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의 워라밸
여차저차 아마존을 떠나게 되었다. 그동안 고생을 많이 했다고 생각은 하지만, 막상 떠나려니 날 보호해주는 우산 밑을 벗어나는 것 같아 불안한 마음도 있다. 떠나기 직전까지 알지 못했지만, 나름 편안함을 느끼고 있었나 보다.
아마존에 입사하기 전에 들었던 이야기들과 실제 경험한 것들을 정리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서너 가지 다른 주제를 다루게 될 것 같아 몇 개의 글로 나누어본다. 첫 주제는 워라밸.
많은 사람들이 아마존 워라밸이 최악이라는 말을 한다. 늘 그렇듯 팀에 따라 다르지만 평균적으로 바쁜 조직이 많은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아마존 개발 조직은 크게 AWS와 비 AWS로 나뉘는데, 비 AWS는 리테일, 디지털 비즈니스 (이북, 프라임 무비, 프라임 뮤직, etc), 알렉사 등의 AWS를 제외한 모든 조직을 포함한다. 일반적으로 AWS 팀들의 워라밸이 비 AWS에 비해 더 나쁘다고 인식되는 경향이 있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나는 디지털에 있다가 리테일로 옮겼는데, 리테일 안에서도 일부 팀은 피크 시즌 대비로 엄청 고생하곤 했다. 반면 지인이 속한 AWS 팀은 최상의 워라밸을 자랑하기도 했고. 나의 첫 팀은 워라밸 자체는 아주 나쁘지 않았는데, 인도에 있는 팀들과 회의가 많아서 오후 9시가 넘어서 회의를 해야 하는 날이 많아서 힘든 점이 있었다. 회의 시간만큼 일찍 퇴근한다고는 하지만, 저녁에 한두 시간 회의를 하고 다음 날 일어나면 쉰 것 같지도 않고 피곤하다고 할까. 몇 달에 한 번이라면 모를까 매주 최소 두 번씩 그런 회의를 하니 몸이 망가지는 기분이 들어 힘들었던 것 같다. 분명 근무 시간으로 보면 워라밸이 나쁘지 않은데, 몸은 너무 피곤했다. 반면 두 번째 팀은 추천 시스템을 만드는 조직이었는데 의외로 워라밸이 최상이었다. 내 경험도 일반적인 인식과는 조금 다른데, 보통은 캐나다 팀의 워라밸이 조금 더 좋은 편이라고 한다. 하지만 나의 경우는 첫 팀은 캐나다 팀이었지만 아주 이상적이지 않았고, 두 번째 팀은 미국 팀이었지만 훨씬 좋은 워라밸이 보장됐었다. 정말 팀바팀.
사실 미국 기업의 워라밸은 좋기가 어렵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미국 기업 직원들은 승진 등을 위한 내부 경쟁이 심하기 마련이고, 그렇게 경쟁을 하는 직원들 중에는 똑똑하면서도 워라밸 따위 신경 쓰지 않고 일하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내가 승진이나 성과를 신경 쓰지 않으면 모를까, 그런 면에 욕심이 있다면 나 역시 최소한의 시간을 투자해야만 하는 면이 있다. 물론 천재들이야 다른 이야기겠지만… 자꾸 독일하고 비교하는데, 일 더하는 직원 집에 강제로 보내고, 그나마 일 더 하려고 하는 직원들도 거의 없는 분위기에서는 업무 시간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쓰는지가 중요했다. 뭔가 공정한 경쟁의 느낌? 하지만 똑똑하고, 업무 시간도 효율적으로 사용하면서, 오버타임도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하고 경쟁해서 이기려면 결국 내 워라밸도 지키기 어렵다. 워라밸을 철저하게 지키면 한쪽 팔을 묶고 싸우는 느낌이랄까. 그리고 미국 회사는 끊임없이 더 성취하라고 격려? 혹은 강요? 하는 것 같아 분위기에 휩쓸리기도 하는 것 같다.
근데 사실 일이 재밌으면 약간의 오버타임은 즐거운 마음으로 할 수 있고, 일이 재미없으면 아무리 워라밸이 좋아도 견디기 힘든 것 같다. 나는 워라밸은 무조건 지켜줘야 한다는 생각이지만, 워라밸보다 중요한 것은 일을 재밌고 보람차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것도 너무 꼰대 같은 생각일지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