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인 Nov 09. 2023

그만 숨고 싶다

함부로 대하는 사람으로부터

다른 사람에게 내 기분의 선택권을 주지 말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맞는 말이다. 타인이 한 언행 때문에 내 기분이 지배당하면 안 된다. 머리로는 안다. 하지만 마음은 머리의 말을 쉽게 듣지 않는다.      


한동안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 사람의 부정적인 행동을 봤을 땐 기분 탓이겠거니 했다. 맨 처음 친절했던 이미지가 강하여 '에이 설마'라고 넘겼다. 시간이 점차 흐르자 보였던 친절은 사회화된 거였고 본성은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물론 나만 느끼는 부분일 지도 모르겠다.     


나는 늘 먼저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처음 봤을 때도, 집으로 돌아갈 때도. 그런데 언제부턴가 인사를 받아주지 않는다. 처음엔 못 봤겠거니 했는데 인사를 대놓고 해도 돌아오는 건 퉁명스러운 표정이 섞인 적극적인 무시였다.      


여기까지만 하면 솔직히 별문제 없다. 그 사람과 인사 따위 안 하고 살면 되니까. 그러나 내게 이래라저래라 시키는 그 말의 뉘앙스가 별로였다. 사람을 종 부리듯 하는 명령에 할 말을 잃었다. 내가 아무리 아랫사람이라고 해도 이건 아니지 않나 싶다. 일단 토 달지 않고 묵묵하게 했다. 당시엔 나도 크게 깨닫지 못했으니까.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부당하고 기분 나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돌이켜 보면 내게만 그런 게 아니었다. 본인보다 나이 많은 사람에게도 버럭 화를 내기도 했으니까.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쌀쌀맞은 모습을 나는 꽤 오랫동안 지켜보았다.     


전형적인 강약약강 유형의 사람이었다. 본인이 잘 보여야 할 대상에겐 한없이 웃음 지으며 친절러가 된다. 본인에게 득이 되는 사람에게 잘한다. 겪어보니 나는 득이 되지 않으니 받는 처사가 처음과는 바뀐 것이다.    


애초에 캐릭터가 분명했다면 나도 이렇게까지 실망하지 않는다. 내가 기분 나쁜 이유는 한때는 그 사람을 진심으로 좋아하고 존경까지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화가 나는 건 7년 전 퇴사한 회사에서 겪었던 수모까지 떠올리게 했다.      

누구든 사람을 무시할 권리가 없고, 사람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을 권리도 없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는 게 아니고 더러워서 피하는데 그 더러움에 화가 날 뿐이다.     


불쾌하게 하는 사람이 있으면 나는 그 자리를 되도록 피하고 보았다. 인간관계가 갈수록 좁아지면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만,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만 만나는 버릇이 생겼다. 그래서 7년 전에 다니던 회사 부장에게서 벗어나고 싶어 1년을 못 다니고 퇴사했다. 먼저 '나'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계급과 권력, 군대식 문화가 강한 남초 회사에서 나의 목소리를 크게 낼 수 없었다. 직속 상사에겐 털어놨지만 그분도 해줄 수 있는 게 딱히 없었다.      


카카오톡에서 그 사람의 프로필 사진을 보는 것도 싫고 두려워 친구 숨김 기능을 써버렸다. 함부로 대하는 사람에게 정면승부하고 싶지만 아직까진 그럴 용기는 없다. 안 보면 그만이니 난 또 피하는 방법을 택한다.


임경선 작가님의 책 <나 자신으로 살아가기>에서 이런 구절이 있다.


상대와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을 회피하려는 것은 내 감정이 제일 소중하고 내 자존감이 제일 소중하기 때문에 내가 다치면 안 되니까 전전긍긍하는 것일 텐데, 사실 그것은 자기를 보호하는 것을 넘어 스스로를 점점 더 약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다. 자신에게 껍질 같은 것을 씌워놓고서 감정적으로 안전할 것만 추구하면 인생을 얕게 사는 습관이 생기는 것 같다.      



똥이 더러우니 피하는 것만이 상책이라고 생각했다. '나'를 우선으로 여기며 자존감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고 보았다. 그게 나를 약한 사람으로 만들 줄은 몰랐다. 나는 대체 몇 겹의 껍질이 있는 걸까. 나중에 깨고 나오려면 굉장히 힘이 들겠지. 함부로 대하는 사람에게 멋들어지게 한 소리 할 수 있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 껍질 속으로 그만 숨고 싶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