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러너가 달리는 이야기
새벽 5시 조금 넘어서 눈이 떠졌다. 어제 오후에 진행한 상담의 강도가 높아 점심 겸 저녁을 먹고 일찍 잠에 들었다. 정신이 지치면 편두통 비슷하게 지끈거려서 일찍 쉬어줘야 한다. 9시경에 잠에 들었다.
눈을 뜨자마자 달리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지난주부터 1km 달리기를 시작하였다. 오늘로 6일이 되었고 3회를 달렸다. 이틀에 한번 달린 꼴이다. 세 번 달려놓고 루틴 비슷한 척하는 게 민망하지만 스무 살 이후로 달려본 적이 없어 내게는 감개가 무량한 일이다.
주말에 연속 이틀을 달리곤 근육통이 세게 왔다. 걷는 것에 비해 살짝 빠른 수준인데 왜 근육통이 생긴 걸까 의아했다. 종아리는 괜찮은데 허벅지 근육이 땅기었다. 앞벅지 뒷벅지 모두 그랬다. 생각해 보니 걸을 땐 종아리 근육을 쓰는데, 허벅지 근육은 런지나 스커트와 같은 하체 운동을 하지 않은 이상 그 근육이 건드러질 리 없긴 하다. 달리는 동작을 떠올려 보면 허벅지를 들어 올리게 된다. 내 무게를 온전히 감당해야 하는 허벅지이기 때문에 그럴 만도 하겠구나 싶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1km만 달린다. 부담도 없다. 화장실에서 간단히 가글과 고양이 세수만 하고 트레이닝팬츠와 후드티를 입고 운동화를 신는다. 잠든 남편이 깨지 않기 위해 현관문 조용히 닫는 거 잊지 않고.
일출이 점차 늦어지는 요즘 6시가 되기 전이라고 해도 완연한 밤의 하늘이었다. 오호라, 어둡다 이거지, 내심 안도하였다. 초보 러너라 달리는 모습과 표정이 어색하여 누구한테도 보여주고 싶지 않기에 달리기 좋은 환경이었다. 애플 워치에 '실외 달리기'를 선택하고 아파트 입구부터 달리기 시작했다.
오늘은 공원이 아닌 도보를 달려보기로 했다. 어두워 공원이 음산하고 무서울 것 같았다. 도보는 가로등이 켜져 있고 버스가 운행하기 때문에 그 불빛에 의지하고 싶었다. 어두운 곳에서 달리고 싶어 하면서도 막상 무서워하는 아이러니한 청개구리 마음.
도보로 가려면 아파트 상가가 있는 광장을 지나야 하는데 스무 살 남짓한 친구들이 문이 닫힌 상가 앞 테이블 의자에 앉아 떠들고 있었다. 근처 편의점에서 술을 사 와 거나하게 마신 것으로 보인다. 그곳을 지나가야 해서 살짝 뻘쭘이 올라왔는데 속으로 '나도 너네 나이 때 다 그러고 놀았지' 하면서 지나갔다. 말로 내뱉지 않았다 뿐이지 영락없는 꼰대가 다름없는 나를 본다.
광장을 지나쳐 도보가 나오고 버스 정류장이 나타났다. 출근하는 몇몇 사람들이 보였다. 4년 전까지만 해도 출퇴근한다고 새벽에 나왔던 게 떠올랐다. 6년간 회사 생활하며 얻은 건 퇴사하고 혼자 일하는 직업임에도 아침형 인간의 패턴을 유지한다는 점이다. 틀과 규칙에 얽매이는 건 싫어하면서 스스로가 정한 페이스는 지키려는 편이다. 누가 시킨 게 아닌 내가 정한 거니까 지키고 싶고, 스스로를 컨트롤 하는 기준선에서 정하기 때문에 무리 없이 이행하고 있다. 회사 생활이 잘 맞진 않았지만(물론 맞는 사람들이 많지는 않을 거라고 본다) 아침을 시작하는 루틴만은 잘 맞았었지 하면서 지나친다.
아파트 광장을 한 바퀴 도는 도보를 코스 삼아 달렸다. 그게 1km가 될 것 같았고 중간에 신호등도 없어 달리기 안성맞춤이었다. 근육통 때문에 3일 만에 달려서 그런지 300m 달렸을 때부터 숨이 찼다. 600m.. 850m.... 젠장 아직 150m나 남았다니.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숨을 몰아 "후.. 후.." 거리며 달렸다. 여기서 멈추면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발의 보폭을 줄이며 달렸다.
거주하는 아파트 동수를 마주하고 뜀질을 멈추었다. 1km를 조금 넘겼는데 막상 도착하니 아쉽다. 이런 상반되는 감정들은 가끔 나를 혼란스럽게 한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엘리베이터에 오른다. 시계를 보니 집에서 나온 지 13분이 되었다. 나가서 걸으며 준비한 시간이 5분, 그리고 나머지 8분은 뛰기에 쓴 셈이다. 벌게진 얼굴과 줄줄 흐르는 땀을 보면 1km가 아니라 마라톤 질주한 것만큼 달린 모양새다. 오늘의 달리기 10분 컷, 운동 끝이다.