 실수는 심심치 않게 들리는 것 같기도 하다. '싸다고 안 사는' 것과 '싸다고 사지는 않는' 것은 전혀 다른 의미인데 영상의 맥락을 보면 원래 의도했을 발화는 후자임을 알 수 있다.


생각해 보면 원래의 의도를 정확하게 표현하는 발화는 아래와 같이 다양할 수 있다. 정보량을 한정하는 조사와 부정의 영역이 정확하게 표시되어야 하는데, 그 조합이 다양할 수 있는 것이다.


            싸다고만 해서 고객들이 사지는 않는 거죠.

            싸기만 하다고 해서 고객들이 사지는 않는 거죠.

            싸다고 고객들이 사는 건 아니죠.

            싸다고 해서 고객들이 사지는 않는 거죠.

            싸다고 고객들이 사는 건 아니라는 거죠.

            싸다고 고객들이 사지는 않는다는 거죠.


여기서 보다 더 정확한 표현으로 바꾸려면 '고객들이'의 위치를 문두로 옮겨 놓는 게 좋아 보인다. 그만큼 조합 가능성이 늘어난다고나 할까?


왜 이런 다양한 표현이 가능할까? 그리고 왜 실제 발화와 같은 실수가 일어날까? 두 가지 요인이 있는 것 같다. 첫째 요인은 행위주인 '고객들이'를 우선 처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다른 말로 하면 '[NOT [BUY JUST IF CHEAP]]' 구조의 관념을 어순에서 도상적으로 표상하지 못했다고 하겠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이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서 해당 관념에 대응하는 언어적 표현인 '[[싸다고 사는 것]은 아니다]' 내부에 '고객들이'를 삽입해야 했고, 그러다 보니, 둘째 요인으로, 정작 표현해야 할 관념에 해당하는 부분의 통사 처리에도 오류가 생긴 것 같다.


과거 통사 이론은 서술어가 문장 구조를 결정한다고 보거나, 굴절소가 그렇게 한다고 보는 시대가 있었다. 사건의 구조를 문장으로 표상하는 과정의 핵심은 서술어이고, 서술어와 관련된 논항이 채워지고, 그 과정에 필요한 변형이나 도출 과정이 존재하고, 등등등... 뭐 이런 방식의 통사 이론이 과연 인간의 인지를 반영할 수 있을까?


위 발화 실수 부분만 봐도 어느 것이 우선적이고 어느 것이 차선적인지를 판단하는 일은 불가능해 보인다. 사건 단위와 관련된 표현들이 몽창 통사 처리 버퍼에 올라오고 이를 우리가 익숙한 어순에 맞추어 배열하는 병렬적 처리가 있을 뿐이라고 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어떤 식으로든 산출되는 언어의 구조는 언어의 선조성 제약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까지의 어순의 변화는 허용될 수밖에 없고 이런 정도로 허용되는 변화가 문법성의 전형에서는 조금 멀어 보여도 비문법적이지는 않다고 판단되는 것은 아닐까? 언어적으로 문장(절) 단위로 처리되는 정보는 사건이고 이를 표상하는 과정은 동시다발적인 병렬처리의 결과라고 볼 이유가 있는 것 같다. 통사 구조는 절 단위로 상대적 위상 관계에 놓인 것으로 분석하는 게 좋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타당하다면 통사 처리는 맥락 효과로 지워지거나 약화될 수도 있을 것이다. 때때로 잘못 처리해도 맥락을 토대로 문제삼지 않아도 될 수도 있고.


그런대 맥락 정보 처리는 어떻게 일어나는 것일까? 담화 구조 처리는 두뇌의 어느 부위에서 관여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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